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이후 지난 5년 동안은 ‘북한 어뢰가 쐈다-아니다’와 ‘폭발이다-아니다’라는 씨름의 연속이었다. 북한제 CHT-02D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는 정부 발표는 1번 어뢰의 설계도 바꿔치기, ‘1번’ 글씨의 문제점, 어뢰잔해에 붙어있는 흡착물질 성분, 어뢰를 발사한 잠수정-잠수함의 기동 가능성 등 어뢰 자체의 진위가 도마에 올랐다. 더구나 어뢰폭침이라면 폭발을 일으켰다는 뜻인데도 폭발에 의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화상이나 파편상, 관통상, 고막파열 등을 입은 시신과 생존장병이 한 명도 없었다. 물기둥 목격자의 부재, 백령도 초병이 지목한 목격지점과 사고지점의 차이에 대해서도 정부는 설득력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천안함을 저렇게 했단 말인가? 무엇이 1200톤급 초계함을 두동강(또는 세동강) 내고 46명의 장병을 희생케 했는가? 5년 간 의혹을 제기해온 이들은 어뢰 폭발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그러면 무엇이냐는 질문엔 완벽한 답을 하진 못한다는 점이다. 여러 정황과 상식적 판단, 논리에 따른 이론은 있으나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사고당시와 조사과정 등 핵심적인 증거는 여전히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진실규명 작업의 한계이다. 천안함 5주기, 어뢰가 아닌 다른 가설들은 여전히 유효한지 점검한다.

아군기뢰론-러시아 보고서 존재, 에클스 단장이 확인…폭발의 증거는 있는가

정부 합동조사단의 1번어뢰론을 대체할 유력한 가설로 주목받고 있는 이론은 ‘아군 기뢰 폭발’론이다. 한국정부와 미국을 포함한 서방 조사단이 아닌 러시아 조사단(전문가)이 직접 방한해 며칠간 조사한 뒤 내놓은 결론이기 때문이다. 2010년 7월 한겨레가 조사보고서 요약본을 보도한 이후 외교부와 우리 정부는 보고서와 조사결과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안수명 박사가 공개한 미해군자료를 보면, 에클스 당시 미국측 조사단장이 이메일에 러시아 보고서 존재와 그 내용을 소개하고 반박한 내용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4일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으로 옮겨진 천안함 함수.
@연합뉴스
 

에클스는 △실수 또는 조작으로 설명되는 ‘시간의 불일치’ △천안함 프로펠러가 사고 전에 좌초(grounding)에 의해 입은 데미지 △샤프트에 걸린 그물 △어뢰잔해가 6개월 이상 바다속에 있었다는 판단 △해안가의 수심 7~10m에 있던 136kg 기뢰 가능성 등을 언급한 러시아 조사단의 보고서 요약본 주요 내용을 일일이 거론한 뒤 이를 반박했다.

결국 러시아 조사단이 보고서를 통해 천안함이 백령도 해안가까지 이동했다가 좌초하면서 그물에 걸려 딸려나온 기뢰에 폭발했다고 분석한 사실이 있다는 것은 확인이 된 것이다. 

에클스의 이메일에는 “한국이 러시아 보고서 사본을 갖고 있거나 본 것 같다”며 “그것을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좋은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또한 “러시아 보고서는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가 그것을 공개할 것처럼 위협하고 있으며, (그렇게 되면) 상황을 어둡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 대목도 있다.

천안함 합동조사단에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와 함께 유일한 민간 조사위원으로 참가한 김아무개씨는 사고 초기부터 지금까지 1970년대 백령도 앞바다에 우리 군이 매설한 육상조종기뢰가 폭발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는 자신이 1979년 박정희 사망 전 매설 책임을 맡았으며, 매설 직후에도 한 차례 사고가 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1980년 대에 우리 군이 이를 제거하려 했지만 여전히 3분의 2 가까이는 그대로 묻혀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대부분 끊어져있는 도전선이 바닷물과 천안함 선체와 만나 스파크를 일으키는 볼타전지의 원리에 따라 폭발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천안함 작전관이었던 박연수 대위는 지난 2012년 법정에 출석해 천안함 사고 지점을 수심 20m인 곳이라고 밝힌 점도 어뢰 보다는 기뢰 쪽일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폭발원점’이 백령도 서방 2.5km 지역의 수심 47m 지점이라는 합조단 발표와도 배치된다. 백령도 인근 해저 지형은 불규칙적이며, 수심이 들쑥날쑥한 곳으로 유명하다. 

   
과거 우리 군이 심었다는 육상조종기뢰(수압식 MK-6 폭뢰를 전기식 조종기뢰로 개조한 것). 사진=합조단 보고서
 
   
천안함 선저에 나타난 이른바 '압력흔', '버블흔'으로 제시된 사진. 배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반론도 있다. 사진=합조단 보고서
 

이 같은 가설은 ‘1번 어뢰’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의문을 해소하고, 러시아 조사단과 기뢰매설의 장본인이라는 사람이 주장한다는 점에서 주목되지만, 여러 모순점이나 비약이 존재한다.

천안함이 얼마나 가까운 곳까지 갔길래 해안가에 묻혀 있는 기뢰를 건드렸으며, 기뢰는 어디까지 딸려가다가 폭발했는지, 스크루에 걸렸는데 왜 선체 가운데가 두동강 났는지 등은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TNT 136kg 규모의 기뢰도 천안함을 절단낼 정도의 폭발력인데, 폭발의 흔적은 어디있는지, 그 잔해나 파편 조각은 있는지와 같은 ‘1번어뢰’에서 나타난 모순을 여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좌초론-초기상황 보고, 선저 흔적 가장 많이 거론…좌초로 저렇게 두동강 가능한가

어뢰·기뢰론에 맞서 초기부터 가장 많이 거론돼 온 천안함 침몰원인 가설은 좌초론이다. 이 이론은 선박구조인양전문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와 신상철 전 합조단 민간조사위원(현 서프라이즈 대표) 등 선박 제조·구난 경험자들이 선체 상태와 여러 정황을 보고 가장 많이 역설해 알려지기도 했다. 

천안함 승조원의 첫 보고, 해군작전사령부, 구조 해경, 백령도 초병 등 최초 사건 현장에 있던 대부분의 당사자들이 사고를 좌초로 보고했거나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천안함 포술장은 사고당일 21시28분 2함대 상황반장에게 “(OO구역) 천안인데 침몰됐다. 좌초다”라고 보고했다. 심승섭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은 2011년 8월 법정에서 “‘9시15분, 좌초’라고 합참에 보고했으며, 어뢰라는 보고는 당일 밤에도 올라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천안함을 구조한 해경정인 501함의 유종철 부함장도 그해 9월 법정에 나와 “구조하러 가는 도중 ‘천안함이 좌초됐다’는 전문을 전달받았다”고 증언했다. 유이(二)한 목격자인 백령도 초병 박일석·김승창씨도 그해 11월 법정에서 당일 9시31분에 상황실로부터 천안함(PCC·초계함)이 좌초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사고직후 실종자가족과 간담회장에서 ‘최초좌초’라 씌어진 작전상황도를 펼쳐든 유가족 이용기씨는 2012년 6월 법정에 출석해 “2010년 3월 27일 오전에 이원보 천안함 22전대장으로부터 ‘천안함이 (연봉바위쪽에) 좌초돼있다’는 말을 듣고, 평균수심 6m 정도밖에 안되는 곳에 천안함이 갔다는 것이 의문이 들어 오후에 천안함 작전관인 박연수 대위에게 ‘최초좌초’ 지점이 어디냐고 물었다”며 “‘백령도 서방 몇마일쯤’이라고 하길래 좌표를 찍으라고 했더니 해당 지점을 찍었다. 그 지점에 ‘최초좌초’ 별표표시를 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박형준 전 천안함유가족대표는 2012년 4월 법정에서 “생존장병 첫만남에서 무전기를 최초로 들고 올라왔다는 장병이 좌초라고 구조요청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군이 사고 직후 희생자 가족들에게 공개한 작전 상황도. 최초 좌초 지점이 표기돼 있다. 한 희생자 가족이 휴대폰으로 찍어 아시아경제에 제공한 사진.
 
   
천안함 함미 우현 날개들이 모두 휘어진 모습
 

천안함 함미 선저와 좌현 일부에 긁힌 자국이 남아있는 점도 천안함이 무언가를 긁고 지나간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는다. 천안함 우현의 스크루 날개가 모두 앞쪽으로 나란히 휘어져있는 것 역시 좌초의 강력한 정황으로 추정돼왔다. 백령도 근해에 암초(홍합여)도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좌초론은 배가 좌초됐다고 선체의 절단면이 저렇게 말아올려지듯 손상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반론을 늘 받았다. 또한 좌초되자 마자 바로 두동강나 가라앉을 수 있는지, 천안함 침몰지역 수심은 47m로 암초가 없는데 언제 어디서 좌초됐다는 것인지 등에 대한 의문도 이어진다. 

잠수함충돌론-美중령 “한미훈련중 벌어진사고”, 과학적논증·TOD 미상물체…증거가 없다?

천안함 의혹에서 가장 의심스럽고 한편으로 두렵기도 한 침몰원인 가설은 잠수함 충돌론이다. 수많은 누리꾼이 격렬하게 이 가능성을 주장했으나 검찰수사를 받기도 할 정도로 군, 언론 모두 기피하는 분석이기도 하다. 

   
TOD 동영상에 나타난 미상의 물체
 

잠수함충돌론이 의심받는 이유는 당시 사고당시 서해상 한미합동훈련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야간까지 계속됐으며 대잠수함 훈련도 실시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2010년 4월 3일 찰스 윌리엄스 준장은 미 언론과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고는 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훈련중에 일어난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잠수함 훈련이 3월 25일 오후 10시에 시작해 다음날 오후 9시에 종결됐으며, 주한미군 대변인 제인 크레이튼 대령은 “이 훈련은 천안함 폭발 때문에 중단됐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한 적도 있다. 이에 대해 합참은 “최하 170km 이상 이격된 서해 태안반도에서 실시됐으나 17시(오후 5시) 이전에 종료돼 시간상 거리상 천안함 사건과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이밖에도 김황수 경성대 명예교수는 머로 카레스타 캠브리지대학 연구원과 함께 잠수함 충돌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논증하는 연구논문을 발표해 큰 반향을 낳기도 했다. 천안함 사고 당시 지진파에 기록된 특유의 주파수(8.5㎐)가 약 2배(17.7㎐), 3배(26㎐), 4배 등으로 나타나는 이른바 ‘조화주파수’(harmonics)가 나타나는데, 이는 폭발 때는 발견되기 어렵다는 요지의 이론이다. 실제 선체의 손상 형태도 뭔가에 강하게 부딪혔을 때 나타나는 형태라는 분석도 있었다(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

이밖에도 미디어오늘이 확보한 사고전후 TOD 동영상에 나타나는 미상의 물체(점)의 존재, 동력을 상실한 함수가 약 200도 가까이 회전한 이유 등이 여전히 미상의 수중 물체와 충돌사고 가능성을 남겼다.

문제는 잠수함 충돌론은 다른 어떤 가설보다도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모두 가능성과 추정일 뿐이며, 충돌한 대상에 대한 최소한의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가설로만 남아있다. 한미간 군사정보가 공개되지 않는한 한미훈련과의 연관성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이론이다.

   
천안함 함미 샤프트에 여전히 걸려있는 그물.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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