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을 지켜 온 사람이 있다. 세월호 참사 유족도 아니고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도 아니다. 지난해 7월부터 광화문 광장 입구 한쪽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을 받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홍종철씨(61)다. 특별법 제정 이후 서명대에는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과 인양 촉구 서명판이 설치됐다. 

“날이 풀리면서 (서명하는)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어요. 지난 주말이 최근 들어 가장 많았죠.”
봄이 왔다. 하루 종일 도로에 둘러싸인 광화문 광장에 있다 보면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지 않더라도 나쁜 공기들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홍씨는 날이 따뜻해지고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오면서 광화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지난해 5월부터 유가족이 참여하는 세월호 특별법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홍씨가 처음 서명에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해 7월이다. “유민아빠가 단식하면서 광화문 광장을 처음 찾았다. 그런데 서명을 받는 유족 어머니나 여성 자원봉사자들에게 욕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무방비로 욕을 듣고만 있는데 ‘남자라도 한명 같이 있으면 어떻게 대응이라도 해볼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광화문 광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시민들에게 세월호 진상규명과 인양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홍씨에 따르면 현재 서명받는 자원봉사활동에 계속 참여하는 시민들은 18명이다. 유족들이나 비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인원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이들은 서로 요일을 조정해서 3명 이상은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다. 

홍씨는 오전 11시반경 서명을 받는 천막을 여는 역할을 한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데 오전에 업무를 보고 급한 일은 팩스로 받아가면서 일을 한다. 아침에 와서 천막을 열고 저녁에 닫는 시간은 매번 다르다. 요즘같이 촛불모임이나 천주교 미사가 있으면 행사가 다 끝나고 천막을 닫는다. 여름이 되면 지난해처럼 밤 10시까지는 해야 할 것 같다. 그전에 문제가 해결돼야 할텐데…” 

이들에게 날씨는 중요하다. 날이 추워지면 서명하는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동시에 세월호 유족들을 공격하는 극우단체도 줄어들었다. 대신 각개전투(?)가 시작됐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애들이 요즘에는 서명란에 일베 용어인 ‘민주화’를 쓰거나 노무현 대통령 욕을 써놓고 도망간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가 욕을 쓰고 바로 길을 건너 도망간다.” 

홍씨는 이런 공격을 유가족에 대한 모욕이라고 판단해 꼭 잡으려고 한다. “요즘에는 농성장 주변 곳곳에 시민단체나 유족들이 서 있어서 욕을 쓰고 도망가면 우리가 소리를 질러서 싸인을 주면 잡아서 파출소에 넘긴다. 유족에게 진정한 사과를 했다고 판단되면 풀어준다. 지금까지 잡은 일베애들이 8명이다. 딱 한명 놓친적이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서 못 잡았다.” 

개인적으로 찾아 유족들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홍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왜 아직도 광화문을 점거하느냐며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는 자신을 6·25참전용사라고 밝힌 분이 ‘자신은 18만원밖에 못 받았는데 무슨 학생들이 8억씩 받느냐’고 따지더라. 잘 몰라서 그런 거니까 설명해준다. 아이들이 구해달라고 했는데 그냥 지나쳤는지 조사하자는 것이라고.”

세월호 참사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서 외국인들도 관심을 많이 갖는다. 홍씨에 따르면 외국인만 하루에 100~150명 정도 광화문 광장에서 서명을 한다. 서명용지는 영어와 중국어 판이 따로 있다. 홍씨 기억에 남아있는 외국인은 누굴까? 

   
▲ 최근 광화문 광장에는 하루 평균 외국인 100~150명 정도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인양 촉구 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천막에 홍종철씨가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다. 사진=장슬기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어머니 4명이 인천 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일본후지TV에서 세월호 관련 뉴스를 처음보고 충격을 받아 한국에 와보고 싶었다며 서명을 했다. 광장을 둘러보며 아이들 사진을 바라보며 펑펑 울었고, 나도 같이 울었다.” 

같이 울면서 홍씨는 유족들과 가족처럼 지낸다. 하지만 처음에는 유족들의 경계가 심했다. “처음에는 영석아버지(오병환씨)와 한 달간(지난해 7월) 얘기를 못했다. ‘왜 나이 많은 사람이 집회하는데 와 있을까’ 이런 시선이었다.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주변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저사람 나쁜 사람 아니다’라고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홍씨는 현재 자원봉사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대부분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아이가 있는 여성들이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인양을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홍씨는 대통령이 유족들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유족들은 대통령 욕하는 것을 싫어했다. 대통령 퇴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오면 내쫓으면서 대통령을 믿고 일을 잘하도록 지지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유족들은 대통령을 지켰는데 특별법 통과와 시행령 입법예고 과정에서 대통령은 유족들을 버렸다.” 

홍씨는 ‘믿을 건 국민들’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봤는데 국민 10명 중 8명이 세월호 인양을 해야한다고 답했다는데 여기서도 보면 국민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세월호가 끝났다고들 하는데 국민들은 여전히 세월호를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통령이 버렸지만 국민이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인양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양이 결정돼 진실이 밝혀지고 유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작년부터 여기 쏟아 부은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홍씨는 유족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유족들을 ‘종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불같이 화를 낸다. “잘 몰라서 욕을 하는 것은 설명해주고 세월호 참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뭘 잘못했다고 비난을 하느냐. 울화가 치밀 때가 많다.”

   
▲ 광화문 광장에서 서명을 받고 있는 홍종철씨. 성동중앙어머니회라는 친목모임에서 천막에서 쓰는 난로를 위해 4월말까지 사용할 기름을 보내주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서명을 받는 자원봉사자들은 천막 안에 있는 난로하나로 버틴다. 봄이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쌀쌀해 4월까지는 난로가 필요하다. 홍씨는 “성동중앙어머니회라는 친목모임에서 4월달 쓸 기름을 보내준다. 처음에는 구걸하는 느낌이 들어서 받지 않았던 성금도 우리가 대신 받아서 (광화문 농성장)상황실에 보내 유지비용을 사용한다. 서로 돕는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광화문을 지키게 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홍씨는 간단하게 마련한 음식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나섰다. “아, 근처 꽃집에 갑니다. 농성장에서 꽃을 자주 사는데 세월호 농성자에서 왔다고 하면 꽃을 많이 주거든요. 고마워서…” 싸늘한 시선과 찬바람을 이기는 힘은 인간이 마주치며 내는 온기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