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도는 느리다. 느리게 자란다. 지능은 5살 수준. 그리고 느리게 걷는다. 균도와 균도 아빠 이진섭씨는 하루에 20km이상은 걷지 못했다. 과잉행동을 보이는 발달장애 1급의 자폐아인 이균도(24)군의 한계다.   

하지만 균도는 전국 총 3000km를 걸었다. 그 결과 장애아동복지지원법제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고, 국내 최초로 균도 엄마 박금선씨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상대로 원자력발전(원전)이 갑상선암과 연관이 있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균도와 균도 아빠는 왜 걷기 시작했을까? “발달장애를 가진 균도가 학교를 졸업하자 갈 데가 없었다” 사회는 학교에서 떠난 균도를 받아주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균도 아빠는 자신의 스무 살 무렵을 떠올렸다. 걸어서 배낭여행을 하고 싶었던 그때의 꿈을 다시 꺼냈다. 

   
▲ 우리 균도 / 이진섭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균도와 함께 세상걷기’의 목표는 장애아동에 대한 의료·보육 등의 지원을 법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이다. 그동안 100kg이 넘는 균도를 챙기느라 힘에 부친 균도 엄마에게 잠시 휴식을 주는 의미도 있었다. 지난 2011년 3월 12일부터 40일간 부산에서 서울까지 600km를 걸었다. 같은 해 9월부터는 부산에서 광주, 2012년 4월부터는 광주에서 서울, 2012년 10월부터는 부산에서 강원도를 거쳐 서울, 2013년 5월부터는 제주도를 한 바퀴 걸었다.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다.(다비드 르 브르통) 세상에서 정말 무서운 순간은 누군가의 따가운 시선이나 비난의 언어가 날아올 때가 아니다. 그것들로 상처받은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들을 찾아보지만 침묵하고 외면하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을 때다. 균도 부자는 세상의 침묵을 가로질러 걸었다.   

걷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리를 모아낸다. 지난 2011년 3월 부산에서 서울까지 600km를 걷는 1차 행진 중 청주를 조금 지난 곳에서 균도 부자를 기다리던 부모가 있었다. 비가 많이 와 예상보다 일정이 늦어져 그 부모는 이틀 동안 균도 부자를 기다렸다. 균도 손을 꼭 잡고 그날 하루 함께 걸었다. 그 부모는 헤어질 때가 되자 하염없이 울더니 맛있는 거 먹으라며 돈을 건넸다. 

알고 보니 그 부모가 균도 부자를 기다린 곳은 오래전 자신의 아들이 죽었던 장소였다. 그들은 균도 아빠에게 ‘(아들이) 과잉행동을 보이다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고, 오랜 세월 잊고 살았는데 비슷한 상황에 처한 균도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균도 부자는 균도의 과잉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서로를 끈으로 묶고 있었다.

   
▲ 지난 2010년 9월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을 위해 균도(사진아래)와 균도아빠 이진섭씨가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진섭 제공
 

지난 2011년 1차 행진 직전 균도 아빠는 직장암을 발견했고 이듬해 균도 엄마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발달장애가 있는 균도까지 합하면 균도네 네 식구 중 건강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동생 균정이(19) 뿐이다. 겸자분만 직후 무호흡증이었던 균도의 발달장애는 정확한 원인이 의료사고인지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인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고리원전 근처에 살고 있는 균도네 가족 세 명은 지난 2012년 7월 한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0월 17일 재판부는 한수원이 균도 엄마 박금선씨에게 15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원전 인근 주민의 암에 대해 원전의 책임을 인정하는 첫 판결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희생을 당해도 쉽게 잊힌다. 하지만 균도 아빠는 “장애인도 연대의 손을 내밀 수 있고, 지금 균도는 장애운동을 탈핵운동으로 확장했다”고 말했다. 

이 판결로 균도가 살고 있는 고리원전 주변에는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는 원전 주변 주민 중 갑상선 암에 걸린 환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선 것이다. 균도 아빠가 일하는 부산장애인부모회 사무실, 환경운동연합 등을 통해 현재 528명이 한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차 집단소송은 오는 4월부터 재판 심의가 시작될 예정이고, 한수원은 지난해 10월 진 소송에 불복해 2심을 청구했다. 

두 번째 변화는 고리원전에서 불과 11km정도 떨어진 곳에 설치된 해수담수화(바닷물을 정화해 수도 공급) 시설을 운영하려다 중단한 것이다. 부산시 상수도본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이 시설을 통해 기장군 주민들에게 상수도를 공급하려고 했다. 기장군 주민들은 해수담수화반대주민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안전성 검증을 철저히 하지 않은 채 수돗물을 공급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장군 주민들은 지난 2008년부터 계획된 해수담수화 시설 공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최근 언론을 통해 상수도원이 바뀐다는 사실을 접했다.    

   
▲ 고리원전 인근 부산시 기장군에 거주하고 있는 이균도(24)씨. 사진=장슬기 기자
 

균도 아빠는 ‘균도가 웃는 세상’을 꿈꾼다.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장애인을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세상 말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원전이 멈춰야 하며, 주민들이 마실 물이 깨끗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없어야 한다. ‘내 아이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슬픈 희망이 아니라 ‘느리게 자라는 아이’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믿음을 향해 걷는다. 균도 부자는 균도(고를 균(均) 길 도(道))라는 이름처럼 바르고 곧은 길을 함께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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