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나쁨’. 이 같은 일기예보가 나온 지난 30일 오전, 서울중앙우체국 앞은 한산했다. 전광판 위에 노동자들이 서 있었지만 올려다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마저도 외국인관광객이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낼 뿐이었다. 

전광판 위에서 두 노동자가 54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원청에 전원고용승계와 재하도급 금지를 요구하며 지난 2월 6일 농성을 시작했다. 고공농성 중인 장연의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연대팀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요구사항이 이행될 때 까지 내려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현재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싸운다’는 기조로 현장에 복귀한 상태다. 그러나 아직까지 임단협이 체결되지 못했다. 교섭은 난항을 겪고 있다. 사측이 경총을 대리자로 내세워 교섭을 진행하는 까닭에 사실상 원청에 해결을 요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박재범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그나마 SK브로드밴드는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LG유플러스는 교섭이 중단됐다”면서 “LG유플러스는 지난해 합의한 내용들이 후퇴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앞 전광판에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강세웅 조직부장과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장연의 연대팀장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노동인권 보장을 촉구하며 고공농성 중이다. (사진=이치열 기자)
 

고공농성이 장기화되면서 두 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장연의 팀장은 당뇨를 앓고 있다. 그는 전광판 위에서 약을 복용하고 있다. 두 노동자 모두 현기증을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미세먼지도 문제다. 장연의 팀장은 “미세먼지가 많다고 뉴스가 나오면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래도 사실상 야외에 있다 보니 미세먼지를 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광판 아래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몸 상태도 좋지 않다. 노숙농성 중인 이경재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지부장은 “60명 정도가 농성하고 있다. 다들 감기몸살 정도는 달고 있다”면서 “처음에 비해 지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원청인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는 시장에서 ‘호재’가 이어지고 있다. 두 업체 다 유료방송 업계 내에서도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LG유플러스는 2010년 유료방송 시장점유율이 2.9%에 불과했으나 2014년 7.2%로 3배 가까이 성장했다. SK브로드밴드 역시 2010년 점유율 4.5%에서 2014년에는 10.4%로 2배 넘게 성장했다. 이들 IPTV업계가 방송과 통신의 결합상품 공세를 이어가면서 방송단일 상품인 케이블업계 위주의 유료방송 시장을 재편하는 추세다. 

최근 IPTV업계 1위인 KT가 KT스카이라이프와 함께 점유율을 제한받는 합산규제 적용이 결정됐다. 3년 동안 비KT IPTV업계가 반사이익을 얻게 됐다. 최근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를 자회사로 편입시킨 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IBK투자증권 김장원 연구원은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를 자회사로 편입함으로써 더욱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경영 전략으로 성장의 폭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지난 30일 LG유플러스가 고객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유통하고 부실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실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가 대체투입인력에게 고액의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력업체의 경제적인 여력 또한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박진숙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여성부장은 “대체인력에게 직접 물어보니 일당 18만원을 받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희망연대노조는 노조 파업에 따라 협력업체에서 투입한 대체인력에 20만원 가량의 일당이 지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공농성중인 장연의 팀장은 “20만원이라고 해도 단순계산으로 25일 근무를 하면 500만원이다. 그 정도 돈을 줄 여력이 있다는 것”이라며 “직원들에게 그 절반이라도 지급했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료방송이 언론으로서 공적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방송은 그 어떤 분야보다 공적책임이 강조된다. 방송업계에 진출한 재벌기업이 비정규직 양산에 앞장서는 점은 큰 문제”라며 “이번 투쟁은 방송공공성 투쟁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상황이 좋다는 점과 유료방송의 공적 책무를 강조한다고 해도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도급 구조상 원청의 해결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원청이 적극적으로 하도급 구조를 개선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씨앤앰은 대주주가 국내사모펀드, 해외투기자본이기 때문에 비판받을 점이 많았다. 그 약점을 노조와 시민사회단체가 공략해 성과를 거뒀지만 SK와 LG는 전경련의 핵심 재벌그룹이기 때문에, 이들이 하도급 문제를 개선하면 ‘줄줄이사탕’처럼 자본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의 말이다.

   
▲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두 노동자.
 

문제는 원청의 협상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론마저 뜨겁지 않다는 사실이다. 장 팀장은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 정도 잊혀지는 건 피하기 힘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그래도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가 큰 힘이 된다. 구미의 스타케미칼이나 평택의 쌍용차 고공농성에 비해 접근성이 좋아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기도 하다”면서도 “그래도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와 희망연대노조는 IPTV업계의 노동문제를 대중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을 모색 중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IPTV업계의 개인정보유출 문제를 연달아 고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희망연대노조가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대체투입인력이 현장에서 미흡하게 일처리를 하는 점을 강조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전규찬 대표는 “언론이 무관심하고 여론이 무관심하다. 거기에 노동운동진영 내에서도 케이블과 통신분야 비정규직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면서 “통신재벌 특성상 관심을 갖는다고 무조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보다 큰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장기전을 버틸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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