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 시절 억울하게 누명을 입힌 과거사건의 재심청구 과정에서 담당 조사관이 부당하게 수임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일부 전직 과거사위원회 조사관의 피의사실을 언론에 공표해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한 이 조사관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국가인권위에 진정하자 곧바로 검찰로부터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점도 비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피의사실을 공표한 적이 없으며, 기자들의 취재에 소극적으로 확인해준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사건 자체만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과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에서 납북귀환어부 사건 조사를 담당했던 노아무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달 26일 압수수색을 받은 이후 27일 오후부터 28일 새벽까지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해보니 언론에 내 혐의가 자세히 보도돼 있었다”며 “또한 조사과정에서 본인의 신분이 ‘시민인권보호관’인데도 검찰조사관이 ‘인권감사관’으로 표현하자 이를 바로잡으려 했는데, 언론에도 ‘인권감사관’으로 보도됐으며, 서울시 인권보호관 중 노씨 성을 가진 이는 나 한 명 뿐”이라고 밝혔다.

노 보호관은 과거사위 활동 종료 이후 김준곤 변호사(전 과거사위 상임위원)이 있는 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옮겨 납북어부사건 피해자를 소개해줘 수수료를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이렇게 받은 돈에 대해 노씨 등은 성과급으로 받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검찰 측은 알선료라고 주장하는 등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는 사건이다. 노 보호관은 이를 두고 “범죄혐의와 관련해 마치 내가 알선행위로 돈을 받았다는 식으로 확정적으로 보도돼 이미 범죄자로 낙인 찍혔다”고 반박했다.

그는 특히 현직 서울시 공무원 신분이라 시에 누가 될 수 있으니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으며, 검찰조사 때 피의자신문조서에도 직접 피의사실 공표 금지 요구를 했는데도 조사직후 곧바로 언론에 보도됐다고 지적했다.

노 보호관은 지난달 28일 새벽 2시18분에 조사를 마쳤으나 동아일보 온라인판 <단독 ‘부당 수임 의혹’ 민변 변호사 운영 로펌, 과거사위 조사관을 직원으로 채용> 기사가 나온 것은 그날 새벽 3시였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인권감사관’이라는 단어와 휴대전화가 압수됐다는 사실은 담담검사와 수사관, 노 보호관만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그는 지목했다. 이밖에도 자신의 소환조사 사실을 보도한 곳 10군데의 기사를 제시했다. 

   
지난 1985년 3월 9일 백령도 서쪽 공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 24일만에 돌아온 선원 21명이 기자회견장했던 자료사진.
@연합뉴스
 

노 보호관은 조사를 마친 당일(28일)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 항의했으나 검사가 ‘국민건강보험 공단에 가면 신분이 인권감사관으로 돼있는데, 이를 기자들이 봤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해명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같이 문제가 되자 노 보호관은 지난달 29일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행위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검찰이 노 보호관에 대해 지난 2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는 3일 문자메시지를 통해 오는 5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언론에 보도된 자신의 혐의 내용에 대해 노 보호관은 “8건의 사건에 대해 조사만료로 과거사위원회에서 조사되지 않아 이후 김준곤 변호사가 재심사건으로 한 번 함께 해보자고 해서 진행한 사건”이라며 “이것의 위법성을 가리는 것은 법정에서 판단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도주와 증거인멸할 부분도 없고, 받은 내역도 다 인정했으며, 그 내역에 대한 성격은 다툴 여지가 있는데, 피의사실이 공표되고 문제제기하자 구속영장이 청구돼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노 보호관은 “위법성이 있다면 법의 절차에 따라 진행하면 되는 것이고, 형사소송법 상 피의사실 공표죄가 있듯이 인권 보루라는 검찰이 법에 있는대로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며 “하지만 지금은 여론몰이식으로 몰아붙이고, 이미 범죄자로 낙인을 찍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검찰은 피의사실 공표를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3일 문자메시지 답변을 통해 “피의사실 공표는 사실과 다르다”라며 “취재기자들에게 확인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유 차장은 괘씸죄식 구속영장 청구 의혹에 대해 “노씨의 인권위 진정은 오늘 언론보도로 처음 알았으며 다른 고려없이  사건 자체만을 가지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라며 “기자들의 관심이 커 취재경쟁이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계속 보도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공보준칙에 따라 기자들이 취재한 부분을 소극적으로 확인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 보호관의 혐의내용을 기자들에게 확인해줬는지에 대해 유 차장은 “기자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A언론사 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는 3일 “이 사안에 대한 언론 브리핑은 없었으며, 기자들이 개별취재에 들어가면 맞다 아니다 정도만 확인해준 것으로 안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정도만 확인해줬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혐의내용을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으며, 기자들이 변호사와 과거사위 쪽 인사들과 계속 통화하는 방식으로 외곽취재를 통해 파악한 것을 검찰에 맞는지 틀리는지를 확인받아 쓴 것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B언론사 출입기자도 “검찰이 영장청구 사실은 알려줬다”며 “기자들에게 먼저 혐의내용을 알려준 것이라기 보다는 기자들이 들은 얘기를 확인해주는 방향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 기자는 “과거 박지만 소환 사실여부나 그의 진술취지에 대해 확인을 요구하면 어느정도 확인해주는 부분은 있기는 해왔다”며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검찰발) 기사들이 다 문제가 되고, 취재가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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