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자식을 잃은 이유를 모르는 유가족들은 국가 권력에 가로막혀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지난해 봄부터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요구하던 수많은 행진이 형광 제복에 가로막혔던 모습의 반복이다.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그리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원하는 시민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416시간 농성을 선포했다. 그리고 진상규명과 실종자 수습을 약속한 청와대까지 행진할 예정이었다.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유가족과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청와대까지 행진하려했지만 50m를 채 가지 못하고 경찰에 가로막혔다. 1시간정도 경찰과 충돌한 50여명의 유가족들은 광화문 광장에 주저앉았다. 4월 16일까지 계획된 416시간 농성은 광화문 광장 앞 무기한 농성이 됐다. 

이들이 농성을 시작한 이유는 두 가지다. 지난 27일 정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의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을 통한 진상규명이다.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오지만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위)가 발표한 시행령에 대해 답변이 없어 특위를 무력화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던 정부는 지난 27일 별도의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특위는 세월호 특별법에 근거해 특위 사무처에 120명의 인력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90명으로 축소해 발표했다. 정부는 예산도 특위가 책정한 192억원에서 130억원 정도로 감축했다. 이에 특위는 지난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조사대상이 돼야 할 해양수산부와 해경의 권한을 강화한 정부 시행령안이 세월호 조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며 비판했다. (관련 기사 : “해수부·해경이 조사인력 상당수, 시행령 세월호 조사방해”

   
▲ 30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한 행진에 참여한 유민아빠. 사진=장슬기 기자
 

지난해 여름 46일간 곡기를 끊었던 유민아빠 김영오씨도 행진에 참여했다. 김씨는 “오늘부터 농성이 시작되면 ‘왜 아직도 떼쓰냐’는 시민들이 나타날 텐데 가족들은 그게 제일 걱정”이라며 “지난해 말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모든 사건이 해결된 줄 아는 시민들이 많은데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30일 오후 4·16가족협의회,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까지 진행하려던 행진이 경찰에 가로막혀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지난해 4월 16일 이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은 정부의 태도만이 아니었다. 사실을 왜곡해 유가족들을 공격하는 모습도 여전했다. 유민아빠는 “최근 대학 등에서 진행된 유가족 간담회에서 ‘유가족들이 보상을 다 받은 줄 알고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시민들이 있는 걸 보면서 아직도 진실이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며 “SNS에서 사실을 왜곡해 유가족을 공격하는 글들은 아직도 심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사실을 왜곡하는 보도로 언론에 두 번째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유가족들은 언론이 진실을 말해주길 기대했다.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는 “많은 취재진이 왔는데 단지 1주기가 가까워서만 나온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며 “가족들의 동정만을 보도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진상규명 방해와 그 동안 유가족들이 흘린 눈물에 공감해 광장을 찾은 것으로 기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정부의 특위 무력화 시도와 진상규명 방해를 지속적으로 보도해서 세월호 참사 보도가 국내언론보다 해외언론이 더 제대로 보도한다는 얘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달라”고 덧붙였다. 

   
▲ 30일 오후 4·16가족협의회,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농성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정의화 국회의장, 이완구 국무총리, 여야 원내대표에게 특위에서 결정한 특별법 시행령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부에서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항의서한을 보내고 면담을 요청할 예정이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이태호 공동운영위원장은 “600만명이 서명해준 법(세월호 특별법)이 언제 있었냐”며 “그런 법의 취지를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김재원 청와대 정무특보가 특위를 세금도둑이라고 했는데 정부 시행령대로 하면 특위가 세금도둑이 될 것”이라며 “시행령에 대한 방해가 이 정도라면 세월호 인양에 대한 입장은 어떠하겠느냐”고 지적했다.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 위원장은 “정부 시행령을 일부 조정을 해서 받아들이는 협상을 하자는 게 아니”라며 “반드시 이뤄내야 할 것은 특위가 제시한 시행령”이라고 못을 박았다. 김영오씨는 “목숨 걸고 단식했던 지난해보다 더 절박한 상황”이라며 “정부 시행령 안대로라면 진상규명은 끝나는 것이다. 물러설 곳이 없다”고 말했다. 

   
▲ 30일 오후 4·16가족협의회,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까지 진행하려던 행진이 경찰에 가로막혀 있다. 한 유가족이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탈진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유가족들은 경찰에 가로막힌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이날 노숙농성을 시작하고, 4월 16일까지 매일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오는 31일 오후에는 4·16가족협의회가 특별법 시행령과 관련해 긴급토론회를 개최하고, 오는 4일과 5일은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광화문 농성장까지 1박 2일 도보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광화문 농성에는 세월호 유가족과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소속 800여 단체의 대표들이 일부 참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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