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묵직했다. 77일간 옥쇄파업부터 70m 굴뚝에 오른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모았다. 7년간 쌍용자동차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쫓겨난 지 7년째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해고 노동자다. 해고되면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기에 ‘해고 노동자’라는 말은 모순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해고된 이후에도 생산을 멈추지 않은 해고 노동자다. 아니, 글을 쓰는 해고 노동자다.  

   
▲ 이창근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는 글쟁이다. 그는 “글을 쓸 때 검열하는 버릇이 생겼다. 너무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며 작가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자신이 울면서 쓴 보도자료가 윤전기와 카메라를 통과하지 못할 때도 그는 집요하게 썼고, 독자에게 기자가 돼 달라고 했다. 

<이창근의 해고일기>는 그간 언론사에 썼던 글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의 수익금으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분홍 도서관’도 짓겠다니 그는 어느덧 프로 작가다. 언론에 의해 폭도로 낙인찍히고 투기자본과 국가권력의 만행을 오롯이 짊어질 때, 쌍차를 훌쩍 떠나 새로운 직장에서 노동자로 살고 싶었을 때 그가 글을 통해 그토록 알리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쌍용차 문제가 대한민국 노동 문제의 중심은 아니다. 그러나 쌍용차 문제를 우회해선 노동 문제에 접근할 수 없다” 그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쌍차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자 26명의 죽음은 접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쌍차 정리해고를 통해 한국 사회 위기가 드러난 구조적인 폭력,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상하이차는 1조가 넘는 평가를 받던 쌍차를 5900억 원이라는 헐값에 인수한 뒤 2009년까지 신차개발을 중단했다. 쌍차에 투자하겠다던 세 차례의 약속은 모두 지키지 않은 채 핵심 기술인력 50여명, 통합전산망을 통해 열람한 쌍차 기술도면, 국정원까지 문제를 제기했던 디젤 하이브리드 엔진 기술을 얻은 뒤 상하이차는 쌍차에 대해 부도를 신청했다.

쌍차의 ‘카이런’과 유사한 ‘로위w5’를 생산한 상하이차는 회계법인을 이용해 쌍차를 부실기업으로 만들었다. 안진회계법인은 쌍차의 유형자산 평가액을 낮춰 부채비율과 순손실을 높였다. 이를 통해 상하이차는 지난 2009년 쌍차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회계법인 삼정KPMG는 안진회계법인의 자료를 인용해 2646명의 정리해고를 내용으로 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회계조작에 참여했던 안진회계법인은 쌍차를 2011년 인수한 인도 마힌드라의 외부회계감사로 활동하고, 삼정KPMG는 쌍차 재매각때 주간사로 활동하며 수억 원의 수수료를 각각 챙겼다. 외국 자본의 먹튀에 대해 채권자인 산업은행과 법원은 바로잡지 않았고, 회계조작의 결과물은 정리해고의 근거로 활용했다. 

대량해고가 있던 지난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은 “오죽하면 회사가 해고를 하겠냐는 식으로 회사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채권을 조기에 회수하는 목적만 달성하려던 국가는 용역깡패와 경찰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폭행했고, 노동자들에게는 47억 원의 손해배상금과 대량해고 당시 파업을 주도한 노조 간부 9명에 대한 해임이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남았다. 

공장에서 쫓겨난 억울함은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나이 서른일곱에 감옥에 들어가 사람의 열기로 열댓 명이 뒤엉켜 자야하는 불편함, 웃통을 벗은 형님들 문신을 보고 느끼는 공포감, 정리해고라는 칼날로 산자와 죽은 자를 나누는 회사에 대한 배신감, 양쪽 동료들이 일상적으로 암, 정신병, 자살충동 등으로 시달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 그럼에도 노동자이고 싶어 ‘H-20000 프로젝트’를 통해 자동차를 다시 만든 절박함.

   
▲ 이창근의 해고일기/ 이창근 지음/ 오월의봄 펴냄
 

  
그간의 고통은 그 깊이만큼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해줬다. 이창근 실장은 2009년 쌍차 파업 당시 만났던 어린 용역 깡패를 2년 뒤 대전 유성기업 공장안에서 다시 만났다. 다른 일을 찾아보려 해도 쉽지 않다는 용역 깡패의 말에 그는 자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10여 년 뒤 내 아들의 미래는 좀 다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자신들에게 폭력으로 맞서는 이들조차 사람으로 바라보는 공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고통을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이 기계를 멈춰 노동의 가치를 드러낸다. 저 멀리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김진숙이 매일 고통으로 노동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고통 받는 모든 자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증오와 패배감을 벗고 작은 승리의 공감을 만들어야 오래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창근 실장은 “노동자로 당당히 살아가고픈 꿈, 노동 과정에서와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구조와 틀을 바꾸는 꿈”을 꾼다. 그 꿈을 위해 그는 “한국 사회처럼 투쟁하는 이들에 대한 탄압이 존재하는 나라도 드물다. 어쩌면 투쟁하는 이들만이 자본과 권력의 실체를 발가벗기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말하며 혁명가가 됐고, “기록하지 않으면 미래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며 역사가가 됐다. 그리고 그는 MBC 파업, 골드브릿지투자증권 파업,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재능교육, 기륭전자 등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활동가가 됐다. 

지난 7일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스포츠 칼럼을 쓰고 싶다는 글을 하나 남겼다. 종종 자신의 글에 인용하던 스포츠 용어와 원리를 재밌게 쓰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복직해서 주말에 스포츠를 좀 봐야 뭐라도 쓸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런 소박한 이유들을 담아 굴뚝에 올라가 있다. 대신 맞아줄 사람 없는 찬바람을 견디고 있다.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요구를 그냥 받아들이고 싶은 노예근성에 온몸으로 맞서는 그와 김정욱 사무국장에게 법원은 굴뚝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하루에 100만원씩 물어내라는 결정을 내렸다. 

   
▲ 지난해 12월 13일부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쌍용차 평택공장 안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 중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굴뚝에서 하루에 50만 원짜리 숙박을 하며 그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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