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에서 천막농성중인 청소노동자에게 학교 측으로부터 두 번째 공문이 도착했다. 숭실대 졸업식(13일)을 앞두고 12일까지 농성장을 철거해달라는 내용이다. 지난해 9월 점심시간에 학교 내에서 집회를 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받은 이후 5개월만이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숭실대분회 장보아 사무국장은 “지난달 23일 농성장에 전기를 끊고, 같은날 노조원 10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하는 등 우리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달 16일부터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숭실대분회는 숭실대학교 베어드홀 앞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사진 = 장슬기 기자)
 

숭실대와 청소노동자들간 갈등은 숭실대와 계약한 용역업체가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임금체불 등에 문제제기 하며 지난 2013년 5월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면서부터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소속 숭실대분회를 처음 이끌었던 김흥진 전 분회장은 노조를 만들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입장이었다. 실제 노조가 생기고 노동조건이 많이 개선됐다. 

숭실대 분회 장보아 사무국장은 “87만원이었던 한 달 월급은 현재 최저임금인 112만8600원까지 올랐고, 욕설 등 직접적인 인격모독도 많이 줄어들었다”며 “노조를 하면서 우리 권리를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노동자들은 이전에 방학기간에만 쓸 수 있는 1년 12일이던 휴가기간도 법에 따라 15일로 늘었다. 또한 노동자들끼리 이야기를 하거나 청소하다 앉아서 쉰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작성하게 하는 탄압도 줄어들었다.  

   
▲ 숭실대 청소,경비 용역업체인 미환개발의 친기업 노동조합이 12일 점심시간에 천막농성을 하는 민주노총 소속 숭실대분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장슬기 기자)
 

하지만 지난해 7월 친기업노조인 미환개발 노동조합(위원장 김흥진)이 생기며 숭실대 분회 노조에 대한 차별도 발생했다. 숭실대 분회 조합원 40여명에게는 미환개발 노조와 달리 명절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청소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남자 감독관이 민주노조 소속 여성 노동자의 화장실 안을 들여다보며 감시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미환개발 김유란 대표이사는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명절수당에 대해 “복수노조는 노조단위로 개별협상하기 때문에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대표이사는 화장실 감시사건에 대해 “내가 지시했다”며 “새벽에 청소하는 분들이 시간을 낭비하는지 감독하다보면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숭실대 분회 소속 청소노동자들은 “용역업체에서 청소 도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자비로 사서 쓰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미환개발에서 숭실대에 제출한 ‘2014년 미화원 용역비 사용예정서’를 보면 매달 피복비 5000원과 청소용품 구입비 2만5800원이 책정돼 있다. 하지만 임성숙 조합원은 “장갑을 빨아 쓰려면 최소한 두 개가 필요하지만 하나밖에 지급하지 않는다”며 “물청소할 때 장화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마포걸레가 파손되도 새로 사주지 않아 우리 돈으로 사서 쓴다”고 말했다. 

상황이 열악하다보니 다치는 경우가 많다. 임성숙 조합원은 “왁스질을 하다보면 미끄러운데 나이가 많은 분들이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다치는 경우가 많다”며 “다쳐도 산재 처리에 대해 얘기도 못 꺼낸다”고 말했다. 이에 미환개발 김유란 대표이사는 “산재처리를 충분히 해주고 있고 우리는 산재처리를 많이 해줘서 고용노동부에서 감사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미환개발 숭실대현장 산재사고 처리 내역’ 자료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산재 처리는 한해 평균 2건이다.   

미환개발과 숭실대 분회는 현재 임금체불 문제로 민사소송 중이다. 숭실대 분회는 지난 2012년부터 미환개발이 노동절수당(310여만원)과 연차수당(21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에서는 임금체불에 대해 인정했고, 미환개발은 노동절 수당을 지급한 상황이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소속 최강연 노무사는 “임금채권 소멸시효가 3년이라 지난 2012년부터 분회 조합원에 대해서만 청구했지만 지난 18년간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체불 금액은 수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분회는 미환개발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지만 숭실대와 특수관계 탓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환개발은 18년간 숭실대 청소·경비 용역 전체 인력관리를 맡고 있다. 미환개발 김유란 대표이사는 미환개발 김사풍 회장의 친딸인데 김사풍 회장은 숭실대 사학과 출신으로 총동문회에서 임원을 지내며 많은 기부금을 낸 성공회 신부다. 숭실대는 ‘김사풍강의실’(조만식기념관 526호)까지 만들어 놓은 상황이다. 

   
▲ 숭실대 용역업체 미환개발 회장인 김사풍씨의 이름이 들어간 김사풍강의실. 숭실대 조만식기념관 5층에 위치해있다. (사진 = 장슬기 기자)
 

숭실대는 오는 28일 재계약도 미환개발과 하겠다고 밝혀 왔다. 지난 12일 숭실대 관계자와 민주노총 숭실대 분회의 대화에서 숭실대 분회 장보아 사무국장은 “숭실대가 30명 인원감축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용역업체를 교체해달라는 주장은 묵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숭실대 정진수 인사총무팀장은 “학교 사정이 어려우니 인원 조정은 고려할 수 있는 것이고 용역업체 교체는 학교의 고유 권한”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 팀장은 “노조를 만들어 마땅히 찾아야 할 권리를 찾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 나라에서 권리를 알아서 찾아주는 용역업체는 없다”며 “노동절 수당, 연차는 우리도 못 받는다”고 말했다. 이는 미환개발도 비슷한 입장이다. 김유란 대표이사는 “원칙적으로 직접 고용하는 게 좋지만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은 없어질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장보아 사무국장은 “회사나 학교나 한 번도 우리의 의견을 듣거나 잘못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숭실대 분회는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을 통해 용역업체를 선정하자는 입장이다. ‘2014년 미화원 용역비 사용예정서’에 따르면 미환개발이 일반관리비 등으로 얻는 수수료는 임금의 5.5%다. 노조가 생기기전 15%에 비하면 많이 낮아진 수준이다. 하지만 최강연 노무사는 “다른 대학의 경우 1~2%의 수수료로 제시해 공개경쟁입찰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은데 숭실대는 미환개발만 고수한다”며 “수수료가 높으면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현재 대학 청소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140만원 수준이지만 숭실대는 112만원 수준이다. 최강연 노무사는 “부산대(2009년)와 서울시립대(2012년)처럼 직접고용을 하면 비용이 더 줄어드는데 왜 높은 수수료를 고집하며 미환개발과 계약을 맺으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교육부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근거한 ‘숭실대 구매규정’ 자료에 따르면 수의계약을 하려면 ‘경쟁에 부치는 것이 본교의 이익에 명백히 불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는 계약담당자인 학교에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나 미환개발은 계약 기간이 특정돼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계약은 수의계약이 아닌 ‘계약 갱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강연 노무사는 “규정에 따르면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입찰 방식은 정보통신망에 미리 공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 간의 계약은 수의계약”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지속되자 등록금을 내는 당사자인 숭실대 학생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 학교 축제 때 행정학과 이주영 학생 등 10여명은 ‘숭실 파랑새’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청소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미환개발과 숭실대의 계약 관계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학생 약 1500여명의 서명을 받고 현재도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돕고 있다.

이주영씨는 현재 숭실대에 ‘학교와 미환개발간 용역인건비·집행내역 일체’, ‘과업지시서’ 등에 대해 정보공개청구 했지만 전자는 비공개, 후자는 열람·시청 방법으로 공개 가능 통보를 받았다. 이씨는 “이 두 가지 자료를 보면 구체적으로 등록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미환개발과 숭실대의 계약이 투명한지 알아볼 수 있다”며 “공개해서 문제가 없다면 용역업체를 바꾸라는 요구도 하지 않을 텐데 왜 비공개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비공개 통보에 대해 소송 등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의원 등 국회의원 3명이 학교를 방문해 숭실대 분회의 입장을 학교측에 전달했고, 지난달 27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도 숭실대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숭실대의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오는 15일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천막농성장에 방문할 예정이고 설연휴를 앞두고 오는 16일 일부 조합원들은 삭발식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숭실대 분회 조합원들과 숭실대 학생들은 학교측으로부터 농성장 철거 공문이 온 뒤 “이제 진짜 싸움이 시작됐다”며 평소보다 천막을 더 많이 찾고 있다. 최병의 조합원은 “한달에 100만원도 못 받을 때 수습이라고 10만원 떼던 것도 다 참았는데 계약기간이 다 끝나 재입사하는 경우에도 수습이라고 10만원을 떼는 비인간적인 회사”라며 “이제는 당하지만 않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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