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청년이 친구 아버지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다. 사람을 치지는 않았지만 보험을 든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벌금형에 처했다. 200만원. 그는 돈이 없기 때문에 교도소에 40일 동안 가야 한다. 경미한 사고였지만 돈이 없어 감옥까지 가야하는 비참한 심정은 가난이 곧 형벌이라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나타낸다”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은 매해 4만 명이 넘는다. 인권연대가 벌금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소득불평등이 형벌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43199’캠페인을 진행해왔다. 2009년 기준으로 벌금형 선고 이후 교도소에 간 사람은 4만3199명이다. 

43199위원회는 벌금형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 등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해결되지 않아 ‘장발장은행’(은행장 홍세화)을 만들었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뒤 형편이 어려워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 주로 소년소녀가장·저소득층 등을 대상으로 무담보·무이자로 대출해주는 은행이다. 벌금형이 징역형보다 낮은 형벌이기 때문에 도로교통법 위반 등 경미한 범죄로 처벌이 된 사람이 그 대상이다. 

   
▲ 25일 장발장은행 출범식. (사진 = 장슬기 기자)
 

신청자 중 43199위원회(대출 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쳐 최대 300만원까지 대출해줄 예정이다. 대출기간은 6개월 거치, 1년간 균등 상환을 기준으로 하지만 형편에 따라 상환 금액도 조정이 가능하다. 이미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도 벌금을 납부하면 바로 풀려날 수 있기 때문에 이용이 가능하다. 장발장은행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한 뒤 신분증 사본과 함께 우편, 팩스 등으로 신청할 수 있다. 

장발장은행은 시민들의 기부로 모은 성금을 모두 벌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출금으로만 사용할 예정이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온라인 송금수수료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비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600여만원의 기부금이 모였다”고 밝혔다. 장발장은행은 1000만원의 기부금이 모이면 대출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출 심사위원에 참여한 최정학 방송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돼 있는 상황에서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며 “부자들에게 벌금형은 선처지만 벌금 100만원이 없어서 교도소에 가 노역죄를 지는 사람들에게는 가중 처벌인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 교수는 “노역장 유치는 보통 하루 5만원으로 계산되는데 환산기준이 없어 사건마다 다르게 책정되다보니 부자들에게는 ‘황제노역’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인권연대가 벌금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소득불평등이 형벌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43199’캠페인을 표현한 만화 43199 중 한장면. 류호경 화가 작품.
 

지난해 10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벌금254억을 50일간 노역으로 대신 갚을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허 전 회장의 하루 노역 일당은 5억원으로 일반인 노역 일당 5만원의 1만 배에 달해 여론의 비판이 거셌다. 벌금대신 노역으로 대체하는 ‘환형유치’ 처분을 받은 이들 가운데 일당이 1억원 이상으로 책정된 경우도 최근 5년간 23명이나 된다.

광주지방교정청 송영삼 전 청장은 “벌금을 못내 교도소에 오는 대부분 사람들은 건강이 좋지 않아 작업하기도 어렵고 생명이 위독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장발장은행을 기획한 서해성 작가는 “벌금을 못내는 저소득층이 평소에 건강관리를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가난은 그것만으로 이미 징벌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 사진 = JTBC 드라마 화면 갈무리
 

최정학 교수는 벌금 집행방법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현재 벌금은 선고된 후 30일 이내 모든 금액을 일시에 납부해야 한다. 따라서 최 교수는 전체 액수를 수차례 분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자유형(징역형)에만 있는 집행유예제도를 벌금형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이들은 ‘일수벌금제’를 주장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총액벌금제를 택해 형벌의 종류에 따라 벌금의 액수가 정해지고 있다. 일수벌금제는 벌금형의 내용을 형벌에 따라 일정한 기간(일수)을 정하고 이를 일정 액수로 환산해 벌금형을 선고하는 방식이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독일의 경우 5일~360일까지 정해져있고 1일 정액은 1유로~5000유로까지 차등을 둔다”며 “국민건강보험이 소득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듯이 벌금형도 이처럼 달라지는 형태로 독일은 최고와 최저 금액이 36만 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서해성 작가는 “징벌만 있는 사회는 폭력사회”라며 “경미한 일로 감옥까지 가는 것을 막고 시민사회가 사회적 모성으로 가난한 자들을 감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세화 은행장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재소자와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이주노동자를 보면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알 수 있다”며 “장발장은행이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거처가 돼 누구도 버려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고 말했다. 

장발장은행은 인권연대와 별개 운영구조를 가진다. 운영위원회에 홍종학·인재근 의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임용환 신부, 송영삼 전 광주지방교청정 청장,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등 13명, 대출심사위원회에 김희수 변호사,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7명이 참가한다.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장발장은행 계좌 : 하나은행 388-910009-23604 
장발장은행 홈페이지 : www.jeanvaljean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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