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5주기 무렵 출간된 청와대 행정관의 책에 그동안 법정과 언론에 공개됐던 사고당시 TOD 동영상과 다르게 영상의 내용을 묘사해 의문을 낳고 있다. ‘사고직후 천안함 가운데에 흰 선이 보이다 점차 갈라졌다’는 것이다. 이는 거의 사고순간에 가까운 영상이 있다는 뜻이 돼 미공개 영상의 존재여부와 함께 과연 TOD 동영상이 어디까지 촬영한 것인지 다시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천안함 사고 직후부터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에서 천안함 실무 T/F 등을 맡았던 이종헌 전 청와대 행정관은 지난 10일 발행된 ‘스모킹건(smoking gun)-천안함 전쟁실록’을 직접 집필해 사고당일부터 구조, 합조단의 조사활동, 각종 의혹제기 등에 대해 대응한 경험을 상세히 수록했다.

이 전 행정관은 책에서 주로 천안함 사건에 대한 기존의 정부 입장이나 합조단 보고서에 실린 내용을 위주로 기술했으나 TOD 동영상에 나타난 천안함의 침몰 과정과 KNTDS 등에 나타난 천안함의 항로 및 기동 속도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과 다른 설명도 했다. 

특히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TOD 동영상에 나타난 천안함의 침몰 모습은 이미 공개된 TOD 동영상(238 TOD초소가 촬영)과 상이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전 행정관은 사고 당일 촬영된 TOD 동영상에 대해 “백령도 초병이 찍은 TOD 영상 속의 천안함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해병 6여단의 이모 상병과 조모 일병은 간간히 천안함 궤적을 따라가며 지켜보고 있었다. 특이상황 없이 몇  시간이 지나갔다”며 “그러다 갑자기 해안가 절벽을 따라가며 비추고 있던 TOD 화면이 바다 쪽으로 휙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이 전 행정관은 이어 “약 30초가 지난 뒤 TOD는 바다 위의 물체를 스쳐 지나갔지만 너무 급히 돌리는 바람에 화면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다”며 “그러다 마침내 흐릿한 물체를 발견했지만, 이번엔 초점이 맞지 않았다. 화면 줌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비교적 또렷한 영상이 잡혔다”고 기술했다. 그는 “(그 때가 바로) 2분30여초가 지난 시점, 멀리 수면 위로 물체가 보였다”며 “물체 가운데로 흰 선이  보였는데, 조금 뒤 그 선이 서시히 벌어지더니 물체가 반으로 갈라져 둘이 됐다. 3분30여 초 뒤 그 중 하나는 아예 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하나도 옆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고 묘사했다.

   
TOD 동영상 갈무리
 

미디어오늘이 지난해 11월 확보한 TOD 동영상에는 이 전 행정관이 말한 ‘바다 위의 물체를 스쳐 지나갔다’는 장면은 당일 TOD상 시각으로 21시20분47부터 10초간 먼 바다에 희미하게 뉘어있는 듯한 함체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침내 흐릿한 물체를 발견했지만 초점이 맞지 않아, 화면 줌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다 또렷한 영상이 잡혔다’는 대목은 이 TOD 동영상에는 나타나있지 않다. 또렷한 천안함의 영상은 렌즈를 오른쪽으로 빠르게 옮기다 21시22분42초(TOD상 시각)부터 잡혔으며, 무엇보다 이 때의 천안함은 이미 완전히 둘로 갈라져 ‘물체 가운데의 흰 선’은 찾아볼 수 없다. ‘3분30초 뒤 아예 물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은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했는지도 불분명하다.

이와 함께 이종헌 전 행정관은 KNTDS상 천안함이 사라진 시점과 상황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KNTDS) 화면에 떠 있던 천안함 표시 신호가 한동안 깜빡거렸다”며 “천안함의 발신 신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40초간 70여 회 깜빡인 후 신호는 21시25분03초에 완전히 사라졌다”고 전했다. 이 전 행정관은 “21시25분 2함대를 비롯한 해당 근무자들은 함정신호가 사라진 것을 인지했다”며 “2분 후 해군작전사령부의 상황 근무자는 백령도 레이더기자에 천안함의 위치를 송신하도록 지시했다. 거의 동시에 소청도 레이더 사이트 근무자도 위성통신망을 이용해 천안함을 호출했다. 그러나 천안함은 응답이 없었다”고 썼다.

   
천안함 TOD 동영상 갈무리
 

또한 이 책에는 천안함의 이른바 ‘유턴’ 시각과 항로에 대해서도 기존에 알려진 내용과 다른 설명이 기재돼 있다. 이 전 행정관은 “다음은 당시 수역 상황과 천안함 기동 그리고 관련 합조단 판단과 북한 잠수정 공격 방법 등을 종합해 분석한 추정결과”라며 천안함의 기동 상황과 항로를 기술했다.

“(전략) 20시부터 천안함은 먼 바다로 나오지 않고 백령도 연안과 3.5km 정도 거리를 두고 152도 방향으로 동남진을 시작했다. 천안함은 21시5분 백령도 쪽으로 45도 변침하면서 속력을 높였다. 천안함은 파도 영향을 최소화해 배가 덜 흔들리게 하기 위해 속력을 9.4노트로 올렸다. 변침이 완료되자 속력은 5.2노트로 떨어졌다. 백령도 방향으로 나아가던 천안함은 21시10분 327도 북서 방향으로 최후의 대변침을 실시했다. 천안함은 백령도 두무진 방향으로 해안선과 나란히 6.7노트로 움직였다. 21시17분께 마침내 공격이 용이한 수심 50m 지점으로 접어들었다. 이 때 잠수정은 천안함의 8시 방향에 있었다. 천안함은 함의 좌현을 잠수정에 그대로 드러낸 채 북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잠수정이 천안함의 함 중앙을 공격할 수 있고 명중률이 극대화된 최적의 각도였다.(하략)”

이 전 행정관이 기술한 천안함의 항로와 기동속도는 “21시5분부터 백령도 쪽으로 45도 변침하면서 속력을 9.4노트로 높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 직후인 21시10분에는 327도의 북서방향으로 “최후의 대변침”을 했다는 대목도 있다. 

이는 박영선 당시 민주당 의원과 이기식 합참 정보작전처장이 2010년 10월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군사법원 국정감사 때 공개한 내용과는 상이하다. 박 의원은 백령도 서남방 어초지대에서 당시 21시5분~21시9분까지 유턴을 했다고 밝혔고, 이 처장도 “21시04분부터 08분까지 어초가 깔린 그 해역에서 변침을 했다”고 설명했다.

‘21시10분에 327도 북서방향의 대변침’ 언급은 당시 국정감사 땐 나오지 않았던 얘기이기도 하다. 이 전 행정관의 설명처럼 21시5분부터 ‘백령도 쪽으로’ 45도 변침했다는 것도 처음 나온 얘기이다. 이기식 작전처장은 당시 “350도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21시03분부터 변침하기 시작해  21시06분에 9.8노트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7.5노트, 6.6노트로 해서 153도 정도로 변침이 끝난 다음에 침로(변침한 항로)를 출하면서(나오면서) 6.5 노트 정도를 계속 유지했다”고 썼다. 

이와 관련해 박 의원은 당시 “천안함이 사고 직전인 당일 밤 9시5분의 위치(A)에서 9시9분의 위치(B)로 급격하게 유턴을 하면서 속도가 6.5노트에서 9노트로 속도가 급격히 올라갔다”며 “천안함이 (해당 어초지대에서) 회전을 하면서 스크루가 그물망에 걸렸든지, 아니면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서 이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갑자기 노트수가 올라갔을 것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러시아 보고서가 이것을 근거로 해서 스크루에 걸려있던 그물망이 스크루에 감기면서 그 해저 밑바닥에 있던 기뢰가 딸려 오면서 나중에 폭파 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기뢰설을 제기했었다.

   
2010년 10월 15일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공개된 천안함 유턴 항로. A에서 B로 유턴했다고 박영선 의원이 밝혔다. 사진=박영선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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