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법원은 MBC가 2012년 언론노조 MBC본부(MBC노조, 위원장 이성주) 파업 과정에서 보안 프로그램을 통해 노조원들의 보도자료와 사적 이메일 등을 불법 열람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강지웅 전 MBC노조 사무처장과 이용마 전 홍보국장을 포함한 조합원들은 파업이 끝난 이듬해 “직원 동의 없이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해 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했다”며 김재철 전 사장, 안광한 사장, 차재실 전 정보콘텐츠실장 등을 상대로 7000만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5단독(부장판사 이원근)는 “MBC와 차 전 실장은 강 전 처장에게 30만원, 이 전 국장에게 100만원을 지급하라”며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 전 사장과 안 사장에게는 배상 책임을 묻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9일 받아본 판결문에서는 당시 정황이 자세히 명시돼 있다. MBC는 정보보안시스템 부실 및 정보 유출을 이유로 2012년 5월 정보콘텐츠실에 해킹차단 기능이 우수한 보안제품을 선정토록하는 등 정보보안시스템 강화 시행계획을 수립했다. 

   
▲ 지난 2012년 언론노조 MBC본부가 사찰 의혹과 관련해 차재실 전 정보콘텐츠실장을 항의 방문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해 6월 차 전 실장은 보안 프로그램인 ‘트로이컷’을 사내 전체에 배포했고 사원들 컴퓨터에 설치되도록 했다. 하지만 차 전 실장은 프로그램 도입 및 설치 경위, 자료나 파일의 사내서버저장 등 각종 특성, 설치방법에 관한 내용을 직원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정보보호서약서나 동의서를 받지도 않았다. 

트로이컷은 해킹을 방어하는 보안 프로그램으로 정보유출 차단, 탐지 기능뿐 아니라 회사 컴퓨터 사용자가 외부로 전송한 파일이 해당 회사 중앙 서버에 저장되게 하는 ‘로깅(logging)’ 기능도 있다. MBC 노조가 “사측이 불법사찰을 했다”고 주장한 까닭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차 전 실장의 위법 행위를 인정하면서 “차 전 실장이 열람한 파일은 언론노조 MBC본부의 홍보사항 또는 보도자료이거나 사적인 이메일, 미디어렙 관련 논의자료 등이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노사 대립 관계 등을 고려했을 때 차 전 실장의 열람행위로 강 전 처장과 이 전 홍보국장에게 위자료로 배상할 만한 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썼다. 

차 전 실장은 열람행위에 대해 ‘급박한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 ‘정당한 업무행위’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으나 재판부는 “열람행위가 트로이컷 테스트 과정에서 반드시 불가피한 것이라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며 기각했다. 

   
▲ 이용마 언론노조 MBC본부 전 홍보국장이 2012년 사측의 해킹프로그램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민중의 소리 양지웅 기자)
 

하지만 재판부는 “원고들은 또 다른 피고(김재철 전 사장 등 경영진)가 차 전 실장과 공모해 불법행위에 가담했다고 주장하나 김재철 전 사장 등 경영진이 차 전 실장과 공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증거가 없다”고 했다. 

이러한 범죄행위는 지난해 8월 형사재판에서 확인된 바 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차 전 실장은 2012년 6월7일부터 8월23일까지 프로그램 트로이컷을 이용해 MBC 임직원들의 이메일, 첨부 문건 등 525개 파일을 MBC 관제 서버에 저장되게 한 후 이를 열람함으로써 정보통신망에 의해 처리·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비밀을 침해했다”며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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