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지 5년째를 맞아 언론이 실체에 대한 규명 보다는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으로 굳혀가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은 추모와 안보태세 확립이라는 해마다 때되면 나오는 기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0년 3월26일 사고 이후 두 달 만인 5월20일, 민군합동조사단이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로 선체가 절단돼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합조단이 제시한 근거는 대부분 뒤집혔거나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천안함 5주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상당수 국민들이 의문을 품고 있다. 합조단 민간 조사위원인 신상철씨는 해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고 합조단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던 KBS <추적60분> PD들은 징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는 “과학적 진실은 이미 밝혀졌으며 학술논문도 여러 편 미국 학술지에 게재됐다”면서 “이와 상반되는 ‘정치적 진실’을 억지쓰는 소수가 있을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많지만 언론은 언젠가부터 질문하기를 포기했다. 잠수함은커녕 모선도 발견하지 못했고 해안가의 초병은 물기둥을 보지 못했고 폭발로 배가 두 동강이 나는데도 형광등은 깨지지 않았고 합조단은 1번 어뢰와 선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 폭발로 생성됐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 CCTV의 어긋난 시간과 최초 보고 시점, 사고 시점을 둘러싼 논란도 남아있다. 숱한 의혹이 남아있고 여전히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데 언론이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23~24일자 일간지 등의 천안함 5주기 보도는 △최원일 당시 천안함장 인터뷰 △유가족 인터뷰 △음모론 비난 등으로 채워져있다.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을 재조명하거나 검증하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반해 한겨레와 뉴스타파 등은 실체규명을 위한 별도의 취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 방송된 TV조선 보도. 사진=방송화면 갈무리
 
   
조선일보 3월 24일자 6면
 

5주기 관련 기사들 가운데엔 ‘황당한’ 추측기사도 눈에 띄었다. 조선일보는 24일자 6면 <북의 천안함 폭침 직전, 기상청 접속 갑자기 급증>에서 “2월에 하루 평균 24만 명이 접속하던  웹사이트에 30~40만 명이 몰렸다”며 “증가분에 해당하는 접속자들의 인터넷 주소(IP)가 대부분 중남미·아프라카란 점이었다”고 썼다. 수십만명이 서해상의 조류 파악을 위해 아프리카로 경유해 기상청에 접속했다는 추측이다. 조선일보는 2010년 천안함 사고 초기 인간어뢰 가능성을 제기한 적도 있다.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이흥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의 재판에서 나온 변호인 진술에 대해 TV조선이 왜곡된 방송을 냈다는 지적도 나왔다. TV조선은 <“북한 어뢰 아니다”…5년 지나도 여전한 의심>이라는 뉴스에서 신 대표측 변호인이 “국방부가 공개한 북한의 어뢰 설계도가 정말 북한의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며 “해군이 보안을 이유로 북한 어뢰 설계도의 일부만 공개하자, 북한의 것이 맞다면 설계도를 전부 공개하라고 물고 늘어졌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신 씨 측은 또 국방부가 공개한 천안함 폭침 당일 열상감지장비(TOD) 동영상도 믿지 못하겠다며 현장 재검증을 요구했다”고 방송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변호인이 한 발언의 맥락은 합조단 보고서에 동일한 크기로 게재된 어뢰 사진과 어뢰설계도가 일부 맞지 않으니 설계도 원본을 봐야 한다는 요구였다. 이흥권 재판장도 당시 “더 상세한 도면을 공개하는 것은 국익 침해 우려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으나 TV조선은 이를 방송하지 않았다. 

연합뉴스를 비롯해 서울신문 국민일보 한국일보 등은 22~23일 최원일 당시 천안함 함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서면인터뷰의 내용은 서의 동일했다. 이 인터뷰는 지난 22일 연합뉴스가 가장 먼저 서면인터뷰를 내보냈으며, 다른 매체들도 함께 내보냈다. 

   
지난 2012년 재판에 출석했던 최원일 전 천안함장. 사진=조현호 기자
 

인터뷰를 한 김호준 연합뉴스 기자는 2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최 함장 인터뷰는 우리와 한 것이며, 인터뷰 내용을 원하는 매체들에게 우리가 보내줬다”며 “해군과 당사자가 연합과만 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함장 인터뷰엔 반성이나 고백 대신 ‘군함에 어뢰공격을 감행할 집단이 북한 외에 이 지구상에 또 있나’, ‘과학적 조사결과를 못믿는다는 것은 정부와 군에 대해 맹목적으로 불신하는 일부 인사들이 진실을 왜곡해 선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닐까’ 등 일방적인 주장 투성이였다.

이를 두고 기자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5년 전 적극적인 천안함 취재를 했던 KBS의 한 중견기자는 24일 “최원일 인터뷰를 그대로 싣는 것은 언론이 추모와 확성기 도구로 전락한 것이며, 진정한 추모의 의미를 망각한 것”이라며 “책임자 처벌도 하지 않은 문제를 그냥 넘기는 ‘캘린더 기사’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정부 때부터 자행된 언론탄압 탓에  실체를 규명하려는 시도조차 사상검증의 대상이 됐다”며 “언론 역시 ‘묻지도 말라’고 하니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한겨레의 한 중견기자도 이날 “언론이 무력하다”며 “5년이 지나면서 ‘폭침’이 역사적인 팩트로 굳어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뒤엎기 위해서는 5년 전보다 더 큰 노력을 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하루하루 먹고사는 언론 구조로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 국방부 출입기자는 “이미 언론은 대부분 천안함 사건을 어뢰폭침으로 기정사실로 결론내고, 때되면 으레 보도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며 “100% 만족할 만한 설명이 아니라면 의혹을 제기해야 하는데도 언론이 제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천안함 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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