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이 어뢰피격이라고 발표한 합동조사단이 어뢰폭발의 과학적 근거로 제시한 흡착물질의 성분(폭발재)을 정작 확인도 하지 못한채 폭발재로 결론을 냈다고 스스로 인정한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행정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KBS <추적60분>(‘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 제작진이 당시 제작과정에서 합조단의 이근득 박사(국방과학연구소 소속)와 통화한 녹취록을 법정에 제출해 재판부가 이를 인정하면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6일 서울고법 행정1부(재판장 곽종훈 부장판사)의 추적60분 징계취소소송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국방부 관계자들은 흡착물질이 어떤 것인지 밝혀내지 못했다고 밝힌 것으로 나와 있다. 

재판부는 국방부 관계자들이 사전 인터뷰 과정에서 제작진에게 “흡착물질이 퇴적물이나 부식물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알루미늄 황산염 수산화물’이라는 것도 본래 예측했던 것 중의 하나”라면서도 “다만, 알루미늄과 황이 화학적으로 결합하고 있는지 물리적으로 결합하고 있는지는 흡착물질이 비결정질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정확한 판별이 곤란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흡착물질 전자 현미경 사진. 사진=합조단 보고서
 

또한 이들은 “그래서 통칭해 알루미늄 산화물이라고 한 것이고, 그 뒤에 황이 붙고 수분이 붙는 부분은 생략했다”며 “흡착물질이 어떤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고 재판부는 전했다.

무엇보다 당시 추적60분 프로그램에서 방송되지 않은 제작진(강윤기 PD)과 합조단의 이근득 박사(국방과학연구소 소속)의 통화내용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증거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합동조사단의 이근득 박사는 2010년 11월 12일 제작진과의 전화통화에서 ‘알루미늄 산화물이라는 말은 통칭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화학적으로 결합돼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흡착물질을 산화물이나 황산물이라고 이야기했다가 더 힘든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서 가능하면 이를 피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당시 흡착물질을 분석하는 책임자였던 이근득 박사 스스로 흡착물질이 폭발재(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인지 황산물(또는 침전물-비결정질 알루미늄수산화수화물)인지 확인하지 못한 채 보고서엔 ‘폭발재’로 단정적인 결론을 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의미의 진술이었다.

   
천안함 흡착물질 전자현미경 사진. 사진=합조단 보고서
 

합조단은 ‘천안함 피격사건 보고서’에서 “선체 및 어뢰의 부품에 흡착돼 있는 흰색의 분말은 알루미늄 소재의 부식물이 아니라 알루미늄이 첨가된 수중폭약의 폭발재(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인 것으로 분석됐다”며 “수중에서 비결정성 알루미늄 산화물이 생성될 어떠한 요인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은 정기영 안동대 교수(지구환경과학과)가 추적60분 제작진의 의뢰를 받아 정밀분석을 한 결과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닌 ‘비결정질 황산염 수산화 수화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물질은 ‘알루미늄’과 바닷물에서 유래한 ‘황’ 성분이 4대 1로 구성된 물질로 용액상태에서 뭔가가 침전되면서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정 교수는 결론을 내렸다. 이 때문에 당시 국방부가 가장 과학적인 분석결과라며 내놓은 흡착물질 분석 조차 틀렸다는 비판이 고조됐었다.

그런데 실제로 합조단 내부에서도 폭발재임을 확인하지 못한채 폭발재라고 발표했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제작진은 당시 전화통화에서 이근득 박사가 추적60분의 실험이 맞다고 여러차례 언급한 사실이 녹취록에 담겨있다고 전했다.

강윤기 전 KBS <추적60분> PD(현 신설프로 ‘명견만리’ 제작중)는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당시 통화내용에 ‘추적60분이 실험한 것이 맞다’라는 표현도 했다”며 “이 박사는 ‘실험하는 과정에서도 (원했던)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 여러차례 실험했다’, ‘추적60분이 얘기한 것이 과학적으로 맞다’, ‘(다른 연구자들에 요청했으나) 다들 도와주지 않고 힘들어했다’, ‘조사한 사람들은 물질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합조단의) 상층부가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 11월 1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
 

강 PD는 당시 이 같은 내용을 방송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을 방송한 이후 후속편으로 준비하고 있었으나 방송 일주일만에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방송시기를 놓쳤다”며 “그러더니 방통심의위에서 우리 방송에 제재조치를 가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번 재판의 피고인 방송통신위원회 측 대리인인 오경록, 이수연 변호사(법무법인 세한)는 6일 “방통위 허가 없이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있었는지 등을 묻기 위해 이근득 전 합조단 조사위원(현 국방과학연구소 박사)은 6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지나간 일이라 그 얘기는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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