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느낌이었다”

‘과도기 노동’의 청년 착취 실태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도기 노동’이란 고등학교나 대학교와 같은 제도권 교육과정과 취업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턴·수습 등의 중간단계 노동의 개념인데 이들의 근로조건 보호를 위한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인턴을 했던 대학생 김가은(가명)씨는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기 위해 인턴을 시작했지만 “마음이 피폐해져 떠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전공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미술관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하지만 인턴에게는 식대만 제공된 채 청소와 설거지만 하게 됐다. 김씨는 “돈도 못 받고 배우는 것이 없어 자원봉사 하러오는 느낌”이 들어 인턴을 2개월 한 뒤 그만뒀다.  

지난해 1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 5명중 1명(21.2%)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인턴·수습·견습·시용 등의 용어로 불리며 교육생이라는 명목으로 최저임금 이하를 받으며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제에서 인턴했던 이혜정(가명)씨는 인턴 기간동안 한달에 40만원씩 받고 일했다. 이 씨는 “영화 관련 전공을 하지 않아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인턴을 지원했다”며 “지원모집공고에도 임금을 얼마 주는지 명시하지 않았고 업무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해주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씨는 “어차피 (인턴이)싸게 일을 부려먹다가 곧 떠나갈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게 된다”며 “장기적으로는 업계 자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사무직 인턴을 세 번했던 박현아(가명)씨는 한달에 30만원을 받으며 인턴을 했다. 박 씨는 “처음에는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인턴을 하게됐는데 생활이 되지 않아 주말에는 따로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출장간다고 출장비를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강남에서 일했는데 30만원 가지고는 식비로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허울좋게 기업들은 학생을 위한 실습기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싸게 부려먹다가 버리는 노동력에 불과했다”며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 “아프니까 청춘, 열정페이만 받으라고?”)

   
▲ 지난해 12월 18일 오전 서울 맥도날드 청담점 앞에서 열린 아르바이트노동조합 (알바노조)의 맥도날드 근로실태 설문조사 발표 기자회견은 체감온도 영하15도의 추위 속에서 진행됐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선진국에서는 교육에 초점이 맞춰진 인턴과 노동자의 구분 기준이 명확하다.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은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 판례와 노동부 고시를 통해 무급인턴 사용의 6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를 충족하지 못할 때는 최저임금이나 휴식시간 보장 등 노동조건의 최소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미국은 △인턴의 이익을 위한 것 △교육과정 속에서 제공되는 훈련 △근로자의 일을 대체하는 것이 아닐 것 △기존 직원들의 면밀한 감독 하에서 수행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도 △인턴기간을 최대 6개월로 제한 △보수는 최소 523유로(약 70만원) △인턴의 숫자를 제한 △산업재해에 대한 사용자 책임 등의 조건을 충족하도록 규정돼 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주식회사 이상봉’에서 일했던 과도기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착취에 대해 문제제기 했던 패션노조 대표 배트맨D는 “지난 26일 디자이너 채용에 신체사이즈를 요구하는 만연한 관행의 코오롱과 이랜드 등 패션업계 관행에 대해서 인권위에 진정했다”며 “과도기 노동자 실태가 계속 드러나야 한다”고 말해다. 

배트맨D는 “패션업계에서 ‘도제’식으로 교육하기 때문에 노동착취가 벌어진다고 하는데 도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며 “이상봉 대표는 중소기업의 사장이지 실제로는 인턴들의 스승일 수 없기 때문에 최소한 도제식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모임을 후원한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은 “당장 오늘 2월 임시국회에서 고용노동부가 이런 과도기 노동에 대해 어떤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인지 감시하고 문제제기 할 것”이라며 “올해 안으로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 모임이 열리고 있는 국회에서도 많은 청년들이 스펙을 사기 위해 무급이나 최저임금의 돈을 받고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며 “가까운 곳에서부터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국회, 인턴 월급 올려준다더니 9년째 120만원)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