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11월 천안함 의혹을 제기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경고)를 받아 4년 여의 불복소송을 벌이며 1심에 이어 최근 항소심에서도 승소한 당시 KBS 추적 60분 제작진이 천안함 5주기를 맞아 정부 뿐 아니라 천안함 보고서 작성자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흡착물질 분석 등 사실과 다르게 작성한 보고서 책임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합동조사단이 쉽게 입증할 수 있는 길을 놓아두고 어려운 방법을 택했다가 되레 의혹을 증폭시키게 한 이유도 의문이라고 제작진은 밝혔다.

강윤기 전 KBS <추적60분>(‘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 PD(현 <명견만리> 제작진)는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서울고법 행정1부(재판장 곽종훈 부장판사)의 방통위 제재처분 취소 판결에 대해 탐사프로그램 제작자이자 천안함 의혹을 추적하는 언론인으로서 뿌듯하게 한 판결이었다고 평가했다.

강 PD는 “판결문을 받아보고 몇 번을 읽었을 만큼 감동적인 내용의 판결”이라며 “재판부가 제작진의 제작의도와 과정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언론자유의 환경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판결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탐사프로그램 공정성과 객관성의 기준이 선거보도와 같이 양적 균형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재판부 판단에 대해 강 PD는 “굉장히 의미있는 판결이자, 향후 비슷한 많은  사건에 적용될 수 있는 판결”이라며 “권력에 대한 감시견제라는 언론으로서 당연한 역할을 했다는 표현은 뿌듯하고 고마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나긴 기간 동안 소송을 벌인데 대한 명예회복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며 “너무나 중요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KBS <추적60분> 천안함 편을 제작했던 강윤기 PD. 사진=조현호 기자
 

이번 판결의 의미를 두고 강 PD는 “현행 방통심의제도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정치편향 심의로 언론자유 얼마나 침해하는지를 드러냈다는 것이 첫 번째이며, 두 번째로는 천안함 정부 발표에 합리적 의심이 유효하다는 것이 법원에서도 확인이 됐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흡착물질의 성분 분석을 통해 폭발재라고 작성한 합조단 보고서에 대해 강 PD는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폭발재)이었다는 합조단의 주장에 대해 ‘그것이 아니다’라는 게 합리적 의심이라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라며 “이는 과학적 근거라고 가장 강하게 밀어붙였던 합조단 논리의 큰 틀이 무너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초병들의 진술 역시 폭발원점과 크게 다른 방향에서 섬광을 봤다는 것과, 그 초소 남쪽에 있는 다른 인접 초소에서는 섬광을 보지도, 진동을 듣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비춰 재판부가 ‘합조단 발표 폭발원점의 위치가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의문이 ‘합리적 의심’이라고 판단한 점도 큰 의미를 지닌 판단이라고 강 PD는 평했다. 

휘어진 스크루를 스웨덴 조사팀이 실제로 분석하지 않았는데도 이를 스웨덴 조사팀이 조사한 것처럼 주장한 합조단과 방통위측과 관련해 강 PD는 “왜 사실을 과장 왜곡하면서까지 스웨덴 조사팀이 이를 조사한 것이라고 억지주장을 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라며 “실제로 이를 조사(시뮬레이션)한 노인식 충남대 교수도 우리와 인터뷰에서 ‘스웨덴 조사팀에 맡기라’고 제안했으나 결국 자신이 하게 돼 의문이었다고 밝혔을 정도”라고 전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흡착물질이 침전물일 가능성이 높은 ‘비결정질 알루미늄 수산화수화물’인 것으로 밝혀낸 정기영 안동대 교수와 합조단 연구책임자와 동시에 증인신문을 하려 했으나 재판 당일 합조단(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이 출석을 거부했던 일도 있었다고 강 PD는 전했다. 그는 “당시 정 교수는 증인 출석을 위해 연차까지 내면서 수업을 휴강하고 출석했으나 군 측에서는 사전 통보없이 아예 불출석했다”며 “양측을 불러놓고 동시에 증인신문을 하려한 것은 재판부가 제안해 이뤄졌던 것이나 반쪽 신문밖에 안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KBS <추적60분> 천안함 편을 제작했던 강윤기 PD. 사진=조현호 기자
 

이를 두고 강 PD는 “보고서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하는데 논리가 부족하고 토론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불리할 것 같으면 빠지고, 문제제기 하면 이상한 식으로 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강 PD는 천안함 사건과 의혹규명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건이 전쟁을 유발할 뻔한 사건이며, 여전히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5·24 제재가 유효한 상태”라며 “정부가 발표한 북한 어뢰 피격설이 맞다면 적어도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클리어해야 하며 오류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의견서였다”고 전했다.

강 PD는 “오류가 없어야할 대한민국의 정부 천안함 보고서에 오류가 나타났다면 계속 수정보완을 통해 명쾌하게 해명해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는 과학적 이론을 담은 보고서에 오류와 의혹이 끊이지 않는데도 왜 재조사 및 검증을 거부하고 열린 자세를 보이지 않는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또한 천안함 사건의 의혹을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도 합조단이 어려운 길을 택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그는 “합조단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었다”며 “객관적 정보인 KNTDS와 교신기록, 항적 등 당시 벌어진 모든 자료를 제시했다면 의혹을 일거에 종결시킬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가 더 비과학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강 PD는 흡착물질 분석을 비롯해 보고서가 잘못 작성된 것에 대해 “왜 이렇게 당시 사실과 다르게 작성했는지는 그 책임자들이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0년 11월 1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
 

방통위가 항소심 판결에도 불복하고 최근 상고해 다시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간 것을 두고 강 PD는 “상고 안하기를 기대했으나 유감스럽다”며 “국가기관이 하는 소송은 모두 세금으로 하는 것인데, 1·2심에서 모두 패소했으면 왜 이렇게 패소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되돌아보지는 않고 끝까지 법적으로만 해결하려 드는 것이야말로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안함 5주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강 PD는 “여전히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의혹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등의) 소송이 진행중이기도 하며, 동북아 평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5·24 조치도 남아있다”고 말했다. 강 PD는 “큰 오류가 증명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이 문제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며 “정말 어뢰 피격이 맞다면 5주기 맞아 모든 자료를 오픈하고 재조사를 통해 의혹을 해소하거나 의문이 더 크게 나온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 5주기 뿐 아니라 10주기까지도 계속 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5주기를 맞은 천안함 진실 규명의 문제가 더 이상 의문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공개돼야 할 ‘정보’의 영역이 됐다는 점도 지목됐다. 강 PD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정보를 오픈해 이를 모아보면 쉽게 끝낼 수 있다”며 “KNTDS(해군전술지휘시스템)과 교신기록, 항적, 보고내역 일체, 당시 한미합동군사훈련 일지 및 현황 등 좌초설이나 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하는 이들의 요구사항만 보면, 굳이 과학적 분석 등을 하지 않아도 답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는 “군이 연평해전 때는 모든 기밀을 스스로 다 공개해놓고 천안함 때는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천안함 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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