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권성민 예능PD 해고를 지난달 30일 확정했다. 외부 관심은 이제 예능PD를 비롯해 내부 구성원들이 사측을 상대로 어떤 대응을 할지에 쏠리고 있다. 하지만 서슬 퍼런 징계의 ‘칼날’ 앞에 구성원들도 마땅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권 PD는 지난해 12월 비제작부서 경인지사로 발령을 받은 뒤 좌천된 자신의 모습을 웹툰으로 그렸다. MBC는 권 PD가 그린 웹툰에서 ‘유배생활’ 등의 표현을 문제 삼았고 지난달 21일 그를 해고했다. ‘해사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인사위 재심이 일주일 뒤 열렸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MBC는 “공개된 공간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며 시청자를 멸시하고 회사에 대한 해사행위로 징계를 받은 직원이 같은 행위를 반복할 때 회사가 취해야 할 조치는 명백하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 권성민 PD가 그린 ‘예능국 이야기’ ⓒ 권성민
 

재심에서도 해고가 떨어지자 공분이 다시 커졌다. 구성원들이 안에서 적극 대응해줄 것을 바라는 여론도 분출됐다. 지난달 31일 오전 ‘늙은도령’이라는 네티즌은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린 를 통해 “MBC 경영진의 행태는 언론사이자 방송사인 문화방송을 보복과 억압, 공포와 테러가 넘치는 전장이자 쓰레기들의 놀이터로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그는 또 “김태호 PD를 비롯해 MBC 예능을 책임지고 있는 PD분들에게 부탁한다”며 “끝없이 몰락하는 MBC를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한 투쟁에 들어가 달라. 승리가 보장된 곳에 명예 따위는 없듯이, 동료의 억울한 정치 공학적 해고에 저항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MBC 구성원의 동력은 떨어져 있는 상태다. 잇따른 징계에 잔뜩 움츠리고 있다. 언론 시민단체와의 연대와 소통도 쉽지 않다. 이로 인해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단체를 중심으로 꾸린 ‘MBC공대위’ 활동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내부 구성원들의 투쟁과 외부 저항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하는데 지금은 뾰족한 수가 없다”고 했다. 기자, PD들의 동력이 살아나야 외부 저항에도 힘이 실린다는 얘기다. 

최정기 언론노조 조직쟁의부장도 “권 PD 고등학교 은사가 인터넷에 청원 글까지 올리는 등 해고 직후 사회적 여론이 있었는데 MBC 구성원들의 지원이 부족했다”며 “결국 청원도 5000명을 채우지 못하고 끝났다. 쌍용차 투쟁처럼 시민들의 연대가 계속돼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최 부장은 또 “실제 MBC 내부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주중에 만나 머리를 맞대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시민단체가 지난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권성민 PD 해고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MBC는 파시즘적 행동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이크를 쥔 이성주 언론노조 MBC본부장의 모습. ⓒ미디어오늘
 

법원 결정마저 무시하며 기자, PD 목줄을 조이고 있는 사측을 상대로 구성원들의 고심은 깊어만 가고 있다. 이성주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파업, 제작거부, 집회 등 집단행동을 하면 사측은 그 숫자에 관계없이 매우 강력한 처벌을 하고 있다”며 “권 PD 건 같은 경우가 대표 사례”라고 말했다.

2012년 170일 파업 투쟁 과정에서 최승호 PD 등 바른 말하는 언론인이 해고됐고, 참여했던 기자, PD 다수가 비제작부서에 몰려 있다. 파업이 끝난 뒤 채용된 기자만 60여 명 수준. ‘사측이 되레 바라는 게 노조의 투쟁’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로 현실은 암울하다.
 
이 본부장은 “물론 파업 때도 해고, 정직이 일상적이었다”면서도 “회사가 권력을 사유화해 휘두르고 있는 불합리를 바로잡을 사회적 장치가 없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게 ‘법’이나 이마저 무시하고 있다”고 했다.

여야 정치권, 방송통신위원회,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등 공영방송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법을 제시해야 할 사회적 기구들이 사실상 무용한 상황에서 섣부른 싸움은 외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언론노조 MBC본부의 경우 차기 집행부를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선뜻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MBC의 한 기자는 “차기 위원장은 어쩌면 해고를 각오하고 경영진과 싸워야 할 텐데 취재나 제작을 하고 싶지 ‘운동’으로 목숨을 잃고 싶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MBC 내부에 깔린 열패감 극복과 구성원 동력 제고는 차기 집행부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한편, 권 PD 해고와 관련해 예능 PD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PD들도 격분해 있는 상태이나 차분한 기조로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예능 PD들은 지난 2일 총회를 열었고, 일단 성명을 통해 해고 사태를 규탄할 것으로 알려졌다. MBC가 권 PD 인신을 공격한 것에 대한 일차적 대응이다. 예능PD들의 후속 대응이 계속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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