16일부터 인터넷에서 ‘야동’이 사라진다? ‘불법음란물’이 빠른 시일 내에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웹하드나 P2P업체가 불법음란물을 자체적으로 걸러내지 못하면 처벌받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법음란물’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웹하드 업체가 전부 찾아내서 삭제조치를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나친 검열과 감시로 인해 정보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1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정안은 웹하드 등 업체의 불법음란정보에 대한 검색차단 및 송수신 금지 조치 의무화가 골자다. 웹하드 업체가 스스로 ‘불법 음란물’을 차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만약 이들 업체가 불법음란물의 유통을 막지 못할 경우 제재를 받게 된다. 제재수위는 사업정지 9개월에서 최대 등록취소까지도 가능하다.

불법 음란물을 단속하는 일은 당위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제재방안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불법음란물’과 ‘합법성인물’을 전수조사해 가려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픈넷 김가연 변호사는 “불법음란물 여부를 파악하려면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한다. 웹하드업체에 하루에도 수 많은 파일이 업로드 되는데 이를 일일이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제재를 피하기 위해 ‘살’이 보이는 콘텐츠를 무더기로 삭제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 합법적 콘텐츠에 대해서도 피해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 레진코믹스 홈페이지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를 웹하드업체에 공유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음란물 기준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음란물 데이터베이스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해당 목록에 해당하는 음란물에 대해 조치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음란물의 경우라도 현저하게 음란성이 있는 경우는 업체에서 파악이 가능하다. 음란성에 대한 사안은 방통심의위 심의 기준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웹하드 업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 관계자는 “방통심의위의 데이터는 양이 매우 적다. 민간단체에서 협조한다고 해도 역시 양이 적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업계는 필터링을 위해 기술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지만 불법음란물을 하나라도 거르지 못하면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영상은 그렇다 쳐도 애니메이션과 야설은 조사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오픈넷 역시 지난 15일 발표한 성명에서 “사업자가 방통심의위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다고 해도 면책되지 않기 때문에 ‘야동’이라면 무조건 차단할 동기를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불법음란물을 단속해야 한다고 하지만 방통심의위조차도 음란물의 기준을 정립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최근 차단돼 논란이 일었던 웹툰사이트 레진코믹스 건만 보더라도 그렇다. 현재 방통심의위는 레진코믹스 재심의 과정에서 성기의 윤곽을 그리는 등 성기의 추측이 가능한 경우까지 음란성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 방통심의위는 성기의 직접묘사만 음란물로 판단했다. 판례는 성기를 묘사하더라도 음란물로 보지 않고 있다. 기준이 제각각인 것이다. 김 변호사는 “사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이 음란물인지, 그래서 불법인지 아닌지를 판단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tvN 시트콤 '초인시대'의 한 장면. 본 이미지는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이번 개정안이 정보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웹하드에 포괄적 감시권한을 줬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웹하드업체가 자신들의 조치에 대한 실태를 시스템에 기록하고 이를 2년 동안 보관하도록 하기도 했다. 진보네트워크는 지난 15일 발표한 성명에서 “사업자들이 이 법령에서 규정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모든 이용자를 감시하도록 한 것은 정보인권 침해이고, 감시 기술이 이용자들이 모르는 사이 시행되거나 선택권을 제한한다면 매우 심각한 침해”라고 밝혔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이용자를 감시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국제척 추세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진보네트워크는 “유럽연합의 전자상거래지침은 모든 불법 정보(저작권 침해 정보, 음란 정보, 아동 포르노물)에 대한 일반적 감시 의무를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지난 3월 24일 ‘인터넷권리 회의’에서 채택한 ‘정보매개자 책임에 관한 마닐라 원칙’에서도 이 같은 행위를 금지했다”고 밝혔다. ‘마닐라원칙’은 포털이나 웹하드와 같은 정보매개자에게 불법적인 제3자의 콘텐츠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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