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통해 본 세월호는 현장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선체 인양과 피해자 배보상에 대한 문제를 연일 언급하면서 세월호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지는 언론 보도와 달리 광화문 광장은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에 분노하는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선체 인양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밝힌 지 이틀 뒤인 8일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이날 광화문 광장을 찾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통령이나 해수부 장관 발언를 신뢰하지 못했고,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연대의 목소리를 키우는 호소했다. 

오전 11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권활동가들이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피해자들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는 “정부가 배보상을 얘기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며 “치유와 회복이 되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지 않으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은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인권활동가들의 주장이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 기록단 유해정 작가는 “97년 씨랜드 화재 당시 유가족들은 참사 한 달 만에 투쟁을 접어야했다. 정부는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아닌 모기향에 의한 화재사건으로 마무리했고, 안전 허가에 관한 관리 문제를 외면하고 인솔교사에게 책임을 묻고 끝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정부는 진상규명을 한 것이 아니라 군병력을 동원해서 현장을 물청소해버렸다”며 “진실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존엄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시민들은 참사 이후 줄곧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주장했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가 안전사회 건설에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해정 작가는 세월호 참사의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경기도와 안산시 안전 관련 예산을 살펴본 뒤 답답한 심정을 표현했다. 

“경기도에서 61억원 정도를 안전 예산으로 잡았는데 민방위(23억원), 재난사건 사후적립금(33억원)등을 제외하면 재난과 방재를 위한 예산은 1억원뿐이었고, 안산시 교육청 관련 예산 23억원 대부분은 안전불감증 교육에 관한 예산이다. 세월호에서 학생들은 질서있게 앞에 있는 생존자부터 내보내려고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우리에게 안전에 대한 권리, 진실규명에 대한 권리, 트라우마를 치유받을 권리, 안전한 사회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교육이다.” 

   
▲ 8일 광화문 광장 천막 농성장에는 시민단체 대표들이 이틀째 단식중이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사진 가운데)는 "정부 시행령 폐기를 위해 우리가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사진=장슬기 기자
 

식사 없는 점심시간 

광화문 광장에는 식사시간이 없다. 세월호 선체 인양과 정부 시행령안 폐기를 위해 단식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 조계종 노동위원회 노동위원 도철스님, 손미희 전국여성연대 대표, 강병기 민주수호공안탄압대책회의 대표,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장,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윤용배 한국진보연대 위원장 등 7명은 단식을 시작했다. 

광화문 광장을 지키는 단식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다들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해 밥을 굶고 토론회, 간담회 등 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7월 단식 이후 8개월 만에 다시 단식에 참여한 박석운 대표는 박 대통령과 유 장관의 발언을 세월호 1주기와 4·29 재보선을 앞두고 하는 고도의 언론플레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1주기가 다가오면서 정부의 시행령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인양 문제를 꺼내며국민들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인양을 언급하면 세월호 문제해결에 긍정적인 태도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배보상안을 꺼내는 것도 일종의 정부 출구전략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진상규명을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3일 정도 단식을 하고 한국진보연대 다른 구성원들과 릴레이 단식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 대표는 “특별조사위원회(특위) 사무처는 위원회 규칙으로 정하게 돼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어기고 시행령을 발표하는 것은 위헌·위법의 소지가 있다. 시행령을 폐기하는 것을 넘어 특위에서 발표한 내용을 포함하는 것을 내용으로 진상규명이 제대로 될 수 있는 특별법 개정을 주장할 계획이다.” 

단식을 하는 사람들은 이들 말고도 30여명이 더 있었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이날 하루 동조단식에 들어갔다. 한국작가회의 정우영 사무총장은 옆 천막에서 단식을 하는 시민단체들을 가리키며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민들과 작가들의 마음이 통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총장은 박 대통령과 유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 “작가들도 그들의 발언을 선거용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행태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면 전환용 멘트라고 생각해 절박한 심정으로 단식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 8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문화예술인 이두성, 장용철씨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새야새야' 퍼포먼스 중이다. 사진=장슬기 기자
 

오후 1시. 빈 깃발을 든 사람들.

작가들을 포함해 많은 문화예술인들도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이들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비닐 깃발을 들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가오지만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 속에살고 있는 시민들의 공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날 방문한 3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은 “박근혜 정부를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박근혜 정부는 국면전환을 위해 세월호 인양과 배보상 문제를 꺼냈지만 문화예술인 등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세월호 희생자 뿐 아니라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였다. 노순택 사진가는 “그동안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한국사회가 침몰해가는 과정을 기록하는 과정이었다. 지금 배 하나를 건져 올리자는 것인가? 사람을 건지고 진실을 건지는 것이다.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는데 받아 안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침몰하는 것이다. 침몰을 어떻게든 막아보고 진실을 건져 올려보는데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인양을 검토하겠다고 처음 언급했지만 문화예술인들은 검토하겠다는 표현에 문제를 제기했다. 윤정모 소설가는 문화예술인의 뜻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의 최종책임자라고 했다. 그런데 최종책임자가 인양을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검토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의무사항이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오후 2시. “가르치는 사람들이 왜 광장까지 나와야하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중앙집행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광화문 광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를 지켜보던 정우영 작가는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는 것이 일인 사람들이 광장에 왜 나왔겠느냐”며 “박 대통령이 인양을 검토하겠다는 말을 꺼낸 것은 이렇게 많은 양심의 목소리가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8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전교조 중앙집행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전교조도 요구사항은 같았다.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든 시행령을 폐지하고 배보상 문제를 꺼내며 돈 문제를 내세우는 것과 이를 그대로 전달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7시간이나 국민의 생명을 방치했던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자 보궐선거와 지지율 관리를 위해 마치 선심이나 쓰듯이 인양을 언급하는 모습에서 생명을 돈으로 사겠다는 오만함을 본다”며 “학생들과 동료교사를 잃은 우리는 (희생자)부모들과 함께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후 3시.
남해 바다에서 올라온 학생들 “자유시간이라 서명하러 왔어요”

광화문 광장에는 진상규명과 선체인양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는 부스가 있다. 경남 거제도에 위치한 옥포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와 경복궁을 둘러보다가 서명을 하러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 8일 광화문 광장을 찾은 경남 거제 옥포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리본을 달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옥포고 2학년 김지은 학생은 “거제에서는 이제 세월호 문제에 큰 관심이 없다. 학교에서 가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설명하고 구조현장이 당시 어땠는지 영상을 보여주는데 정말 안타깝다”며 “인양을 왜 안하는지 나도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옥포고 학생들은 시행령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왜 정부가 인양을 미루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정부가 세월호 참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오후 4시.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이 서로 미안해하더라”

윤정모 소설가는 “오늘 오전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실종자 가족에게 미안해하고, 실종자 가족은 유가족을 미안해하는 모습을 봤다. 서로 축복해주지는 못하고 미안해하며 부모들이 울고 있더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단원고 2학년 3반 시연이 엄마 윤경희씨를 만났다. 지난 5일 유가족 부모들이 삭발한 이후 유족들을 알아보긴 쉬웠다. 시연엄마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혹시나 실종자 가족들에게 해가 될까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사양해왔다. 

힘들게 입을 연 시연엄마는 “서명을 받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대통령이 인양하겠다고 말했는데 왜 또 서명을 받느냐’고 한다”며 “인양이 확정된 것이 아닌데 오히려 박 대통령이 혼란만 심어줬다”고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박 대통령과 유 장관 말은 비수로 꽂혔을 뿐이다.

   
▲ 8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을 찾은 외국인들. 사진=장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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