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혐의로 구속된 김기종씨를 ‘종북’으로 규정한 뒤 김씨와 관련있는 단체들을 배후로 엮으려는 시도가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김씨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수사에 나섰다. 사건 당일인 지난 5일 새누리당은 논평을 통해 “김기종씨는 헌법재판소로부터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 등의 이유로 해산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었다”며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민자통(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연방통추(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등도 이곳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종씨의 리퍼트 대사 습격을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하면서 이념공세로 몰아가려는 연장선상에 있는 논평이다. 수사당국은 김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혐의를 내걸고 수사를 진행했다. 종로경찰서는 9일 오전 수사진행 브리핑을 통해 김씨의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이적성이 의심되는 책자 등 30여 건에 대한 외부 전문 기관이 감정한 결과 10여 건이 이적성이 있는 문건이라고 회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 윤명성 종로경찰서장이 서울 종로서 브리핑실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의 피습사건 관련 수사 브리핑을 하고 있다. 경찰은 피의자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경찰이 발표한 이적성 문건은 김정일이 직접 저술한 '영화예술론'과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 남측본부가 발행한 '민족의 진로' 등이다. 이에 이광철 변호사는 “지금 같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유튜브만 들어가도 북한의 노래나 영화를 접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북한의 '구국전선' 같은 사이트에 우회접속 하는 것도 가능한데 수많은 책 중 몇 권을 가지고 종북으로 규정하는게 가당하느냐”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리퍼트 대사를 칼로 찌른 김씨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지 못하면 피습사건을 옹호하는 것이냐”며 “국보법을 적용하지 못하면 김씨가 무죄라도 되는 듯 흉흉한 분위기”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 변호사는 “만일 김씨가 공안검찰 감시망 안에 있었다면 사건 당일 행사장 입장이 안돼야 했다”며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집념 아래 먼지털이식 수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김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 전에 국가보안법을 적시했다가 검찰의 문제제기로 한 차례 반려당하기도 했다. 검찰은 김씨에게 이적물이 있을 것으로 단정하고 영장에까지 혐의를 포함시킨 것은 법리상이나 수사 기법상으로도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라 조급한 경찰수사에 대한 비판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배후를 찾으려는 노력은 언론에서도 거들고 나섰다. 9일 머니투데이는 <“김기종, 간첩죄 무기수 출신과 정기모임”>에서 향린교회 ‘평화소모임’을 언급하며 이곳에 김씨가 수년간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간첩죄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받았던 A씨를 소개하며 평화소모임이 A씨가 함께 참여하는 모임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교회 관계자와 교인들 인터뷰를 실어 평화소모임을 김씨의 배후로 모는 듯한 보도를 내놨다. 

   
▲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초청 특별강연회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흉기로 습격한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가 종로경찰서에서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되며 "전쟁 훈련 반대"를 외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향린교회는 악의적인 보도라는 입장이다.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는 “평화소모임 참가자들이 대부분 나이도 많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일요일(8일)에 낯선사람이 와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알고보니 머니투데이 기자였다”며 “취재요청도 없이 와서 멘트를 받아갔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기사에 사용된 멘트를 포함해 김씨가 평화소모임과 정기모임을 했다는 것은 향린교회 공식 입장일 수 없다”며 “머니투데이 보도가 나가고 TV조선 기자도 취재왔는데 취재 오는 것 자체가 악의적인 목적이라 조용히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향린교회 평화소모임은 향린교회 교인들만 참여하는 모임도 아니다. 향린교회 고상균 부목사는 “평화소모임 대부분 구성원들이 외부인이고 멤버십을 가진 모임도 아니”라며 “김기종씨를 한두 번 봤다는 사람이 있을 뿐 향린교회랑 바로 연결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비판했다. 고 부목사는 “수사당국이 평화소모임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론에서 어떻게 미리 알고 왔는지 모르겠다”며 “미리 그림을 그려놓고 (종북으로) 묶으려는 의도가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고 부목사는 “A씨는 고인이 된 사람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현재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라고 말했다. 
  
김기종씨의 변호를 맡은 황상현 변호사도 9일 “(김씨를) 국가보안법으로 결론내놓고 몰고간다”며 “종북몰이를 위해 주변인물 파악을 하고 있어 김씨 때문에 많은 사람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등 언론들은 김기종씨가 “김일성은 20세기 민족지도자”라고 경찰에 밝혔다고 보도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김구연 보안2과장은 이날 "평화협정 체결, 남북한 문화예술활동 등을 묻는 과정에서 '김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김씨에게 물었더니 '20세기 민족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황상현 변호사는 “대한민국에 그렇게 말할 사람이 어디있냐”며 “꼬리 머리 다 자르고 구미에 맞는 말만 보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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