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부유한 공간에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붙어산다. 서울시 강남구 양재천 영동5교 밑과 포이동 266번지 옆 공터에서 20여년간 살아온 마지막 넝마공동체의 이야기다. 부자동네에는 좋은 물건이 많이 나온다. 새 옷 같은 헌옷부터 헌책, LP판까지 쏟아졌다. 이들은 월 평균 40톤이 넘는 넝마를 수집해 먹고 살며 매달 800여벌의 옷을 기증하면서 살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소비하는 자본주의의 한복판인 ‘강남’과는 어울리지 않게 물건을 재활용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영동교를 천장 삼아 욕심 없이 살던 이들은 2012년 11월 터전을 강남구청으로부터 강제철거 당했다. 

2015년 제15회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넝마공동체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고상현 감독의 ‘우리보고 죽우란 말이냐(We will never die)’는 넝마공동체가 강남구청으로부터 철거 대집행 통지를 받은 직후인 지난 2012년 가을부터 2014년 여름까지 투쟁과정을 담은 다큐영화다. 제목 ‘우리보고 죽우란 말이냐’는 2012년 11월 한 달간 영동교에서 쫓겨나 탄천운동장에서 생존대책 수립을 요구할 당시 넝마공동체가 내걸었던 현수막 문구다. 

   
▲ 지난 2012년 11월 영동교에서 쫓겨난 넝마공동체 주민들이 탄천운동장에서 생존대책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중앙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고상현 감독의 첫 장편으로 지난 1986년부터 3000여명의 자활을 도왔던 대한민국 마지막 넝마공동체가 부활을 꿈꾸는 이야기다. 그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학교 과제를 하다가 넝마공동체를 알게 됐고, 가난하지만 즐겁게 같이 먹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불법 점거를 해야만 하는 공동체가 안타까워 떠나지 못해 다큐까지 촬영하게 됐다”며 “논리적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기 보다는 주민들(넝마공동체)의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큐는 넝마공동체 주민들이 촬영한 영상과 고 감독이 촬영한 영상을 합쳐 만들었다. 넝마공동체 송경상 총무는 “감독의 메시지를 넣지 않고 주민과 용역깡패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만 했다”고 평가했다. 고상현 감독이 보여준 공동체의 모습은 무엇일까? 

   
▲ 지난 1986년 3월부터 넝마공동체는 강남 영동교 주변 1만5000여가구에서 나오는 물품들을 재활용하면서 살아왔다.
 

넝마주이를 연구하며 공동체와 인연을 맺어 다큐를 보러온 전남대 윤수종 교수(사회학)는 “오리지널 넝마주이는 6·25 전쟁고아들로 거지, 도둑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며 “때문에 국가 권력과 잠재적 대결상태에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70년대 말 서울시는 부랑아, 넝마주이, 구두닦이 등 도시빈민들을 모아 자활근로대를 만들고 군대식으로 관리했다. 강제수용을 위한 예산은 국가에서 나왔고, 숙소는 경찰서장과 협의해 시장이 결정했다. 국가는 이들을 강제로 이주해 집단수용했고,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에는 거주 지역 바깥으로 나오는 것도 금지했다. 경찰이 실적을 위해 검거 건수가 필요할 때 넝마주이들을 도둑으로 몰아 잡아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양아치’란 말은 넝마주이를 낮춰 부르는 말이다. 집도 재산도 없이 헌 옷을 주워 팔아 살다 국가가 원할 땐 범죄자가 돼 주는 극빈층을 가리키는 단어다. 윤수종 교수는 “재활용은 이권이 큰 산업”이라며 “경우회, 대한어머니회 등 다양한 단체들이 개입해 넝마주이를 착취했다”고 말한다. 넝마주이들이 모여 넝마공동체를 만들게 된 계기다. 1981년부터 이어진 순화교육(삼청교육대)과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경찰의 후리가리(일제 단속)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자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다. 

   
▲ 지난 2012년 11월 탄천운동장 컨테이너 안에서 고상현 감독(사진 왼쪽)과 넝마공동체 왕초인 윤팔병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가 남들이 구로공단 등지로 위장 취업할 때 넝마주이를 선택한 송경상 총무, 헌 책을 팔던 넝마주이 왕초 윤팔병씨 등 20여명은 1986년 넝마공동체를 만들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노숙자들도 받아들였다. “옛날 같이 왕초가 있는 것도 조마리(주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전부가 주인이다” 이들은 극빈층이지만 노숙자나 거지와는 조금 다르다. 스스로 숨지 않으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는 재활용 수집 작업장에 사무직원을 둘 정도로 잘 나가는(?) 사업장을 꾸리고 헌 옷은 무역회사를 통해 동남아에 수출도 했다. 

넝마공동체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다큐에서 넝마공동체 주민들은 “요즘 1인 가구나 빈곤층이 많아지는데 방세 낼 필요 없이 여기 들어와서 같이 즐겁게 살자”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행정국장을 맡았던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넝마공동체를 비롯해 구룡마을, 달터마을, 수정마을, 재건마을 등을 모두 정비하려고 한다. 넝마공동체 김덕자 대표는 구청장을 “피도 눈물도 없는 신연희”라고 표현한다. 현재 넝마공동체에게 남은 것은 강남구청이 주민들을 상대로 한 20여건의 고소고발로 인한 상처와 변상금 1억6700만원과 행정대집행비용 3200여만원이다. 주민들은 “임대주택과 친척집 등으로 흩어졌지만 다시 공동체를 되찾아야 한다”며 서울시에 작업장 부지, 강남구청에 공동생활주택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빈곤한 계층이지만 가난하게 살지 않았다. 고상현 감독은 “공공근로하며 사는 한 할머니가 다큐를 본 뒤 반갑고 고맙다며 10만원이나 쥐어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수종 교수는 “넝마주이를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서민들의 역사, 코뮌과 같은 자율적인 공동체를 생각해볼 수 있다”며 “하루빨리 복원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2015년 제15회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고상현 감독(왼쪽에서 네번째) 넝마공동체의 이야기 ‘우리보고 죽우란 말이냐(We will never die)’가 상영됐다. 사진=고상현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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