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법에 보면 살인 등 중대한 범죄가 발생한 경우 가해자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고 유죄가 확정되면 가해자를 피해자 가족들에게 인계했다. 그 경우 피해자의 가족들은 가해자에게 복수를 해 죽이는 등 생사여탈권을 행사하게 된다. 고대법에서는 피해자들이 사건(가해자) 자체에 대해 일종의 권리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범죄자의 인권도 보호해야 한다는 요청이 근대법에 반영되면서 국가가 형벌권을 확립한다. 그 결과 국가는 피해자의 복수권을 빼앗고 피해자들은 형사재판과정에서 배제된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이재승 회장은 영화 밀양을 언급하면서 “피해자들이 형사재판과정에서 배제됐을 때 좌절할 수밖에 없다”며 “법정에서 진술할 권리는 피해자 권리 운동의 연장에서 헌법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피해자는 해당 사건에 대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을 때 존엄하게 처우 받는다”며 “이것이 1987년 형사피해자의 법정진술권을 인정해 피해자의 권리를 초보적으로나마 인정한 헌법의 취지”라고 덧붙였다. 

   
▲ 영화 <밀양>의 한 장면.
 

하지만 이 회장은 국가가 헌법의 취지를 외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세월호 특별법(진상규명법, 피해구제법)의 문자 그대로의 내용까지 비난할 것은 없지만 정부가 세월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면 과연 피해자들의 감정이 고려됐는지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세월호 참사의 가해자는 국가”라고 규정한다. 그는 “국가가 정책적인 계획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공격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이번 참사에) 공무원과 공권력이 연관돼 있다”며 “구조의무불이행이 승객 죽음에 공동원인이 됐기 때문에 선박회사와 국가의 공동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적절한 구조활동을 했더라면 승객 대부분을 구할 수 있고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피해자가 사건에서 배제되지 않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진상을 규명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받는 일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피해자권리는 조사나 소송절차에서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 뿐 아니라 진실을 규명하고 그 기억을 국가가 보존할 의무까지 포함돼야 한다”며 “이는 피해자만의 권리가 아닌 민주사회의 시민 전체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이는 세월호 유족들이 지난 1년간 주장하던 ‘안전사회 건설’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 13일 오후 참여연대에서 '정부 배상문제와 피해자의 권리'를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중이다. 사진=장슬기 기자.
 

국가의 위법성을 제대로 파악해야 배상금이 책정될 수 있다. 김희수 변호사는 “헌법에서도 정당한 배상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데 왜 배상을 제대로 받아야한다고 말하지 못하느냐”며 “배상액을 국가가 발표했는데 가해자인 국가는 발생한 손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1인당 위자료는 1억원으로 일괄 책정돼있다. 이는 2008년 마련된 서울중앙지법의 교통사고 위자료 산정기준에 따라 8000만원으로 발표했다가 지난 2월 법원이 바꾼 교통사고 위자료 산정기준에 따라 변경한 금액이다. 

서해훼리호(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군산 서해훼리 소속의 110t급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292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로 사고 원인은 화물 과적, 승객 과승, 운항 부주의 등) 담당 검사였던 김희수 변호사는 “이는 서해훼리호 사건처럼 국가는 아무 책임지지 않고 단순 사고로 보는 것”이라며 “위자료 1억원도 위자료의 50%는 희생자 본인, 나머지 50%는 배우자·직계존비속·형제자매에게 배분한다고 돼있는데 이는 위법·부당한 기준”이라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희생자 고유의 위자료와 부모 형제등의 위자료는 구분돼야 한다. 

김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에서 피해자의 과실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정부의 과실은 매우 중대한데 가해자인 정부의 재산상태 등을 자연인과 동일하게 평가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현재 위자료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단원고 학생 배보상금은 총 4억2000만원(일실수익 3억원, 위자료 1억원, 장례비·지연이자 2000만원)으로 지난해 5월 경기도 고양 종합버스터미널 화재사건 배보상금 6억2000만원이나 지난해 2월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고 배보상금 6억원에 비해 적은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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