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한겨레에 ‘동성애를 조장하는 광주인권헌장을 반대한다’는 주장이 담긴 전면광고가 실렸다. 광주기독교단협의회 등 기독교 단체들이 모여 요청한 이 광고는 광주인권헌장이 동성애문화를 조장하고 이단과 사이비가 창궐하는데 악용되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있다. 평소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기사를 써온 한겨레에 실린 광고라 성소수자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비판이 거셌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광고는 주요 일간지에 꾸준히 실려왔다. 2010년 10월 동성애차별금지법 반대 국민연합 등은 중앙일보에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라는 제목의 광고를 실었고, 지난해 윤 일병 사망 사건 등 군대 내 폭력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자 보수단체들은 군대 내 각종 폭력의 원인을 동성애 탓으로 돌리며 동성애 혐오 광고를 여러 일간지에 지속적으로 게재했다.  

   
▲ 2010년 10월 14일 중앙일보 광고.
 

지난 6일 의견광고를 주제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회원인 나라씨는 “혐오는 의견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소개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해 결과적으로 차별과 폭력을 부추기는 언행을 공론장에서 존중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차별금지법 등 성소수자 인권보장 제도에 반대하고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의견광고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0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자가 비중있게 등장하면서부터다. 이후 지속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는 광고란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됐고, 성소수자나 인권단체들은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어 대응했다.

나라씨는 “혐오 광고는 개인의 단순한 혐오 표현과 다르게 봐야하는데, 사회적 편견과 혐오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성소수자들의 삶을 위협한다”며 “사회적으로 폭력과 차별을 정당화하고, 성·여성·가족 등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나라씨는 “성소수자 쟁점은 일상적으로 다뤄지는 뉴스가 아니기 때문에 (광고를 통해) 예외적으로 다루는 것은 편견과 차별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혐오는 편견에 기반하기 때문에 사실관계나 논리만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나라씨는 “당연히 올바른 정보와 성소수자들의 삶의 진실한 모습이 전해져야 하지만 소수자들에게 공정한 발언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며 “언론노조를 비롯한 언론계, 진보적 시민사회에서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확대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 2014년 12월 11일자 한겨레 광고.
 

한겨레 노동조합 최원형 미디어국장은 “의견광고는 한겨레 뿐 아니라 대다수 신문사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된다”며 “광고의 자유와 광고에 대한 규제는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국장은 “진보언론을 표방하며 기득권 세력을 감시·비판하고 소수자와 약자의 권익을 대변하면서도 최대한 매출을 창출하자는 딜레마에 가까운 목표를 추구하게 됐다”며 “상업 언론으로서의 한계”라고 덧붙였다.

한겨레 노조는 성소수자 혐오 광고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최 국장은 “한겨레 내부에서는 의견광고와 관련한 의견 충돌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있는 광고는 광고국 단독으로 결정하지 않고 편집국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됐다”며 “공공자원을 활용하는 방송광고의 경우 공적인 통제가 갖춰져 있지만 신문은 그런 통제장치가 없고 신문광고윤리강령 정도가 유일한 척도”라고 말했다.  

   
▲ 2010년 9월 한겨레에 실린 동성애 혐오 반대 광고.
 

신문광고윤리강령에 따른 신문광고윤리실천요강은 ‘공익을 위함이 아니면서 타인 또는 단체나 기관을 비방, 중상하여 그 명예나 신용을 훼손시키거나 업무를 방해하는 내용을 게재해서는 안 된다’, ‘허위 또는 불확실한 표현으로 대중을 기만, 오도하는 내용을 게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TAW(터)네트워크 정혜실 대표는 “진보적 신문을 자처하는 한겨레·경향신문까지 의견광고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광고를 신문광고의 윤리적 해석으로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한국의 현 상황에서 혐오발언이 의견으로 용인되는 과정도 문제라고 인식해야 한다”며 “혐오는 분명히 폭력이며 모욕임을 국가인권위원회 등 국가 기관이 문제제기 하고 언론과 시민사회의 선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언론에서 혐오발언이 기사든 광고든 표현되면 안 된다”며 “광고수익이라는 구조적 요인도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 대표는 “수익구조의 문제로 보수세력의 확장과 공고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강력한 통제수단이 필요하다”며 “인식을 바꾸자는 기존 운동도 중요하지만 혐오가 의견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지난해 12월 동성애합법화 반대 시민연합이 서울시 인권헌장에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빼달라며 집회중이다. 사진=금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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