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두 얼굴을 하고 있다. 가족의 한마디에 위로받기도 하지만 명절이 피곤한 이유 역시 가족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때문이다. 명절 연휴동안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좋은 책과 영화를 골라봤다. 영화와 책 각각 국내외 작품 한편씩 선정했다. 

   
▲ 변신/ 프란츠 카프카
 

변신/ 프란츠 카프카

“(아버지는) 은행의 수위가 입는 감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제복 상의의 금단추는 빛났으며, 빳빳이 세운 칼라 위에는 그의 힘찬 이중 턱이 불룩 솟아 있었다” 아버지가 권위를 내세우는 장면이다. 그리고는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아들)에게 사과를 던지며 공격한다. 소설속에서 경제력을 잃은 아들의 권위가 붕괴하는 지점이다. 가족 간 권력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 <변신>은 프란츠 카프카의 유일한 중편소설이다. 

가족의 생계를 담당하던 아들이 어느 날 벌레로 변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가 밥벌레라고 부르는 존재로 변해버린 아들을 향한 가족들의 시선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주며 카프카는 가족제도의 민낯을 보여준다. <변신>은 카프카 본인의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실제로 카프카 본인도 아버지의 뜻을 꺾지 못하고 보험업에 뛰어든다. 이유는 한 가지, 높은 연봉 때문이다.  

가족이 언제나 사랑으로 아름답게 포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카프카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돈을 벌지 않거나 돈 벌 가능성이 없는 행동을 할 때도 과연 존중받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구조적으로 대학 나온 벌레들이 항상 존재하다 못해 점점 늘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사랑은 어디까지 유효할까? 완성된 지 한 세기가 지난 작품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변신>이 다시 읽히고 있다.     

   
▲ 가족의 발견/ 최광현 지음/ 부키 펴냄
 

 
가족의 발견/ 최광현 지음/ 부키 펴냄

<가족의 두 얼굴>에 이어 심리치유 전문가인 최광현 트라우마가족치료연구소장이 지난해 말에 낸 두 번째 가족이야기다. 우리 마음에 생긴 상처는 거의 다 가족과 연결돼 있다. 가족관계에서 생긴 문제가 낮은 자아존중감과 사회성으로 연결되고 그렇게 생긴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는 다시 화살이 돼 가족에게 돌아간다. 

우리 사회는 가족 간 갈등이 발생하고 상처를 주고받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알고 나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도 있지만 이미 깊어진 상처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저자는 가정 내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직접 상담하며 우리에게 해결책을 알려준다. 

천륜이라는 족쇄에 갇혀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이는 독립된 한 사람으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며 “부모 자녀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기보다는 지긋지긋한 애증의 관계가 된다”고 설명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있고 나서 구성원인 개인이 있는게 아니라 일정한 사생활이 보호되는 개인들의 모임인 가족, 저자는 이것이 ‘가족의 발견’이라고 말한다. 

   
▲ 가족의 탄생/ 김태용 감독
 

가족의 탄생/ 김태용 감독 

한국 사회에서 가족을 만드는 방법은 아직까지 한 가지 뿐이다. 결혼한 남녀와 그들 사이에서 얻은 자녀. 하지만 <가족의 탄생>은 그런 뻔한(?) 방식이 아니라도 가족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미라(문소리 분)는 집나간 남동생(엄태웅 분)이 데리고 온 스무살 연상의 아내(고두심 분), 그 아내 전 남편의 딸이 함께 사는 가족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이 가족 말고도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서로 얽히고설킨 세 가족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했다. 

반드시 혈연관계로 이뤄져야 행복한 관계가 담보되는 게 아니고, 혈연이 아니라도 발랄할 수 있다는 점을 어색하지 않게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의 등장하는 가족은 2인3각을 하는 듯하다. 서로 맞지 않아 갈등이 발생하고 어긋나지만 조금씩 맞춰나가고 서로 말하지 않아도 묵묵히 지탱해 나간다.   

영화에서 가족은 ‘마음을 여는 순간’ 탄생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인정하고 마음을 여는 순간 우리는 누구와도 가족이 될 수 있다. 문소리, 고두심 등 묵직한 배우들이 중심을 잡고, 엄태웅, 공효진이 좀 껄렁하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조금씩 내비치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 흠 잡을 데 없는 작품이다.      

   
▲ 아이킬드마이마더(Killed My Mother)/ 자비에 돌란 감독
 

아이킬드마이마더(Killed My Mother)/ 자비에 돌란 감독   

자비에 돌란 감독이 19살의 나이로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데뷔작이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하지만 아들로서의 사랑은 아니다. 모르겠다. 누군가 엄마를 해친다면 나는 당연히 그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16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쓴 시나리오라 놀랍지만 그 때 아들이 할 수 있는 생각이 솔직하게 드러난 반자전적인 작품이다. 
 
16살 사춘기 소년 후베르트는 엄마에 대한 반항심이 가득하고 연인 안토닌과 독립을 꿈꾼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이 철없는 행동을 한다고만 생각한다. 서로가 애증으로 엉켜있지만 그들의 갈등은 (심리적으로) 서로를 죽이고 난 뒤 회복된다. “내가 오늘 죽으면 어떡할거야?” 언젠간 서로 헤어질 사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을 때 둘은 서로의 소중함을 느낀다. 

자녀에게 부모는 절대자다. 그 부모를 한번은 죽이고 나야 비로소 부모와 건강한 관계가 시작된다. 부모를 죽이는 용기는 연인에게서 나오고 첫 사랑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엄마와의)탯줄을 자르는 산파’인 셈이다. 이 영화와 함께 성장한 자비에 돌란 감독의 이후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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