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선동 반미 역사책 이달의 도서 선정 논란’ 

자극적인 표현이 화면 한편에 자리 잡았다. ‘좌편향’이라는 자막이 이어졌다. 지난 11일 방영된 채널A ‘김부장의 뉴스통’은 책 <10대와 통하는 한국전쟁 이야기(이임화 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패널로 참석한 민영삼 포커스컴퍼니 전략연구원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 책은) 인민군이 탱크로 밀고 들어와서 많은 사람이 죽고, 그런 얘기는 왜 안 합니까?” 민 연구원장은 책이 “남한 정부는 서울시민에게 싸울 것을 강요했지만 인민군은 식량을 조사해 굶은 사람에게 나눠줬다”는 내용이 있다고 말하며 “누가 봐도 인민군을 미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MBN에서도 같은 내용이 보도됐다. MBN은 해당 책이 “6·25 전쟁 때 미국과 이승만 정부가 민간인 피해를 유발했다는 관점에서 기술됐고, 북한군이 저지른 민간인 피해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문들도 가세했다. 지난 10일과 11일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도 해당 책을 ‘좌편향’, ‘반미’도서라고 몰아세웠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인민군 미화’, ‘북한의 저지른 민간인 학살 등 외면’이 문제라고 보도했다.

   
▲ <10대와 통하는 한국전쟁 이야기>를 비판한 MBN과 채널A의 화면 갈무리.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해당 책은 부산시 교육청이 지정한 청소년 추천도서였다. 부산의 한 시민이 추천도서 지정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자 관련내용을 미디어펜과 문화일보가 보도했고, 지난 10일 부산시 교육청은 추천도서 지정을 취소했다. 부산시 교육청은 “휴전상태인 현 상황에서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책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이 접할 경우 우려가 된다”며 추천도서 지정 취소 사유를 설명했다.

언론의 보도는 사실일까. 책의 내용을 직접 확인한 결과 보수신문과 종편이 보도한 내용과 사뭇 달랐다. 이들 언론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거나 앞뒤문맥을 단절시키고 짜깁기하는 등의 왜곡도 있었다.

채널A와 MBN은 북한군이 저지른 민간인 피해에 관한 설명이 해당 책에는 ‘없다’고 단정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다음은 143쪽의 내용이다.

“북한군도 다르지 않았어요. 각 지역을 점령하고 있거나 후퇴할 때 수 많은 경찰, 공무원, 그 가족들 그리고 좌익이었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반동분자'라는 구실로 학살했어요. 대전 형무소에는 우익 인사의 가족들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후퇴할 때 이들을 모두 죽여 버립니다. 전라남도 임자도에서는 절반이 넘는 주민이 북한군과 지방 좌익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 <10대와 통하는 한국전쟁 이야기> 143쪽의 내용. 북한군이 남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이 없다는 채널A와 MBN의 보도와 달리 책에는 관련 내용이 있다. (출판사의 동의를 받아 촬영한 사진입니다.) 
 

책에 버젓이 북한군의 학살을 다루고 있다. MBN과 채널A가 오보를 낸 셈이다.

‘인민군 미화 대목’은 어떨까. 지난 11일 동아일보는 “‘인민군은 들어와서 제일 먼저 집집마다 식량을 조사하고 이를 뒤져내 마을의 굶은 사람에게 나눠주고 남으면 자신들이 먹곤 했다’는 표현으로 인민군을 미화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남한 정부는 서울시민에게 싸울 것을 강요했지만 인민군은 식량을 조사해 굶은 사람에게 나눠줬다’고 기술했다”고 보도했다. 채널A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책에 인민군이 식량을 나눠줬다는 내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6.25전쟁 당시 쓰여진 서울대 김성칠 교수의 일기 인용을 통해서다. 그러나 전후문맥을 함께 보면 해당 내용은 인민군 미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 46쪽의 내용은 이렇다. 

“민은 이식위천이니만큼 무어니 무어니 해도 식량이 제일 큰 문제이다. 인민군은 들어와서 제일 먼저 집집마다 식량을 조소하고 이를 뒤져 내어서 마을의 굶은 사람들에게도 나눠 주고 남으면 자기네도 갖다 먹곤 하였다. 그때의 약속은 1주일 안으로 식량 배급이 있다고 장담하였었다. 그러나 2주일이 지난 오늘날까지 아무 데서도 식량이 있단 말을 못 들었다.”

   
▲ 채널A '김부장의 시사통'의 한 장면. 책의 내용을 악의적으로 짜깁기했다.
 
   
▲ 보수신문과 종편이 지적한 <10대와 통하는 한국전쟁 이야기>의 '인민군 미화'대목. 앞뒤문맥을 살펴보면 인민군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은 전쟁 시 식량확보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관련 근거로 서울대 교수의 기록을 인용했다. 종편과 보수신문은 앞뒤 내용을 자르고 인민군이 식량을 전달했다는 내용만 부각시켜 인민군 미화라고 단정했다. 조선일보의 보도는 더욱 악의적이다. 남한 정부가 서울시민에게 싸울 것을 강요했다는 내용까지 갖다붙여 인민군 미화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 뿐이 아니다. 보수신문들은 책의 머리말을 인용하며 저자가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잘못돼’ 혹은 ‘부실해’ 책을 쓰게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11일 세계일보는 “이 책은 ‘그동안 초등학교 교과서 등이 잘못돼 한국전쟁에 대한 청소년 이해를 돕는다’고 머리말에 기재돼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한국전쟁을 다룬 딸의 초등학교 교과서 내용이 부실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저자는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부실하거나 잘못됐다고 책에 쓰지 않았다. 단, 기존의 역사교과서에 실망했다는 대목은 있다. 기존 교과서가 단편적인 사실을 적은 분량으로 기술한 점을 비판한 것이다. 세계일보와 조선일보는 이를 잘못됐다거나 부실했다고 쓰면서 저자가 기존 교과서 내용의 이념적 측면을 문제삼은 것처럼 부각시켰다. 원문은 이렇다.

“교과서를 읽는 순간 너무나 실망스러웠어요. … 교과서는 한국 전쟁의 원인, 과정, 결과를 사진을 곁들여 두 쪽에 걸쳐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읽고 ‘아이들은 전쟁과 평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 지난 11일 조선일보 관련 보도 표제.
 

해당 책의 출판사인 철수와영희’의 박정훈 대표는 “문화일보는 우리 책에 6.25가 남침이라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남침을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 책에 3번에 걸쳐 나온다”고 말했다. 문화일보는 지난 10일 관련 기사에서 ‘북한의 남침 외면’이라고 보도했다. 확인 결과 책 10쪽, 25쪽, 28쪽에는 6.25전쟁이 남침이라는 사실이 언급됐다. 악의적인 왜곡이다.

물론 책이 6.25전쟁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것은 사실이다. 평화를 추구하는 대북정책을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내용도 있다. 이는 어디까지는 상식적인 차원의 주장이다. 좌편향이라고 부르기 힘들다.

외려 책은 오늘날 남북평화를 저해하는 원인 중 하나가 북한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2002년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졌다.”, “요즘의 한반도는 어떤가요?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 등이다.

“졸지에 좌편향 출판사가 됐다.” 박 대표의 말이다. 이러한 왜곡보도는 종편과 보수신문의 신은미·황선의 통일 토크콘서트 보도를 연상시킨다. 통일 토크콘서트가 종북콘서트로 규정됐다. 신은미씨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말을 했다고 언론이 보도했고 테러로 이어졌다. 확인 결과 신은미씨는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었다.

악의적 보도로 명예훼손은 물론 물리적 피해까지 입힌 종편과 보수신문.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