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원인을 두고 합동조사단의 정보분석분과에서 이른바 ‘인간 어뢰’ 가능성을 분석했다가 조사에서 배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29일 천안함 사고 직후 국방비서관실에 배치돼 천안함 TF 활동을 벌였던 이종헌 전 청와대 행정관이 최근 출간한 ‘스모킹 건(SMOKING GUN)-천안함 전쟁실록’에서 이 같은 주장을 폈다. 인간어뢰설에 대해 당시 정부 핵심관계자가 실제로 그 가능성을 검토했다는 것을 밝히기는 처음이다.

이종헌 전 행정관은 본인의 저서에서 인간어뢰설과 관련해 “합조단 정보분석분과는 북한 해안에서 발사된 실크웜 등 지대함 미사일에 의한 피격과 수중추진기(SDV, Swimmer Delivery Vehicle)를 활용한 북한 특수부대의 공격 등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분석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 전 행정관은 “그러나 천안함 함체 분석 결과 등은 다양한 과학적 근거는 이들 공격에 따른 피해양상과는 매우 다름을 보여줬다”며 “SDV는 속도가 굉장히 느리고 서해의 높은 파고나 빠른 유속을 뚫고 올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등은 북한 해상저격부대의 SDV를 이용한 ‘인간 어뢰’ 공격 가능성을 보도했지만, 그 가능성도 배제됐다고 이 전 행정관은 전했다.

   
조선일보 2010년 4월 22일자 4면
 

조사대상에서 배제됐으나 합조단에서 분석까지 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합조단 또는 우리 정부 사이드 어딘가에서 이런 분석 중인 내용을 조선일보에 말해줬다는 얘기가 된다는 점에서 이들이 침몰원인을 이미 북한 쪽으로 염두에 뒀다는 해석을 낳는다.

실제 조선일보는 지난 2010년 4월 22일자 1면 <“북 인간어뢰 조심하라” 해군 올초 통보받았다>라는 기사에서 “군 정보사령부는 올해 초 ‘북한이 보복공격을 다짐하고 있으며 인간어뢰가 공격해 올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지침을 해군에 전달했던 것으로 21일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당시 “인간 어뢰는 어뢰에 모터 등 별도 추진기를 단 뒤 특공대원들이 직접 조종해서 목표물로 접근, 자폭하거나 별도 추진기에 기뢰 등을 싣고 가 목표 함정을 폭파시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조선은 해설기사에서도 “인간어뢰는 2차 대전 말기 일본의 바다 속 가미카제였던 ‘가이텐’에서 비롯됐다”면서 “북한의 인간어뢰는 자폭 방식뿐 아니라 반잠수정 등 수중침투 장비에 경어뢰나 폭발물을 탑재한 뒤 특공대원들이 목표 함정에 접근해 경어뢰 공격을 하거나 함정 밑바닥에 부착한 뒤 탈출하는 방식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이 전 행정관은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보는 가설들에 대해 적극 부인했다. 그는 한미자작극설, 미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소행설, 미국 잠수함 충돌설, 이스라엘 잠수함 충돌설, 기뢰설, 좌초설 등을 제시하면서 모두 가능성이 없는 가설들이라고 역설했다.

미군 잠수함 충돌설에 대해 이 전 행정관은 “의혹세력이 가장 열을 올리며 전파하고 있는 핵심 의혹으로, 가장 악랄하고 끈질긴 사이버 괴물”이라며 “천안함 관련 검색어로 늘 같이 다니는 키워드”라고 전했다. 

KBS의 제3의 부표 의혹 보도, 블로거 정론직필의 분석, 자주민보의 보도, 일본 전 교도통신 기자 다나카 사카이의 ‘한국 군함 천안 침몰의 심층’이라는 통일뉴스 기고문으로 이어지는 ‘잠수함설’의 경로를 두고 이 전 행정관은 “국제적 음모론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0년 4월 7일 방송된 KBS <뉴스9>
 

더구나 김황수 경성대 교수와 머로 카레스타 영국 캠브리지대학 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국제 학술지 논문에서 백령도 관측 지진파가 잠수함과 천안함이 충돌했을 때 잠수함에서 발생하는 자연 진동수(고유진동수)와 일치한다며 충돌 잠수함의 크기(10% 오차 범위)가 113m, 반지름 5.6m일 것이라고 발표한 사실에 대해서도 이 전 행정관은 책에 인용했다.

그는 잠수함설에 대해 “피격 수심은 47m에 불과해 미국 핵잠수함(LA급 100m 또는 버지니아급 104m)이 작전할 수 없는 수역”이라며 “백번 양보해 잠수함이 급부상을 하더라도 수심이 얕아 천안함 함저 중앙 부분과 충돌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잠수함설을 두고 “사실이 아니어서 폐기 처분된 의혹 쓰레기는 청소되지 않고 사이버공간에 여전히 남아 잠수함 충돌설 괴물을 연명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원색적인 잠수함설 비난은 한미 군사훈련이 벌어지던 때 벌어진 사고라는 점에서 당시 군과 정부가 이 가설의 전파를 가장 민감하게 여겼다는 뜻으로 읽힌다.

또한 러시아 천안함 검토결과 보도에 이어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의 뉴욕타임스 기고문(9월 1일)과 인터뷰, 김소구 지진연구소장의 육상조종기뢰 폭발 가능성 논문 등으로 뒷받침되는 ‘기뢰설’에 대해서도 이 전 행정관은 책에서 자세히 인용했다. 사고초기 모든 계선라인에 보고된 좌초 가능성에 대해 이 전 행정관은 ‘침몰지점 일대에 암초가 없다’는 근거를 들어 가능성이 없다고 단호하게 부인했다. 

이밖에도 생존자 가운데 고막손상이나 파편상, 화상을 입은 이가 없으며, 선체에도 화염흔적과 어뢰파편이 발견되지 않은 점, 형광등이 멀쩡한 점, 죽은 물고기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 등에 대해서도 이 전 행정관은 일일이 해명했다. 그는 “비접촉 어뢰 폭발 사례는 거의 없다”며 “폭발 충격파를 격실 선체가 대신 흡수하므로 사람에 전해지는 충격이 미미하며 형광등 주변에 설치된 다른 비상 조명 및 계기판이나 알루미늄 제작 패널 등도 버블제트를 직접 받지 않은 것은 그대로 남았다”고 주장했다. 대부분 과거 합조단이나 군에서 해명했던 내용과 다르지 않은 설명이다. 

무엇보다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의 흡착물질 실험에 대해서도 이 전 행정관은 “폭발환경을 충족시키지 못해 그 결과도 신뢰할 수 없으며, 과학적 실험 영역을 넘어 정치화됐으며 과도한 의도성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를 비롯해, 서재정 국제기독교대 교수,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과학과 연구실장, 정기영 안동대 교수 등의 잇단 실험을 통한 연구결과가 나오자 청와대에서도 “강력하고 전면적인 대응으로 입장이 급선회했다”고 이 전 행정관은 전했다. 이 전 행정관은 이들의 실험 결과에 대해  “천안함 관련 분석의 작은 일부일 뿐이며 아주 작은 부분의 결과에 대해 다른 주장이나 결과치가 있다고 천안함 조사 결과 전체가 부정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이 전 행정관은 천안함의 공동재조사가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흡착물질과 관련한 다른 결과와 해석에 대해서는 굳이 필요하다면 합리적 자세와과학자적 양식 하에서 과학의 영역내에서 얼마든지 상호 간 토론과 공동검증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과학자가 연구와 실험으로 말하지 않고 그 차원을 넘어 정치와 이념으로 경사될 경우 이는 과학을 앞세운 선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당시 천안함 조사결과·언론보도 검증위원회의 적극적인 반박에 대해서도 이 전 행정관은 처음엔 진지하게 경청하고 토론했으나 정치적 목표가 뚜렷한 단체였다고 비난했다. 그해 7월 2일 언론검증위가 합조단의 분석오류와 사실왜곡, 거짓해명을 지적하며 조사주체가 아닌 조사대상이 돼야 하므로 국정조사를 통한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그는 “무엇을 이야기한들 재조사 요구라는 정치적 목표가 분명한 상황에서는 그 어떤 설명도 무의미했다”며 “주장의 근거가 희박한 개인적 호기심이나 합리성이 약한 주장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국민 세금을 써가며 실험이나 시뮬레이션을 할 필요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함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의 1번 글씨 가스용접기 가열 실험과 금속 해저 부식 실험 등에  대해서도 이 전 행정관은 “해저 산소량과 유속, 온도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봤다”면서도 “국과수 주관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분석을 시도했으나 물 속 기간이 50여일로 짧았고, 금속재질이 부위별로 상이해 비교가 어려워 유의미한 결론을 얻어낼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근 뉴스타파는 이들이 자체적인 부식실험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당시 관계자 증언을 보도했다.

당시 합조단과 정부가 조선일보의 인간어뢰설에 대해서는 분석까지 했던 것과 달리 굵직한 의혹을 여럿 제기했던 KBS 보도에 대해 이 전 행정관은 거친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KBS의 ‘제3의 부표’ 보도에 가장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2010년 4월 7일 KBS <뉴스9>에서 방송된 ‘다른 곳에서 숨졌다’, ‘제3의 부표 왜’라는 두 리포트는 ‘제3부표 수중에서 UDT 동지회원들이 수색하면서 문이 달린 대형 구조물이 있는 것을 확인했으며, 해군 헬기가 길이 2m 파편을 실고 다른 곳으로 사라졌는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전 행정관은 “고 한주호  준위의 사망  위치가 함수가 아닌 다른 곳이고, 수중에 대형구조물이 잇는 것이 사실이라면 군이나 정부 발표는 완전한 거짓이라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준위가 제3의 장소에서 임무를 수행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제3의 부표는 참조 부표로써 한 준위가 잠수한 바 없다’는 국방부 반박과, ‘헬기 이동은 4월 8일 미군 헬기의 인양 수색지원을 위한 일종의 구조 훈련이라는 해군 공보실장의 반박을 소개했다. 

또한 2010년 11월 17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의 사례에 대해서도 이 전 행정관은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합조단 해체 이후 천안함 대응을 맡은 국방부 조사본부의 설명과 인터뷰를 교묘하게 편집해 의혹제기에 초점을 맞춰 방송했다”며 “당초 국방비서관실은 이 프로그램의 보도 성향을 고려할 때 부정적 결과가 있을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사전에 공정한 보도 약속을 분명히 받고 신중하게 진행할 것을 지시했으며, 강윤기 PD가 공정하게 방송하겠다는 약속까지 하고도 말실수와 논란이 되는 부분만 방송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전 행정관은 방송통신위원회가 KBS 추적60분 방송에 내린 중징계(경고)가 두차례나 법원에서 잘못됐다는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은 반영하지 않았다. 서울고법 행정1부는 추적 60분이 제기한 의혹은 감시비판의 역할을 해야 할 언론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합리적 의심에 기초한 보도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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