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인터넷 신문 ‘자주민보’의 폐간을 결정한 후 같은 편집인이 이름만 바꿔 자주일보를 창간했다. 현행법상 막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과 신문사 폐간은 언론의 자유 침해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 자주민보가 이적표현물을 게재했다는 이유를 들어 인터넷신문등록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는 “자주민보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내용의 기사가 반복적으로 게재되고 있다”는 이유로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고, 지난달 13일 대법원에서 인터넷신문등록취소 행정소송 재항고를 기각하며 자주민보의 등록취소를 결정했다.  

자주민보 이정섭 대표는 “자주민보가 폐간될 것 같은 분위기라서 지난 11일 ‘자주일보’를 서울시에 새로 등록했다”며 “자주민보가 없어지면 자주일보를 통해 통일과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자주일보 등록이 현행법상 문제없으니 ‘종북’, ‘꼼수’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2일자 조선일보 12면 보도.
 

조선일보는 지난 2일 1면 <‘從北’ 자주민보가 자주일보로 한 글자만 바꿔도 손 못쓰는 法>과 12면 <간부·간판 바꾼 ‘꼼수從北’에 속수무책>에서 서울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현행 신문법상 인터넷 신문 등록이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라 자주일보 등록을 막을 수 없다고 보도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신문법을 위반해 등록취소된 인터넷 신문의 발행인은 2년간 발행인 자격이 없는데 자주민보 이 대표는 폐간이 확정되기 전 등록신청 했다”며 “편법이 가능한 법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종북’이라며 문제 삼은 자주민보와 자주일보 보도는 북한의 입장에서 남북관계를 전망하거나 북한 내부사정을 전하는 기사, 대한민국의 안전·신뢰 문제 등을 지적하는 기사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삭제 요청을 받은 <김정은대장 자상함과 겸손 어디서왔을까>와 같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원수’, ‘대장’이라고 표현하며 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며 북한 원수를 찬양했다는 혐의를 받는 기사도 있다. 

인종차별로 논란이 됐던 기사도 있었다. 지난 2011년 9월 자주민보 이창기 전 대표는 <정부의 공식 혼혈 정책 더는 안 된다>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혼혈인을 국적까지 바꿔 국가대표로 선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인류 발전은 각 민족 순수혈통이 추동”, “지적능력에 있어서 혼혈이 불리”, “잡종은 내버려둬도 자연히 만들어지지만 토종은 노력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 등의 표현을 사용해 ‘위험한 국수주의적 사고’,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자주민보 기사에 비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사상을 문제 삼아 언론사를 폐간 조치한 건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지적도 많다. 자주민보 이정섭 대표는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과 보수단체 블루유니온이 운영하는 블루투데이가 서울시를 압박해 등록취소를 신청하도록 하고 최근 신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며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를 보더라도 법적인 논리보다는 특정 세력의 주장으로 결정되는 정치적인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그동안 정부로부터 삭제요청을 받은 기사는 삭제했고, 현행법을 지켜가며 언론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아예 폐간하는 것은 남북 평화 통일염원과 민주주의에 대한 사형집행”이라고 주장했다. 

   
▲ 자주일보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앞으로 종북이라고 의심받고 있는 매체들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며 “문제가 있는 보도가 있으면 그 보도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하는데 정부가 사상을 이유로 언론사 자체를 폐간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회대 최진봉 교수(신문방송학)는 “현행 등록제인 신문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반민주적이고 초헌법적인 발상”이라며 “언론이 권력을 감시·비판해야 하는데 권력이 언론사를 허가한다면 언론의 자유는 훼손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국가보안법과 같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상충되는 법을 없애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혹 문제가 있는 게시물이 있더라도 권력기관이 언론사 뿐 아니라 인터넷 홈페이지 자체를 없애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폐쇄 논란이 일었던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대해서도 김언경 사무처장은 “일베에 올라온 차별적 게시물 등을 방송에서 활용하는 것은 문제지만 문화적으로 해결방법을 찾지 않고 폐쇄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상에 대해 시장원리를 적용해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진봉 교수는 “사상을 억압할 필요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 의견이 공감을 많이 받으면 살아남고 아니면 사라지는 것이 민주적인 의사소통”이라고 말했다.  

자주민보는 2000년 5월 월간 자주민보(이창기 발행인겸 편집장)로 창간됐고, 2002년 9월 월간 '우리'로 개편됐다가 2003년 9월22일 인터넷 언론으로 개편해 2005년 서울시에 등록했다. 창간당시 대표인 이창기 편집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1년 6개월만인 2013년 8월 출소했고, 현재는 이정섭 대표가 발행인 및 편집인을 맡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