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5일 오전 한 시민단체 대표에게 흉기로 공격을 당했다. 그러자 현장에서 바로 붙잡힌 용의자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우리마당) 김기종 대표를 두고 이념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우리마당이 진보성향이며 김 대표가 ‘종북’세력인지, 이번 조찬 행사를 개최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홍사적 의장이 친박성향의 보수인물이니 거기 소속된 김 대표를 진보로 볼 수 없다느니 김 대표가 민화협 회원이 아니라느니, 폭력의 문제가 아닌 편가르기의 문제가 됐다.  

피해자인 미국조차 김 대표를 북한과 연계하는 주장에 거리를 두면서 김 대표 개인의 극단적 공격행위로 이해하고 사건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종북·반미 성향의 김 대표가 한미동맹에 대해 자행한 테러’로 규정한 채 진영갈등으로 퍼져갈까? 

지난해 12월 황선·신은미 통일토크 콘서트에서 테러를 저지른 학생이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회원이었다며 진영갈등이 극심했다. 세월호 사건은 유가족 입장에 선 반정부적 진보세력과 애국보수를 자처해 정부입장에 선 이들의 갈등으로 치환됐고, 한미FTA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안전한 ‘쇠고기’의 수입의 문제였지만 ‘미국’에 대한 공격이라고 치환해 진보와 보수의 갈등으로 변질됐다. 

   
▲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초청 특별강연회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흉기로 습격한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가 종로경찰서에서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되며 "전쟁 훈련 반대"를 외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이번 사건을 두고 CNN이 김 대표를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공격’이라고 표현한 것도 우리사회의 이분법적 시각에 시사점을 던진다. 서구에서 민족주의자는 보통 우파를 나타내는데 같은 사안을 두고 미국은 김 대표를 보수세력으로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이적표현물 게시 혐의로 폐간된 인터넷 매체 ‘자주민보’ 전 이창기 대표는 한민족의 우월성에 대해 강조하며 혼혈인과 외국인에 대해 차별발언을 가차 없이 내뱉었다. 서구에서 인종차별주의자는 극우세력으로 분류된다.  
   
나와 다른 너를 구분하는 행동은 언제나 더 큰 폭력을 가져온다. 미국 9·11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기독교의 선악 논리로 착한 미국과 나쁜 이슬람 테러세력으로, 사탄과 형제자매를 구분하자 학살에 가까운 전쟁이 발생했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이라크 전쟁은 대량살상무기도 발견하지 못한 채 10여년이나 지속됐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 아들의 담배절도 논란이 터지자 인종과 여성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평소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던 일베와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던 ‘오늘의 유머’(오유)는 한목소리로 ‘너네 나라로 가라’며 이자스민 의원을 공격했다. 본질은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아니다. 진영으로 편가르기에 익숙했던 문화에서 나와 다른 타인을 구분하며 발생하는 폭력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변형될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난의 대상으로 생각해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망가뜨려온 사회적 분위기와 그 안에서 폭력이 정당화되는 게 문제다.    

이런 분위기는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부추긴다. 5일 중동을 순방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 소식을 듣자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사건을 규정했다. 여당은 김기종 대표의 주장이 북한과 같은 맥락이라며 종북 낙인을 찍었고, 야당은 ‘종북’세력과 선긋기에 나섰다. 문화일보는 5일 우리마당을 좌파성향의 시민단체라고 밝힌 뒤 김 대표가 노무현 시절 6차례 방북했다고 보도해 야권과 연결했고, 조선일보는 6일 <한미동맹 찌른 종북테러>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을 종합해 확대 재생산했다. 

김 대표는 마크 리퍼트 대사를 공격하면서 ‘남북관계’와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문제를 삼았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일본 과거사를 덮고 가자’는 식의 발언을 해 수세에 몰린 미국 입장에서 우리 정치권이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상황을 규정하는 성급한 발언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테러란 IS와 같이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폭력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가 뚜렷하며, 사회불안심리를 조장해 얻는 이익이 있는 지속적인 폭력이다. 아직 배후세력도 밝혀지지 않았고 대미 외교문제까지 걸려있어 외교부도 사태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과 언론이 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로 규정한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이번 사건에서 더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에서 폭력이 분출되는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이다. 

리퍼트 대사가 자신의 트위터에 “잘 있고 상태는 굉장히 좋다. 응원과 지지에 감동받았다”며 “한미동맹 발전을 위해 최대한 빨리 복귀하겠다”고 밝히자, 누리꾼들은 ‘대인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 한 누리꾼은 리퍼트 대사가 오바마 대통령과 친한 민주당 인사라서 이렇게 대인배일 것이라며 공화당 출신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행정 각 부서별, 각 정치인별로 입장이 다른 미국의 정치현실을 비춰보면 코미디에 가까운 주장이다. 그리고 이분법에 갇힌 우리사회가 세상을 바라보는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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