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유통법 시행 후 6개월이 지났다. 법안의 성과를 가늠할 때다. ‘단통법’(단말기유통법)은 여전히 ‘단언컨대 통신사를 위한 법’의 약자라는 조롱을 듣고 있다. 하지만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용자 차별행위가 줄어들었다. 단말기 가격이 일부 인하되기도 했다. 문제는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국회와 시민사회단체는 가계통신비를 눈에 띄게 인하할 대안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1일 단말기유통법 6개월 평가자료를 내고 단말기유통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심현덕 참여연대 간사는 “사실상 실패한 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심 간사는 “지난 3개월 평가 때는 그래도 조금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었지만, 3개월이 더 지난 현재까지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가 이토록 박한 평가를 내린 이유는 ‘이용자 차별행태’가 여전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단말기유통법 도입 초기부터 ‘아이폰6 대란’이 벌어졌고 지난 1월에는 통신사가 대리점에 지급하는 리베이트를 통한 불법보조금이 횡행했다. 직후 방통위가 SK텔레콤에 한해 사실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대상 38개 유통점 중 31개 유통점에서 불법행위를 포착했다. 이들 유통점은 공시지원금보다 평균 22만 8000원을 초과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이용자 차별행위가 단말기유통법 도입 이전에 비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미래창조과학부 류제명 통신이용제도과 과장은 “일부 페이백 행위 등이 완전히 근절되진 못했지만 (단말기유통법이) 전체유통구조에 미친 영향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과거에는 이통사들이 특정 시기에 마케팅을 집중적으로 펼쳐 전체의 10%도 안 되는 소수에게 불균형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이에 반해 현재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 서울 시내의 한 이동통신 판매점. ⓒ연합뉴스
 

방통위가 단말기유통법 위반행위에 잇따라 강한 제재를 가한 결과 어느 정도 시장단속 효과를 보기도 했다. 더욱이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월 24일부터 ‘단말기유통법위반행위 신고센터’를 운영하며 불법지원금을 신고하는 이용자에게 포상금까지 걸었다. 대리점들이 긴장하는 분위기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긍정적인 지표들도 나오고 있다.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가 많이 늘어 평균 가입요금이 낮아졌다. 단말기유통법 시행 전인 2014년 7~9월의 평균 가입 요금은 4만5155원이지만 지난해 10월에는 3만9956원으로 인하됐다. 지난 3월 1~22일에는 3만6702원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지표에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그래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참여연대 안 처장은 “이전처럼 고가요금제를 강요하지 않는 상황에서 약간의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상 통신요금이 너무 비싸니 이용자들이 저가 요금제로 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시기 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액)가 올랐다는 점에서 가계통신비 인하가 됐다고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단말기 출고가 인하 역시 이전에 비해 많은 기종에서 이뤄지고 있다. 휴대전화 가격정보 사이트 피피넷의 표영진 대표는 “출고가가 어느 정도 내려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갤럭시S5나 G3의 경우 갤럭시S6와 G4 출시를 앞두니까 전략적으로 재고를 쳐내기 위해서 출고가를 내리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리베이트를 통해서 재고를 소진했을텐데 이제는 출고가를 내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 최신모델에 대한 단말기 출고가 인하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 사진은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당시 갤럭시S6 발표행사. 사진=삼성전자
 

그러나 출고가 인하가 인기모델에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한계도 있다. 참여연대는 “갤럭시 노트4의 출고가는 95만7000원이고, 2014년 3월에 출시된 갤럭시 S5도 여전히 86만6800원”이라고 밝혔다. 구형모델이나 비인기모델 위주로 출고가가 내려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단말기 구입부담이 증가했다는 지적도 있다. 참여연대 안 처장은 “통신사들이 단말기유통법을 빌미로 소비자에게 혜택이 되는 서비스를 중단되거나 없애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더 큰 통신비 부담을 안게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SK텔레콤은 가족포인트 상품의 포인트 적립 및 사용을 중지시켰으며, KT는 올레포인트 사용기한을 축소했다.

무엇보다 단말기유통법이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없는 까닭은 실질적인 가계통신비 인하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현배 전국통신소비자협동조합 이사는 “소비자들에게 단말기 가격구조, 요금제에 대한 인식수준을 높였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단말기가격이나 통신요금의 인하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은 점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실질적인 가계통신비 인하로 이어지지 않는 한 단말기유통법은 반쪽짜리에 그치게 된다. 휴대폰 출고가와 서비스 경쟁을 통해 가격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측면에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방안이 분리공시제다. 전국통신소비자협동조합의 한 이사는 “분리공시제를 기반으로 해서 제조사와 통신사의 단말기에 대한 기여도가 공개돼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고 있다”면서 “분리공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분리공시제는 보조금을 구성하는 제조사 장려금과 이통사의 지원금을 구분해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분리공시제가 도입되면 단말기 제조사 보조금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단말기 가격 거품이 빠지게 된다는 논리다. 본래 단말기유통법 도입을 논의할때만 해도 분리공시제는 포함돼 있었다. 김재홍 방통위 상임위원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단말기유통법 도입 추진 당시)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법안에 분리공시도입을 빼라고 권고했다”며 “그 결정은 지금 생각해도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서울 시내의 한 이동통신 판매점. ⓒ연합뉴스
 

통신요금을 인하하는 대안도 거론된다. 참여연대는 ‘이용약관심의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요금인가 심의를 공개적으로 운영해 요금인하를 유도하겠다는 발상이다. 참여연대는 “통신사 요금 인가 신청 건수는 2005년 이후 총 353건인데, 그 중에서 정부가 인가를 거부하거나 수정 요구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면서 “밀실에서 공무원과 통신 관계자들끼리 모여서 비밀스럽게 심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맥락에서 박기영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역시 “소비자들이 요금 책정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다른 대안도 거론되고 있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단말기 완전자급제’ 법안을 지난달 발의했다. 단말기완전자급제란 휴대폰의 제품과 서비스 구입을 별도로 하자는 내용이다. TV와 유료방송을 별도로 구매하듯 말이다. 사실상 판을 갈아엎는 시도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단말기와 이동통신서비스 판매 분리를 통해 이동통신서비스는 ‘단말기 마케팅’이 아니라 서비스 및 가격 인하 경쟁을, 단말기는 출고가가 아닌 소비자가격으로 판매되는 시장으로 유도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해서는 정부와 시민단체 모두 회의적이다. 참여연대 안 처장은 “자급제 자체가 통신요금이나 단말기 가격을 인하시키는 요인이 없다”면서 “오히려 단말기 가격을 더욱 올릴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부 류 과장 역시 “단말기유통법보다 훨씬 더 시장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라며 “소비자, 유통망, 제조사 모두에 득이 되기 힘들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점과 대리점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법안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힘들다”면서도 “아무리 보완을 한다고 해도 수 많은 유통점과 대리점의 생계에 위협을 줄 우려다 크다”고 말했다.

여야가 앞다퉈 단말기유통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에서 4월 임시국회가 열린다. 국회 관계자는 “황금주파수 논의와 더불어 이번달 중으로 단말기유통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가 반쪽짜리 단말기유통법을 온전한 한쪽으로 만드는 대수술을 시도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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