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 결정을 받은 KBS <추적60분> 팀이 행정소송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고등법원에서도 방송 내용이 사실을 오인케 하거나 공정성에 위반된다는 당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고법 행정1부(재판장 곽종훈 부장판사)가 내놓은 판결문을 보면, 4년 여 전의 천안함 의혹 방송이 충분한 노력을 통해 언론사로서 제기할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한 것으로 판단했다.

방송통신심의위는 지난 2010년 11월 1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에 대해 △스크루조사에서 스웨덴 조사팀이 배제한 것처럼 방송 △엇갈린 백령도 초병 진술을 일치된 것처럼 방송 △흡착물질의 성질이 침전물인 것으로만 방송 △국방부가 재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방송 △마치 많은 이들이 조사결과를 못믿겠다고 한 것처럼 방송했다며 ‘경고’(중징계) 처분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방통심의위의 이 같은 처분 가운데 백령도 초병의 진술을 토대로 합조단이 발표한 폭발원점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제작진의 방송 내용이 합리적 의문이라고 판단했다.

방통심의위가 지적한 것은 “섬광을 목격한 초병의 진술에 차이가 있는데도 방송에서는 일치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제해 폭발원점에 대해 객관성에 반하는 의혹을 제기했다(심의규정 14조)”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두무진 돌출부 쪽 2~3시 방향에 빛이 퍼졌다가 소멸하는 것을 봤다’는 백령도 초병 김승창 일병의 진술과 ‘초소를 기준으로 280도에서 불빛을 봤다’는 박일석 상병의 진술이 방위각까지 일치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초소를 기준으로 우측에 있는 두무진 돌출부 방향이라는 부분은 최소한 일치하고 합조단이 주장하는 폭발원점(초소 기준 220도 지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0년 11월 1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
 

재판부는 “이들 초병 외에 남쪽의 다른 초소에서도 관측이 가능한데도 섬광이나 물기둥을 봤다는 보고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폭발원점에 관한 의문의 근거로 제시했다”며 “또한 국방부 관계자 역시 ‘남쪽 초소에서 아무도 섬광이나 소리를 인지하지 못한 것은 합동조사단으로서도 의문’이라고 밝혀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는 점을 시인하기도 했다”고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에 비춰보면 합조단이 제시한 폭발원점과 초병들의 섬광을 목격한 지점이 불일치하다는 사실을 기초로 합조단이 발표한 폭발원점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충분한 노력을 투입해 확인된 사실에 기초해 합리적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에 반박하는 윤종성 합조단장 진술 등 합조단 반론도 충분히 방송한 점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사실에 반하는 내용을 전달하거나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로 호도해 객관성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천안함 침몰원인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이른바 ‘흡착물질’의 성질을 두고 추적60분 팀이 폭발재가 아닐 수 있다고 방송한 것이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한 방통심의위의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KBS가 이 분야 전문가인 정기영 교수의 실험결과를 통해 ‘흡착물질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라는 합조단 발표내용과 달리 비결정질 알루미늄 수산화 수화물이다’라는 점을 주장한 것일 뿐, 폭발물질이 아니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며 “또한 추가적인 실험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전달해 수중폭발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으며, 정 교수 자신의 의견에 방송에서 왜곡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제시했다.

‘합조단 내에서도 흡착물질이 비결정질 알루미늄 황산염 수산화물질일 가능성은 사전에 검토했으나 수중폭발에 의한 폭발재라는 점을 확인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로 통칭한 것’이라는 이근득 국방과학연구소 박사의 반론도 방송이 된 점도 재판부는 근거로 들었다. 특히 이 대목에 대해서는 “‘알루미늄 산화물과 알루미늄 수화물을 알루미늄 산화물로 통칭했다’는 합조단 설명대로라도 폭발로 ‘수화물’이 발생한다는 과학적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비춰 합리적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반드시 합조단과 정부의 주장을 절반씩 방송해야 공정하다는 식의 주장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합조단과 정부는 방송 외에도 다양한 의사전달 수단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합조단 주장과 방송의 의혹이 동등하게 반영해야만 공정성과 균형성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며 “그런 점을 볼 때 공정성과 균형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 11월 1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
 

천안함 스크루가 휘어진 것과 관련해 스웨덴 조사팀이 스크루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것처럼 보도해 ‘사실을 오인하게 하거나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방송해 시청자를 혼동케했다’(방송심의규정 9조 3항 및 14조 위반)는 방통심의위 주장도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스크루 변형과 관련한 방송의 주된 내용은 누가 조사결과를 분석한 주체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방송에서 전달하고자 한 부분은 스웨덴 조사팀이 스크루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추진축의 밀림을 스크루 변형의 원인으로 밝혀낸 주체가 합조단의 노인식 교수라는 점’”이라며 “(제작진이) 노 교수를 만나 스웨덴 조사팀이 직접 스크루 조사를 담당했는지 확인했다고 밝혀 논의 대상이 조사주체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판단했다.

합조단 조사팀은 당시 ‘스크루 변형의 정밀분석을 위해 5000불이 소요된다’고 했으나 합조단은 이것이 주요단서라고 생각하지 않아 추가조사를 의뢰하지 않았으며, 그러다 시민사회에서 스크루 변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노 교수에 연구를 진행시켰다고 재판부는 지목했다. 이후 노인식 교수가 ‘급정지에 의한 관성력이 스크루 변형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고 추진축이 밀리면서 발생한 관성력이 주요하고 작용한 것’이라고 결론을 낸 것을 두고 재판부는 “그렇다면 스크루 주된 변형 원인을 규명한 것은 합조단의 노인식 교수로 봄이 정확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송을 한 의미에 대해 재판부는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에 관해 정부의 작은 실수가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정부 감시 비판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으로서는 구체적 사실에 관해 확인하고 정확한 설명을 구할 수 있다고 본다”며 “스웨덴 조사팀이 스크루 변형원인의 단서를 제공했을 뿐인데도 마치 직접 변형원인을 분석한 것처럼 조사보고서에 기술했기 때문에 실질적 조사주체를 확인하는 것이 유의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합조단이 재조사를 거부한 것처럼 방송해 방송의 공정성을 위반했다는 방통심의위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방송한 내용이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합조단이 원론적 차원에서 토론과 토의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재조사나 재실험을 통한 검증에 대해서는 계속 완곡히 거절해 제작진과 합조단 공동 재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런 이유로 제작진이) 방송에 실을 수 없었던 사정을 감안하면 합조단이 재조사 제안을 거절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방송에서 ‘상당수 국민들이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않고 있는 것처럼 방송해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방통심의위의 판단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천안함 함미
 

재판부는 “방송에서 합조단 조사결과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입장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신뢰한다는 취지의 인터뷰 사례들을 반복해서 방송했다”며 “정부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적잖이 확인돼 다른 언론 매체 역시 조사보고서 등에 대한 추가적인 토론과 검증을 촉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제작진이 방송 후반부에서 ‘국민들의 여론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부발표는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고 밝혀 북한소행을 부정하거나 조사보고서의 기본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며 “국민들의 보편적 신뢰형성을 위한 개방과 소통을 촉구했을 뿐이므로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방통심의위의 심의기능에 헌법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 주목을 끌었다. 재판부는 “정부여당이 그 구성을 주도하는 방송통신심의원회가 정부에 대해 불공정 또는 불균형하다고 제재할 때엔 △다수의 입법례에서 국가에 의한 공정성 심사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 △언론은 공적 영역으로서 그 다양성이 보장돼야 하며 정부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언론 자유의 핵심 내용에 해당하는 반면 국가가 보도자료나 홍보자료를 이용해 반박할 수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허위내용을 담고 있거나 진실을 오인케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권한 행사에 극히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정권의 군사적 도발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에 대해 북한정권의 허위변명에 빌미를 주는 부정적 견해를 집중 표출하는 보도방식’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이런 방송이 극히 우려스럽게 여겨질 수 있다”면서도 미국의 설리번 판결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하에서는 미국 설리번 판결에서 제시된 것처럼 ‘공적인 토의는 우리 정부의 본질적인 원칙이자 정치적 의무이며, 이런 토의는 정부나 공직자에 대한 격렬하고 신랄하며 가끔은 불쾌할 정도의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된다고 할지라도 결코 억제돼서는 안되며 가급적 광범위하고 활발하게 전개되도록 보장돼야 할 것이다.”

재판부는 “개방된 정치체제와 언론자유의 보장이야말로 오늘날 지구촌에서 우리나라가 누릴 국가안보를 위한 최고의 방책”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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