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가 MMS(지상파다채널서비스) 전초전을 치르고 있다. 출범 직후부터 의무재송신 갈등이 벌어졌다. 전면적인 MMS를 추진하는 지상파와 이를 저지하려는 유료방송업계의 갈등이 예견된 상황이다. 지상파는 비대칭규제 완화를 통해 경영난을 해소하고 영향력을 키우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최근 벌어진 MMS 논쟁의 최대 쟁점은 의무재송신 여부다. 케이블방송사업자(SO)들이 EBS2 개국을 전후해 EBS2채널인 10-2번을 임의로 차단하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케이블업계는 EBS2가 의무재송신 채널이 아니기 때문에 전송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EBS측은 EBS2가 의무재송신 채널이라며 맞섰다. 신동수 EBS 다채널방송추진단장은 EBS2 개국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EBS2는 별도의 채널이 아니라 압축기술의 발전으로 기존 채널의 주파수를 쪼갠 개념이기 때문에 의무재송신채널에 해당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뒤늦게 방송통신위원회가 중재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세부적인 논의가 진행 중이다. 김용배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홍보팀장은 “일단 송출하기로 합의가 됐지만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차후 단계적으로 방송이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부내용에 관해 김용배 팀장은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보상에 대한 책임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 EBS(좌측 모니터)와 EBS2(우측 모니터). 사진=금준경 기자.
 

EBS2를 둘러싼 재송신 갈등은 MMS 전면도입의 전초전 성격이 짙다. KBS, MBC, SBS 등 MMS가 본격화되면 대대적인 의무재송신 갈등이 촉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케이블업계 관계자는 “방송협회 대응을 보면 추가적인 다른 지상파 MMS를 재송신할 때 EBS가 선례를 남기려 하는 것 같다”면서 “재송신 수수료에 대한 계산도 반영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료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의 직접수신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MMS가 유료방송에 의존하는 게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MMS를 통해 지상파가 직접수신을 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이 돼야 하는데 유료방송에 의무재전송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하나의 PP로 전락시키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EBS2 채널 하나만으로 지상파 직접수신을 유도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파 입장에서는 더더욱 전면적인 MMS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술적으로 MMS 도입에 문제가 없고 여분의 주파수를 활용하지 않는 것이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방통위 내에서도 김재홍 상임위원이 “이해관계 때문에 능력을 갖춘 방송사의 MMS 도입을 허가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MMS가 상업광고를 편성하는 방송까지 허용되면 의무재송신 갈등 뿐 아니라 광고를 둘러싼 대대적인 갈등이 예견된다는 사실이다. 지상파에 큰 실익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는 광고총량제를 두고도 유료방송업계와 한국신문협회 등이 거세게 반발한 바 있다. 지상파에 적게는 4개, 많게는 10여개 채널이 생겨나게 되면 광고총량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극심한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EBS2 출범 결정 당시 케이블업계가 성명을 통해 “상업광고가 허용되는 MMS는 안 된다”고 못 박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갈수록 영향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규제완화를 통해 경영난을 해소하면서 동시에 영향력을 키우고자 한다. MMS 뿐 아니라 중간광고허용 등 추가적인 광고규제완화, UHD방송 도입도 비슷한 맥락이다.

   
▲ KBS 사극 <징비록>, 다큐멘터리 <요리인류>는 UHD방식으로 제작 중이다. KBS 보도화면 갈무리.
 

중간광고 도입 등의 광고규제 완화도 지상파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경우 유료방송업계의 거센 반발은 물론 ‘시청권 침해’라는 시민단체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대칭규제는 아니지만 UHD 방송 도입을 둘러싼 갈등 역시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으나 도입이 지체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비슷하다. 손계성 한국방송협회 정책실장은 “현재 UHD 방식으로 촬영하고 있는 방송이 있다”면서 “당장 도입해도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KBS의 대응은 선제적이다. 다큐멘터리 <요리인류>와 사극 <징비록>을 UHD로 촬영하고 있지만 HD로만 방영하고 있다.

UHD프로그램은 제작비가 많이 들지만 지상파의 경쟁력을 높이고 높은 가격으로 콘텐츠 판매를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요리인류>를 연출한 KBS 이욱정 PD는 KBS 보도에서 “전세계 모든 방송사가 지금 초고화질 콘텐츠에 굶주려 있는 상황”이라며 “‘팔릴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고 가격도 3배 이상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가 무료보편적 서비스로서 비대칭 규제완화를 추구하는 점은 명분이 있지만 비판적인 시선도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현재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면서 광고규제완화나 추가적인 채널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 있다”면서 “공영방송으로서 제 기능을 하고, 경영문제도 자구책을 마련하는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MMS, 광고규제완화, UHD 등 현안에서 방통위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추혜선 총장은 “MMS를 비롯한 무료보편적 서비스에 대해 방통위가 이해관계에 휘둘리기보다 정책적인 방향을 명확히 잡아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진봉 교수는 “방통위가 방송이 공적 기능을 하도록 감시하고 규제해야 하는데 방송의 상업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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