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전 권리금 2억을 주고 계약했던 식당 주인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회원들과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 등은 16일 이 식당을 찾아 재개업식 행사를 열어 임대인에게 상생의 길을 제안하고,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촉구했다. 

지난 2007년 김선희(57, 여)씨는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꼬치구이 전문점을 차렸다. 보증금 3000만원, 월세 230만원, 권리금 2억원을 들였다. 지난 2004년부터 진행된 청진동 재개발과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촛불집회가 이어져 한동안 영업이 어려웠지만 임대인과 큰 문제없이 임대차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지난 2013년 3월 같은 건물 2층에 화재가 발생했고, 이를 이유로 임대인은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이후 임대인은 명도소송(임대인이 임차인을 나갈 수 있게 하는 소송)을 진행했고, 법원은 지난 15일까지 영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화재의 원인은 김씨의 식당과는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김씨는 화재로 훼손된 가게 수리비로 4000여만원을 추가로 지출했다. 

   
▲ 16일 오후 9년동안 영업해왔지만 권리금을 받지 못한채 쫓겨날 위기에 처한 종로의 꼬치구이 전문점에 맘편히장사하고싶은상인모임 회원들과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찾았다. 사진=장슬기 기자
 

김씨는 “판사도 임대인의 대리인도 할 만큼 했으니 나가라고만 하는데, 나갈 때 나가더라도 새로 들어올 임차인에게 내가 이 가게에서 쌓은 영업가치(권리금)를 보장 해줘야한다”며 “신·구 임차인간 오가는 권리금을 내가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맘상모 임영희 사무국장은 “현 상가임대차보호법은 5년이 지나면 임대인의 ‘나가라’는 말 한마디에 나갈 수밖에 없다”며 “권리금 약탈을 방지하도록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4월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민병두 의원은 ‘상가권리금보호에관한특별법’을 발의했다. 현행법에서 권리금 개념에 대한 실체적인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이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상가 권리금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말한 뒤 정부는 TF를 만들어 개정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상가건물임대차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민 의원 법안이 동종 업계의 권리금만 보호하는 것이라면 김 의원의 법안은 동종업계가 아니라도 권리금에 대해서도 보호하자는 취지라 한발 진일보한 법안이라는 것이 자영업자들의 평가다. 하지만 법안은 지난해 12월, 지난 2월 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했다. 

민병두 의원은 “정부여당은 수많은 임대인들 기득권에 포위돼 이 법의 완성과 제정을 진전시키지 않고 있다”며 “권리금 약탈방지법 통과를 목표로 3월말부터 피해사례를 더 수집하고 4월 국회에서 통과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 16일 오후 9년동안 영업해왔지만 권리금을 받지 못한채 쫓겨날 위기에 처한 종로의 꼬치구이 전문점에 맘편히장사하고싶은상인모임 회원들과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찾았다. 사진은 맘상모 임영희 사무국장. 사진=장슬기 기자
 

이날 재개업식에 참여한 강남 라떼킹 엄홍섭 대표는 “상가법에 보면 월세는 9%까지만 올릴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실제로 상가법 적용을 받는 서울시내 자영업 점포는 별로 없다”며 “장사가 좀 되면 월세를 배로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엄 대표는 “권리금과 인테리어비용을 생각하면 월세를 올려달라는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고, 어떤 임대인들은 권리금은 임차인간 문제니까 자기와 관계없다며 나가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자영업자들의 지적이다. 환산보증금이 4억원이 넘지 않더라도 임차인이 장사가 잘되면 임대인이 월급을 올리게 되고 그러면 이에 따라 환산보증금도 함께 올라간다. 또한 재건축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임대인이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인에게 나가달라고 할 때 현행법상 5년으로 보장된 계약기간도 보장받을 수 없다. 

엄 대표는 2011년 7월 권리금 약 1억6000만원, 보증금 4800만원, 인테리어 비용 등 총 3억원의 비용을 들여 강남 서울빌딩에 라떼킹 카페를 차렸다. 하지만 지난 2013년 6월 서울빌딩 임대인은 재건축을 하겠다며 엄 대표를 포함해 모든 세입자에게 나가달라고 통보했고, 엄 대표는 3차례의 강제집행을 막아내며 투쟁하며 같은 처지에 있는 자영업자들을 찾아다니며 연대하고 있다.  

꼬치구이 식당 김씨의 대리인인 김영주 변호사는 “현재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법도 문제가 많다”며 “임차인 입장에서 가장 진일보한 김진태 의원 발의법이 통과돼도 임대인이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인에게 나가라고 통보하면 보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재건축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예외에 해당한다. 

꼬치구이 건물 임대인 정아무개씨는 지난 16일 김씨에게 메시지를 통해 “명도날짜를 알려달라”고 전했다. 임대인 정씨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법원에서 1년 8개월 기간 연장해서 15일까지 영업하도록 돼 있는데 나가지고 않고, 생떼를 쓰고 있다”며 “을이 갑질을 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씨는 “권리금은 임대인과 관련 없는 문제고, 악행을 저지르는 쪽은 법도 판사도 무시하는 임차인(김씨)”이라고 덧붙였다.
 
종로 꼬치집 건물 임대인 정씨는 현행법을 어기지 않았고, 현행법상 보장된 개념이 아닌 권리금을 가로채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화재가 나 훼손된 부분까지 깔끔하게 수리하며 들어올 임차인이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기존 임차인 김씨를 계속 머무르게 할 유인이 없을 뿐이다. 또한 최근 공인중개사들이 임대인에게 권리금을 가로채는 방법이나 높은 매몰비용 탓에 월세를 올려도 저항할 수 없는 임차인의 약점 등을 자극하는 분위기에서 임대인 정씨가 특별하게 나쁜 임대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삼청동에서 옷가게를 하는 정명진씨는 권리금을 자신이 가져가며 임차인을 내쫓는 임대인을 만났다. 정씨는 “임대인에게 월세를 올리더라도 장사를 하겠다고 말했는데 임대인은 계속 임차인들을 내쫓고 다음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받아 가로챈다”며 “월세 올리는 것보다 몇 억원씩 되는 권리금을 챙기는 게 돈 벌기 더 쉬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맘상모 임영희 사무국장은 “임대인은 권리금이 임차인들 사이의 문제라고 하지만 권리금은 부동산 가치의 일부이기 때문에 임차인이 내쫓기면 임대인이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리금이 임차인간 영업의 대가를 보장해주는 관행이라 임대인이 개입할 수 없다는 김진태 의원 개정안을 계기로 재건축할 경우 상가법이 적용돼야하는지, 권리금은 부동산 가치의 일부라고 봐야하는지 등 대해서도 우리사회가 논의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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