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그동안 불법적으로 시민들을 채증해 온 사진이 최초로 공개됐다.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대응팀)은 4일 ‘불법채증규탄 특별한 사진전’을 통해 24장의 경찰 채증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들은 지난달 7일 2차 오체투지를 진행하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불법으로 채증하다 본지 기자에게 적발되자 오마이뉴스 기자를 사칭했던 서울 구로경찰서 정보과 최현규 경장의 사진을 입수한 한 시민이 대응팀에 제보한 사진이다. 대응팀이 입수한 사진은 지난해 5월과 8월 세월호 집회, 지난해 7월 한국노총 집회, 지난달 5일 경찰내부 풍경, 지난달 7일 쌍용차 오체투지행진 등으로 총 323장이었다. (관련기사 : [단독] 경찰 정보과 직원 ‘기자 사칭’ 불법 채증하다 딱 걸려)

당시 최 경장 카메라 한 대에서 나온 채증사진에는 이처럼 과거사진들도 포함돼 있다. 또한 채증카메라 용도로만 사용되지 않고 경찰 내부 모습도 들어있어 목적에 맞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은아 인권운동사랑밤 활동가는 “채증사진은 수사자료라는 이유로 정보공개청구해도 주지 않았던 자료였다”며 “기자 사칭한 경찰로 인해 처음 공개되는 자료”라고 말했다. 

   
▲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이 4일 ‘불법채증규탄 특별한 사진전’을 통해 공개한 사진. 지난달 7일 쌍용차 오체투지 중 기자를 사칭하던 서울 구로경찰서 경찰 사진이다. (사진 = 장슬기 기자)
 
   
▲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이 4일 ‘불법채증규탄 특별한 사진전’을 통해 공개한 사진. 지난 5일 경찰서 내부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통해 경찰은 채증카메라를 여러가지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 장슬기 기자)
 

대응팀 랑희 활동가는 “경찰조사를 받다보면 1~2분 사이에 찍힌 사진 몇장을 들이대면서 이 현장에 있지 않았느냐고 경찰이 묻는데 나는 언제 누가 찍었는지 알 수 없다”며 “과연 사진이 서너장 밖에 없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랑희 활동가는 “이 불법 채증사진은 재판에서 검찰측 증거자료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채증사진에 관해 수사목적으로 사용한 후 폐기한다고 밝혀왔다. 최은아 활동가는 “경찰의 이같은 주장은 일방적인 주장이었을 뿐 채증된 사진자료가 수사목적으로 쓰인 뒤 어떻게 관리되는지 알 수 없다”며 “이번 사건을 통해 경찰이 사진자료를 폐기하지 않고,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당시 오체투지에 참여했던 기륭전자 유흥희 분회장은 “합법적인 행진이었지만 몰래 감시카메라를 통해 일상적인 사찰이 이뤄지고 있었다”며 “이렇게 불법적으로 수집된 사진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법정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사진들을 보면 경찰이 특정인에 대해 연속적으로 촬영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유 분회장은 이미 경찰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 유 분회장은 “집회신고를 한 합법적인 집회에서도 나에 대해 경찰이 불법으로 모는 행동들이 많았는데 지속적으로 사찰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유 분회장에 따르면 경찰은 ‘유 분회장이 키가 작고 집회를 항상 주동하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분회장은 “오는 5일~7일까지 3차 오체투지가 진행되는데 이 행진에서도 불법이 벌어질 것 같다”며 “표현의 자유와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들에 대해서도 다퉈야 한다”고 말했다. 3차 오체투지는 SK와 LG통신 비정규직들이 1, 2차 참여자들과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이 4일 ‘불법채증규탄 특별한 사진전’을 통해 공개한 사진. 지난달 7일 쌍용차 오체투지 중 경찰이 불법적으로 채증한 사진이다. (사진 = 장슬기 기자)
 

경찰은 기자 사칭과 불법채증에 대해 오마이뉴스에 사과한 뒤 지난달 20일 채증활동규칙(예규)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훈민 변호사는 “경찰은 채증규칙을 더 손쉽게 채증할 수 있도록 개정했고 인권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개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오체투지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개정된 규칙의 문제점은 기존 규칙보다 인권침해 요소가 많다는 점이다. 경찰은 개정된 규칙에서 기존 채증요원에 의무경찰을 포함했고, 채증계획이 없어도 채증을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경찰관서에서 지급한 장비가 아닌 개인소유 기기로도 채증을 가능하게 했다. 개인 스마트폰으로도 채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같은 경찰의 규칙(예규)은 정부 내부에서만 효력을 갖는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채증활동은 법적근거 없이 이루어지는 초상권 침해행위 즉 기본권 침해행위”라며 “경찰의 이런 불법행위에도 시민들은 채증된 사진이 어떻게 관리되고 폐기되는지 알 수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는 채증이 범행이 행해지는 상황이거나 증거보전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수집, 사용, 보관, 폐기 절차가 투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진전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3일 경찰은 대응팀에 사진전을 관람하겠다고 전했다. 이에 대응팀은 경찰에게 사진전에 오지 말라는 입장을 밝히고 사진전이 열리는 서울 경향신문사 건물에 “경찰 출입을 거부한다”는 알림을 붙였다. 경찰은 사진전에 참석하지 않았다. 

   
▲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이 4일 ‘불법채증규탄 특별한 사진전’을 통해 공개한 사진. 지난해 8월 11일 세월호 관련 1인시위를 하는 시민을 불법채증한 사진이다. (사진 = 장슬기 기자)
 
   
▲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이 4일 ‘불법채증규탄 특별한 사진전’을 통해 공개한 사진. 지난해 5월 17일 경찰이 세월호 집회를 하는 시민들을 불법으로 채증한 사진이다. (사진 = 장슬기 기자)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