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자꾸 서울에서 전화하는겨? 그만하이소”
“죄송합니데이” ‘뚜…뚜…뚜…’
지난해 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한 고리원전 인근 주민들은 신분을 드러내기 싫어했다.  

지난해 10월 재판부는 한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고리원전 인근(기장군)에서 20여년을 살다가 갑상선 암에 걸린 박금선씨(49)의 손을 들어줬다. 원전과 암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첫 판결 이후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주민 548명이 1·2차에 걸쳐 갑상선암 공동소송에 참여했다. 원전 부근 10km이내 5년 이상 거주하거나 일했던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 548명 중 고리원전 인근 주민이 244명으로 가장 많다. 

   
▲ 신고리 3·4호기. 사진=장슬기 기자
 

고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원전이 가동된 지역이면서(1978년) 소송인단도 가장 많아 탈핵운동 분위기가 잘 형성돼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원고들은 익명 인터뷰조차 꺼렸다. 집단소송인단을 모집한 부산환경운동연합 최수영 사무처장은 “1차 소송인단을 모집하던 지난해 12월에도 주민들이 나서기 꺼려해 언론에서 겨우 몇 명 인터뷰를 진행했다”며  “지금은 나서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무슨 이유일까?

외면, “살다보면 암에 걸리기도 하는거지…”

고리원전이 위치한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효암리에서 7km정도 떨어진 장안읍 일광면 주민들은 탈핵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일광면 이동마을의 한 주민은 “그래서 원전을 없애자는 소리냐, 도시로 전기 올려 보내지 않으면 난리난다”며 “(갑상선 암)환자가 많다고는 들었는데 원전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쩔거냐”고 말했다. 그는 부산 해운대구에 살다가 은퇴 이후 3년 전 기장군으로 이사와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낮이 반이고 밤이 반인 것처럼 원전도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지. 자꾸 불안하다고 하는데 그럼 어떻게 사나, 인생이 다 그렇지. 여기 아니라도 전국에 암환자는 많잖아…” 

부산시가 지난 2010년부터 일광면 용천마을에 추진하고 있는 용천골프장 건설이 이들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다. 골프장에서 나오는 농약으로 수질과 토양이 오염되면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주민들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난 20일에도 주민 500여명과 기장군수, 각 마을 이장 등이 모여 용천골프장 반대집회를 열었다. 

   
▲ 지난 20일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주민 500여명과 기장군수, 각 마을 이장 등이 모여 용천골프장 반대집회 중이다. 부산시가 지난 2010년부터 일광면 용천마을에 추진하고 있는 용천골프장 건설이 주민들에게는 원전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사진=장슬기 기자
 

같은날 오후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이동마을 주민들은 마당에 모여있었다. 기장군에서 태어나 원전 인근에서 살아 온 김춘옥(66, 여)씨는 “월성(경주) 같은 곳은 똑똑한 사람이 많아서 반대를 세게 하는지 몰라도 여기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며 “아마 이 동네 여자들은 다 우뢰병(갑상선 질환을 가리키는 말) 걸렸을텐데 언제 다 소송하냐”고 말했다. 바다에서 미역과 다시마를 키워 파는 김씨는 갑상선 항진증을 앓고 있다. 

주민들은 일상이 된 원전에서 불안을 체감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터지면)다 죽지 뭐, 나발 불어서 (사고 났다고) 말 안 해주면 다 죽지. 경보 시스템, 그런 거 없다. 원전 안에나 있겠지…여기(천막에) 있으면 해가 지는지 달이 지는지 모르는데 그냥 화투나 치면서 재밌게 노는 거지” 주민 임순옥(78, 여)씨의 말이다. 임씨는 맞은편을 가리켰다. “이 할매는 미역 팔아 하루에 10만원씩 번다. 다들 반나절만 일해도 하루 5만원은 버는데 나이 팔십에 평생(살아 온) 여기 떠나서 어딜가노.” 

이동마을 옆에 위치한 동백마을도 갑상선 질환과 원전에 대해서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주민 김기찬(77, 남)씨는 “여기 암 걸린 사람 한명도 없다”면서도 “딸이 15년 전에 갑상선 암 수술을 받고 고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원전을 가동할 때 발생하는 엄청난 열을 식히기 위해 바닷물(냉각수)을 필요로 한다. 냉각수로 사용한 물(온배수)은 다시 바다로 흘려보낸다. 어민들은 기장 앞바다에 수온이 올라가고 물에 방사능 물질이 들어있어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소식이 퍼지는 것을 가장 꺼린다. 상대적으로 생계에 타격이 적은 농민들은 예민하지 않았다. 쪽파농사를 짓는 한 주민은 “갑상선 환자가 많다고는 하는데 사람들이 그런 얘기하는 거 안 좋아 하더라”며 “소송할 사람은 소송하고, 농사지을 사람은 농사짓는 거지 뭐”라며 말을 아꼈다.  

   
▲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동백마을에서 쪽파 농사를 짓는 주민들. 사진=장슬기 기자
 

비난, “원전 문제제기하면 집값, 미역 값 다 떨어진다”

양지에 널어놓은 미역을 정리하던 한 동백마을 주민은 외지인의 접근 자체를 불쾌해했다. “왜 자꾸 기자들이 와서 원전 욕하냐. 자꾸 마을주민들 공격하지 마라” 일광면 이동마을, 동백마을보다 원전과 조금 더 가까운 장안읍은 소송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결혼 이후 계속 장안읍 월내마을에서 살아 온 한 주민(78)은 “갑상선 걸린 X들 다 지 팔자”라며 “원자력 욕 많이 하는데 나는 한수원이 고맙다”고 말했다. 어떤 점이 고마울까? “나이 많은 분들 경로당에 모여 있거나 동네 행사 있으면 음료수도 한잔 씩 주고…막걸리도 한 병씩 주고…” 

한수원은 주민들에게 지역발전기금 명목으로 수천억원의 돈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회관이나 면사무소와 같은 건설자금으로 쓰이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직접 오는 혜택은 없다. 박금선씨의 남편 이진섭씨는 “기금을 주민들에게 n분의1하면 1인당 천만원이 넘는 정도인데 주민들 복지는 나아지는 게 없다”며 “다 건설업체 가지고 있는 지역유지들에게 지원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 원전 건설로 이주를 요구하고 있는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길천마을. 사진=장슬기 기자
 

장안읍 길천마을은 고리원전 3·4호기가 가동된 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이주를 요구해왔다. 이주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수원을 자극하는 보도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외지인만 발견해도 주민들은 “여기 아무런 문제없는데 뭐하려고 찍느냐”며 “여기 집값 떨어뜨리려고 (갑상선 암)소송한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 때문에 동네 망한다”고 소리쳤다. 

이진섭씨는 “원전에 기대 사는 사람들도 많고, 원전 기사가 나서 ‘기장 미역에 문제 있다’는 얘기가 돌면 매출 떨어질지도 모르니 소송 당사자들이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며 “원고들도 원전에 대해 비판하기보다는 배상금 탄다니까 참여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고리원전 1호기가 가동되기 시작한 1978년부터 오랜 기간 원전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 마을의 불문율이었다. 이진섭씨 사무실에서 갑상선 암 환자 집단소송 신청을 받은 김세규(46)씨는 “집단소송이 시작되는 지난해 말 인터뷰했던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며 “대부분 주민들도 안전하다고 믿지는 않지만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눈앞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체념, “바닷바람 없이 답답해서 우찌 사노”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여섯기다. 지난 2007년 수명(30년)을 다했지만 10년 연장하기로 한 고리원전 1호기를 비롯해 고리 2·3·4호기, 신고리 1·2호기는 부산시 기장군에서부터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 걸쳐있다. 

서생면 내부 분위기는 싸늘하다. 80년대 초 원전부지 입지선정 때부터 서생면 주민들은 원전 유치를 반대했다. 그러다 지난 1998년 울주군수가 한국전력에 지역발전을 이유로 고리원전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마을들은 서로 보상을 받기 위한 경쟁을 시작했다. 당시 원전과 더 가까웠던 서생면 골매마을 일부가 보상대상에 포함되고 바로 위에 붙어있는 신리마을은 양식장은 제외하고 임야나 과수원 등만 보상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2012년 6월 신고리5·6호기 건설이 확정되면서 골매마을은 전체가 이주대상이 됐고 현재는 이주예정지도 정해졌다. 신리마을은 2013년 12월 전체 이주가 확정됐지만 아직 이주예정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사무소.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인근 주민들에게 지원한 지역발전기금은 면사무소 건설 등에 사용된다. 서생면 인구는 6000여명이다. 사진=장슬기 기자
 

경남 거제도에 살다 결혼해 신리마을에 온 박소아(68)씨는 “두산(중공업)에서 와서 폭탄 펑펑 터트리면서 (신고리3·4호기 공사) 이 동네 횟집 다 망했고, 나도 산에 땅 좀 있었는데 한 평에 250원씩 받고 다 뺏겼다”며 “원전 반대는 이미 끝난 거고 이제는 어디로 이주할지만 남은 건데… 바닷바람이나 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신리이주대책위원회는 우리한테 충남 아산이나 경남 남해 독일마을 같은 이주마을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데 이 동네 떠나서 뭘 먹고 사느냐”고 말했다. 박씨는 50년차 해녀다. 

두 마을 모두 고리원전 북동쪽 5km내에 위치해있다. 서생면은 인구가 약 6000명이지만 암 환자는 많은 편이다. 집단 소송에도 서생면에서 참여한 암 환자는 65명이다. 고리원전 주변 해류가 서생면 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 11km 인근 해수담수화 시설 논란

원전도 위험하지만 고리원전에서 불과 11km 떨어진 곳에 지어진 해수담수화 플랜트가 더 시급한 문제다. 부산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 2009년 국비 823억원, 두산중공업 706억원을 받고 부산시 425억원까지 들여 부산 기장군 대변항 근처 봉대산 자락 바닷가에 시설을 설치해 지난해 12월부터 기장군에 상수도를 공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박금선씨 승소 이후 분위기가 반전돼 일단 해수담수화는 중단됐다. 

기장군 주민들은 해수담수화반대주민대책위원회(대책위)를 만들고 주민 5000여명의 반대서명을 받았다. 주민들은 원전에서 나오는 온배수에서 원전 액체폐기물에 삼중수소가 있고, 삼중수소는 정화과정에서 제거되지 않아 우리 몸에 들어오면 갑상선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노약자나 아이들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소식에 아이가 있는 주민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당장 마실 물이라 더 시급한 문제지만 이에 비판적인 어민들 또한 많다. 미역·다시마 가격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대책위 김민정 위원장은 “안전의 문제가 중요하니 심정적으로 대책위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목소리가 너무 커지면 생계에 피해가 가니까 결국 우리를 싫어하더라”고 말했다.            

고리, 소리 없이 병들어있는 곳

신고리 3·4호기는 가동만을 기다리고 있고 신고리 5·6호기는 2022년 가동을 목표로 원전 터를 닦고 있다. 신고리 7·8호기는 건설이 예정돼 있다. 원전 공사는 한수원 지원금을 통해 화려해진 마을회관과 잘 닦인 도로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해산물 값을 유지하기 위한 주민들의 침묵은 떠날 수 없는 이들의 슬픔의 다른 표현이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프다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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