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방송통신위원회가 2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말끔하게 해결된 일이 없다. 방통위가 업계 이해관계에 휘둘려 내놓는 법안과 정책마다 ‘반쪽’짜리가 돼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은 도입 이후 출고가 및 통신요금 인하가 이뤄지지 않는 등 분리공시제가 빠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방통위가 입법예고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상파와 유료방송업계의 민원을 해결해주다보니 정작 시청권이 침해받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통위가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인 통합시청점유율제 역시 업계의 반발이 예상돼 제대로 도입될지 의문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15일 발표한 ‘단통법 100일 이슈리포트’에서 단통법 도입 이후 이용자 차별행태는 줄었지만 단말기 출고가 및 통신요금 인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단통법이 통신비인하를 유도하지 못하는 상황은 분리공시제 도입이 무산됐을 때부터 예견됐다. 분리공시제는 보조금 규모확대를 위한 제도로 보조금을 구성하고 있는 단말기 제조사 장려금과 이통사의 지원금을 구분해 공개하는 내용이다.

   
▲ 3기 방송통신위원장 및 상임위원들.
 

지난해 방통위는 분리공시제가 포함된 단통법을 만들었지만 삼성전자가 분리공시제가 영업비밀의 공개 우려가 있다며 반발했다. 이후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분리공시 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했고 방통위는 권고안을 받아들였다. 이를 두고 삼성전자의 로비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방통위 국정감사에서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재심사 요구에서도 수용된 사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통위가 재심 여부를 묻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단통법은 소비자를 위한 법인데 방통위를 비롯한 관계부처들이 업계의 요구를 들어주다보니 이동통신사와 단말기제조사를 위한 법이 돼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게 됐다”고 지적했다. 안진걸 처장은 “단통법이 실질적인 통신비인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분리공시제 재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업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의 경우 방통위가 양쪽의 민원을 해결하다보니 정작 국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방통위가 발표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방통위가 지상파와 유료방송업계의 이해관계에 얽매인 결과 시청자들의 시청권이 침해될 우려가 큰 상황이다.

지상파방송사들은 그동안 비대칭규제를 완화해달라고 방통위에 꾸준히 요구했다. 반면 유료방송업계는 지상파에 특혜를 줘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통위는 결국 지상파가 요구하는 ‘중간광고’대신 실효성이 크지 않은 ‘광고총량제’를 도입했다. 대신 가상광고 장르확대, 간접광고 기준완화 등 지상파와 유료방송에 광고규제 완화를 단행했다. 이마저도 유료방송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유료방송에 추가적으로 광고규제를 완화했다. 유료방송의 토막광고 및 자막광고 규제를 폐지하고 기존 시간당 총량제를 프로그램 편성시간당 총량제로 바꿔 광고허용시간을 확대한 것이다.

   
▲ 방통위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간접광고 규제도 완화된다. 사진은 tvN 드라마 <미생>에 간접광고로 나온 PPL(간접광고 제품/ 빨간 원).
 

그 결과 방송의 극단적 상업화에 따른 시청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1일 발표한 의견서에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관해 “시장경제의 선순환이라는 명분 하에 방송의 공익성이나 공공성 등을 도외시한 마구잡이식 규제완화”라며 “특히 광고의 양적 확대에 따른 방송의 극단적 상업화, 비지상파에 대한 추가적 특혜 제공 등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비민주적인 조치”라고 지적했다. 간접광고 문제의 경우 이례적으로 장낙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상임위원이 “방통위는 방송사의 자율정화 범위를 초과해 상업적 논리로만 간접광고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내년 도입예정인 통합시청점유율제도는 제2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통합시청률은 TV시청자들만 대상으로 하던 기존의 시청률 조사방법 대신 실시간 방송 채널과 VOD 시청시간을 측정하고, 추가로 PC나 스마트폰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N스크린 시청 기록도 포함해 시청률을 집계하는 방식을 말한다. 통합시청률 결과에 따라 광고단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 주시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를 소유한 동아일보는 시뮬레이션 결과조차 공개되지 않은 통합시청률에 관해 지난 16일 <통합시청률 섣불리 도입땐 시장 혼란>기사를 통해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자사이기주의 보도로 지상파 광고총량제에 따른 조중동의 보도양상과 비슷하다. 방통위가 2014년 자체적으로 통합시청률을 추산했으나 아직까지 발표하지 않은 까닭 역시 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 지난 16일 동아일보 기사.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를 소유한 동아일보가 통합시청률 도입 이전부터 견제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통합시청률은 통계의 영역이기 때문에 지상파 광고총량제 문제보다 업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지상파 광고총량제와 마찬가지로 정책도입 결과의 유불리에 따라 관련 매체의 공세가 강해질 것인데 방통위가 이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방통위의 전반적 청책방향에 관해 추혜선 사무총장은 “방통위의 정책은 명확한 철학이 보이지 않고, 지향점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며 “사업자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규제기관의 역할이긴 하지만 기준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채 사업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니 지금처럼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시청자와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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