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성소수자 축제인 퀴어문화축제 시청광장 개최를 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소수자를 차별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6일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조직위)가 오는 6월 13일 퀴어퍼레이드를 위해 시청광장 대관을 신청했지만 미리 잡혀있는 행사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는 지난 8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성평등에 대해 강조하며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직후라 더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세계 여성의날인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31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성 평등 ‘디딤돌’상을 받은 무지개농성단에 축하의 뜻을 전하며 “무지개는 비온 뒤에 뜨고, 비가 왔지만 비온 뒤에 땅은 더 굳는다”며 “앞으로 서울시도 함께 (성 평등운동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 지난 8일 제31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축사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지난해 말 무지개농성단(무지개는 동성애자의 상징)은 지난해 말 성소수자 차별에 맞서 서울시민인권헌장(인권헌장) 선포를 요구하며 서울시청에서 6일간 농성을 벌였다. 당시 서울시는 ‘성소수자 차별금지조항’을 문제 삼으며 시민들이 만든 인권헌장을 폐기했다. 박 시장이 인권헌장 폐기를 비에 비유했지만 무지개는 보여주지 않은 셈이다.

규정대로 90일전에 신청했지만 이미 일정있어 

조직위 인디 사무국장은 “신청전인 지난 12일 시청 홈페이지까지 확인하고 갔지만 법무부와 에스원이 진행하는 행사가 잡혀있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서울광장 운영을 맡은 서울시 총무과 청사운영1팀 관계자는 1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90일전에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직위가)그날 와서 신청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미 6월 10일부터 14일까지 행사 잡혀있었다”며 “최대 7일까지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법무부가 6월 10일로부터 90일전에 신청해 조직위에서도 제때 신청을 했지만 사용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인디 사무국장은 대신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일정이 없는 6월 9일에 서울광장을 사용하겠다고 했지만 서울시는 6월 8일부터 10일까지 통일부 행사가 잡혀있다며 다시 거절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청이 들어오면 바로 홈페이지에 표시해야 하는데 담당직원 착오로 부득이하게 표기가 안됐을 뿐 9일도 일정이 있다”며 “그분들(조직위)도 이해를 해줬다”고 말했다. 19일 현재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6월 일정들은 ‘검토’중이라고 돼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통일부, 법무부 등이 신청한 행사가 서로 겹치는 날이 있어서 어떤 곳을 선정할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6월 7일 서울 신촌 연세로 차없는 거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사진=퀴어문화축제 기획단
 

지난 16일 조직위는 트위터를 통해 “아침 9시에 맞춰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접수’조차 하지 못했고, 우리에겐 ‘검토’의 기회조차 없었다”며 “관공서, 대기업 행사보다 덜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냐 아니면 퀴어문화축제이기 때문이냐”고 비판했다. 인디 사무국장은 “지난 7년간 서울시청을 목표로 사용신고를 하러 갔는데 모두 거절당했다”며 “박 시장이 성소수자들과 함께하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보수기독교 세력의 눈치를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 노동당은 논평을 통해 “서울시가 여전히 광장사용을 일방적으로 독점하고 있거나 작년 인권헌장 사태에서 보여주었던 성소수자 혐오를 반복하는 것”이라며 “인권헌장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미 성소수자 문제는 서울시의 인권감수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됐다”고 비판했다. 

동성애 혐오세력에 굴복한 것 아니냐

인디 사무국장은 “행사 자체가 커지다 보니까 많은 사람을 안전하게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시청광장밖에 없다”며 “1년에 한번 있는 큰 축제이기 때문에 해외에도 퍼레이드는 광장에서 열리고, 인권도시 서울과 함께하는 퀴어퍼레이드라는 상징성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퍼레이드에서 기독교 단체들의 방해로 4시간 이상 행사가 지체되기도 했다. 인디 사무국장은 “남대문 경찰서에서도 얼마 전 전화가 왔는데 안전을 위해서 서울시청광장은 피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던데 안전을 위해 광장에서 해야한다”며 “결국 서울시청 앞에서 기독교 단체들이 항의하는 모습이 두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의 6.4 지방선거 포스터. 지난해 12월 2일 몽 무지개행동 활동가는 “지금은 우리 곁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시민(시민위원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인권헌장을 폐기한 이유도 서울시가 기독교 단체를 비롯한 동성애 혐오세력에 굴복한 탓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인권헌장 무산 당시 곽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서울시민 권리헌장 제정 과정에서 시민위원회의 제정권을 무시하고 (동성애)혐오 세력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박 시장”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여성의날 행사에서 박 시장이 ‘인권헌장 폐기’를 “비 왔다”고 표현했지만, 무지개는 허락하지 않은 셈이다. 

인디 사무국장은 “작년 행사가 끝나고 ‘반드시 2015년에는 서울시청에서 하겠다’는 목표로 그동안 35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며 “작년에 참여한 미국, 프랑스, 독일 대사관 뿐 아니라 덴마크, 노르웨이 대사관과도 연락 중인데 이들도 시청광장 퍼레이드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와 배우 권해효씨도 시청광장 사용을 위한 서명에 참여했다. 조직위는 아직 퍼레이드 장소를 찾지 못했다. 

사랑하라, 저항하라, 퀴어레볼루션(Queer Revolution)

퀴어퍼레이드는 오는 6월 9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제16회 퀴어문화축제의 메인행사로 조직위는 올해 참가인원을 3만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디 사무국장에 따르면 첫 퍼레이드가 있었던 2000년에 50여명, 지난 2013년 홍대 걷고싶은거리에서 진행된 퍼레이드에는 약 1만명, 지난해 신촌 연세로에서 진행된 퍼레이드에는 약 2만명이 참여하며 매년 인원이 급증하고 있다.  

   
▲ 2015년 제16회 퀴어문화축제 슬로건 디자인. 사진=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공.
 

퀴어퍼레이드는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주요 도시에서 매년 6월 열리는 행사다. 1969년 6월 27일 뉴욕 게이바 ‘스톤월’에 경찰이 들이닥쳐 성소수자를 범죄자 취급하자 이에 항의한 사람들이 싸우며 길거리에 나섰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다. 올해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사랑하라, 저항하라, 퀴어레볼루션(Queer Revolution)”이다. 

조직위 강명진 조직위원장은 “이번 슬로건 디자인은 성소수자의 인권과 사랑을 지키기 위한 축제의 적극적인 소통과 행동 의지를 담은 의미가 잘 반영됐다”며 “장소 선정의 어려움, 보수 기독교 세력의 방해 등 올해도 축제를 열기까지 난관이 많지만 우리는 사랑하고 저항하며, 축제라는 혁명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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