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3월 8일, 미국의 1만5000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뉴욕의 루트거스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는 요구와 함께 하루 10시간으로 근로시간 단축, 임금인상 등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당시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보통 하루 12~14시간씩 일했고, 귀부인들의 번쩍이는 악세사리를 만드느라 눈을 멀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투표권과 노동조합을 만들 자유가 없었다.  

이날 섬유·의류 노동자들의 시위를 계기로 세계적으로 여성운동이 널리 확산됐고, UN은 1975년 세계 여성의 해를 맞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다. 현재는 170여개 국가에서 기념하고 있으며 몽골·베트남·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올해로 세계 여성의날은 107주년을 맞이했다. 

   
▲ 1908년 미국의 섬유노동자 1만5000여명은 여성의 권리를 찾기위해 행진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UN은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다.
 

한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3·8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여성의 날 행사는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됐다가 해방 후 잠시 부활됐고, 1948년 이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의 탄압으로 맥이 끊겼다. 1985년부터 다시 시작돼 올해로 31번째인 한국여성대회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각계 사회인사와 305개 단체·1500여명의 시민들의 참여로 진행됐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여성의날을 앞두고 고등교육과 남녀 임금격차, 기업 임원과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을 종합해 수치로 낸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이 100점 만점에 25.6점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인 28위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5.7%이며, 42개 정부기관 공무원 중 여성과장은 남성과장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올해의 여성운동상 “파출부가 아니라 가정관리사”

여성의 권리향상을 위해 노력한 단체에게 주는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전국가정관리사협회’(전가협)에게 돌아갔다. 여성이 가정에서 당연히 해야하면서도 무급이었던 가사노동이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받고, 가사노동자가 가정부나 파출부가 아닌 ‘가정관리사’로 불릴 수 있도록 노력한 것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가협 윤현미 협회장은 “올해부터 우리는 주먹구구식 가사노동의 관행을 깨기 위해 이용계약서 쓰기 운동을 시작했다”며 “그동안 쉬는시간, 점심시간도 없고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하던 파출부가 아닌 사람을 살리는 노동자로 일할 수 있도록 15만 가정관리사들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경남 밀양에서 고압 송전탑 설치 반대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밀양 할매들’이 받았다. 

   
▲ 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1500여명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제31회 한국여성대회 행사가 열렸다. 사진= 장슬기 기자
 

이 외에도 이날 행사에서 여성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성평등 ‘디딤돌’로 선정했다. 지난해 여성대회에서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르노삼성공대위)를 개최했던 성희롱 피해자와 조력자, 성소수자 차별에 맞서 지난해말 서울시민 인권헌장 선포를 요구했던 ‘무지개농성단’,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을 영화로 알린 <카트>의 제작자 심재명 명필름 대표와 부지영 감독, 지역유지의 성폭력을 고소했다가 가해자가 무고죄로 역고소하는 바람에 유치장에 일주일간 갇혀있기도 했던 김아무개씨, 파업 11개월째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라며 투쟁 중인 부산합동양조 5명의 여성노동자, 여성직장인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게 한 드라마 미생의 원작자 윤태호 작가와 정윤정 작가 등 6팀이 선정됐다. 

여성운동의 상징인 보라색은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색이기도하다. 성평등 디딤돌로 선정된 무지개행동에서 활동하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장서연 변호사는 “성평등은 성소수자 운동과 여성운동이 함께 해결할 과제”라며 “무지개행동이 성소수자단체라는 이유로 비영리법인 설립허가를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국내 최초의 성적 소수자 공익 재단으로 출범한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법인 승인이 거부됐다. 법무부, 서울시, 국가인권위원회는 미풍양속을 저해하고 보편적 인권에 위배된다고 거부 사유를 밝혔다.  

   
▲ 제31회 한국여성대회. 사진 =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성평등 걸림돌, Story on의 ‘Let 美人’ 등 6개 선정

이날 행사의 사회를 맡은 배우 권해효씨는 “3·8 기념대회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며 “그만큼 여성들에게 쌓인 것이 많다는 소리”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성평등을 가로막는 ‘걸림돌’도 6개 기관이 선정했다. 군대 내 성추행 및 가혹행위로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결백을 주장하는 노아무개 소령, 정규직 전환을 3일 앞두고 계약해지 통보를 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든 중소기업중앙회,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의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은 서울고등법원의 제1형사부 판사들, 인권탄압과 정규직 노동자의 계약직 강제 전환 등을 자행한 ‘레이테크코리아’, 10대 여성 성폭력 사건 가해자인 연예기획사 대표에 대해 무죄취지의 판결을 내린 대법원, 외모차별을 심화시키고 있는 케이블 방송사 Story on의 ‘Let 美人’프로그램 등이 선정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선정한 올해의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된 Story on의 ‘Let 美人’의 한장면.
 

이날 행사에 앞서 500여명의 시민들은 종로, 을지로, 서대문 등 서울시내 일대에서 한국여성대회로 가는길을 함께 걷는 행사인 ‘퍼플워킹’을 진행했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는 한국여성민우회 등 17개 단체가 부스를 차려 성평등과 관련된 각종 행사를 진행했다. 또한 세계 여성의날 기념 특별문화행사 ‘성평등, 우리가 걸어온 길 캘리그라피展’이 3월 2일~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열린다. 제31회 여성의 날 관련 행사는 “성평등은 모두를 위한 진보다”(Equality is progress for all)라는 슬로건을 걸고 진행된다.

   
▲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31회 한국여성대회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당대표,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 등 정치인들이 참여했다. 사진=장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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