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에코브리드’ 녹음실. 그룹 시나위의 리더이자 음반사 에코브리드 대표 신대철을 만났다. 그에게 받은 명함에 ‘시나위’나 ‘에코브리드’를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바른음원협동조합 이사장’ 이라는 직함이 있었다. 지난해 8월 음원유통구조를 바로잡겠다며 신대철이 주도적으로 바음협을 설립했다. “원래 ‘신사장’이었는데 이제 ‘이사장’이 됐다”며 신대철은 미소를 보였다.

바음협은 창립 초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대중들 눈에 띄는 이렇다 할 ‘활동’이 보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주 바음협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음원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협동조합의 로고송 격인 ‘뮤생’이라는 곡도 발표했다. 힙합가수 MC메타의 랩과 신대철의 기타연주가 어우러진 곡이었다.

   
신대철 (가운데) 바른음원협동조합 이사장이 지난해 4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음원시장의 창작자 권리 어떻게 지킬것인가' 토론회에서 주제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음악이 가장 싼 나라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1만회 들으면 가수는 3만 6천원 정도 번다. 말이 되나.” 신대철은 음원 가격이 어떻게 배분되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스트리밍 곡 하나 당 6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이 중 2.4원 정도를 스트리밍업체가 갖는다. 남은 3.6원을 유통사에게 정산해주면 유통사는 수수료 20퍼센트를 떼고 약 2.1원을 제작사로 정산한다. 그 중 저작권료는 0.6원, 실연권료는 0.36원이다. 즉, 스트리밍 곡 하나의 가격은 화장실에서 손 씻고 물기 닦는 휴지 한 장 가격인 7원보다도 싸다. 뮤지션들의 몫은 이쑤시개 하나 값인 2.1원보다도 헐값이다.”

현행 문화체육관광부 음원사용료 징수규정에 따르면 디지털음원 기준 음원수익의 40%를 플랫폼업체가 갖는다. 나머지 60% 중 제작사가 44%를 갖는다. 작곡 및 작사가는 10%, 가수와 연주자의 몫은 6% 뿐이다. 이용자가 다운로드 상품을 이용하는 경우 상황은 좀 더 낫지 않을까. 한 곡당 600원의 가격에서 배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신대철은 “요즘은 스트리밍과 다운로드가 ‘묶음상품’으로 팔려 할인가로 책정된다. 때문에 할인가에서 배분이 이뤄져 제 값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에코브리드 녹음실에서 신대철 바른음원협동조합 이사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가 바음협을 만들게 된 계기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인식하면서다. “음원산업 전반에 걸쳐서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순응하거나 회피하기보다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상적인 형태가 협동조합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계기가 있다. 신대철은 “실용음악과에서 강의를 시작한지 10년 가까이 됐다”며 “어느 날 내가 사기꾼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자들 졸업하면 십중팔구 실업자가 된다. 나는 그들을 실업자로 만드는 스승이지 않은가. 죄책감이 들더라. 제자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값 싸진 음악, 그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게 신대철의 설명이다.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라이프사이클이 며칠 될 것 같나? 이틀도 안 된다. 몇 시간 동안 차트에 머물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서태지의 노래도 며칠 만에 차트에서 사라진다. 정성을 다해서 음악을 만드는 시대는 끝났다. 치고 빠지기를 통해 매출 올리고 사라지는 게 패턴이 됐다. 그러다보니 실험적인 시도는 줄어든다. 자기복제성 음악이 판친다. 이 바닥을 떠나는 가수도 많다. 이러다 옛날 홍콩영화처럼 몰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신대철을 비롯한 바음협 관계자들은 많은 뮤지션들을 만나 음원유통구조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설득했다고 한다. “의외로 음원유통구조의 문제를 모르는 뮤지션들이 많더라. 막상 말을 꺼내면 관심 있어 하는 경우가 많다. 이승환이나 이승철같은 분들도 조합에 대해 궁금해 하더라. 스타들을 위한 설명회도 열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21일 기준 바음협의 조합원은 1496명이다. 이 중 15%~20% 정도가 뮤지션이라고 한다. 신대철은 “제대로 시작도 못했는데 이 정도 모인 것이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조합원 중에는 남궁연, 리아, 가리온의 MC메타 등 유명가수들도 있다. 신대철은 “뮤지션들이 보통 잘 안 모인다. 단합도 잘 안 된다”면서 “그래도 다들 힘겹게 살아가는 상황에서 협동조합 만들어서 함께 극복하자고 제안하니까 동의해 준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창립 이후 바음협의 활동이 뜸했던 이유를 물었다. “뜻하지 않게 불행한 일이 터졌다.” 신대철은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의 얘기를 꺼냈다. “뮤지션 토론회나 설명회 같은 행사도 지난해 시작하려 했다. 해철이의 주도로 말이다. 해철이가 유명 뮤지션들을 만나고 설득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창립총회 때 축사도 해철이가 했다. 그러다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됐다. 심적으로 힘들었다. 애도기간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지금에서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날 신해철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신대철은 애수에 젖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곤 했다.

   
신대철 바른음악협동조합 이사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바음협은 ‘자체적인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신대철은 “기존의 플랫폼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는 공정한 플랫폼을 만들 것이다. 그곳에서 지금과 같은 수익배분 문제를 바로잡을 것이고 스트리밍업체와 이해관계가 얽힌 제작사의 음반을 메인화면에 걸어놓는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구체적인 얘기를 할 수 없다. 시장에 뛰어드는 일이라 보니 내 패를 경쟁사들 보는 앞에서 깔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성공할 수 있을까. 새로운 플랫폼이 어떤 모델이 되든 스트리밍보다 구매중심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음악을 제 값에 구매하는 일은 ‘인식전환’을 필요로 한다. 신대철은 “어렵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싸이월드가 유행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도토리6개(600원)를 주고 음악을 구입했다. 최근 소비패턴이 변하기는 했지만 가능성이 있다. ‘카카오뮤직’의 경우 구입시스템인데 이용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신대철은 바음협이 음원수익배분 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뮤지션들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원한다. 신대철은 한 래퍼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주 뮤지션 토론회에서 ‘랩은 작곡이냐 작사냐’라고 물은 래퍼가 있다. 이 질문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랩은 작사로만 인정된다. 저작권법이 만들어진 게 꽤 오래 됐다. 그때는 랩으로만 이뤄진 곡이 없었다. 이런 의견을 모아 저작권법 개정을 위한 목소리도 낼 것이다.”

주요음원사이트는 대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과 싸우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신대철은 머뭇거림 없이 이렇게 답했다. “(음원이 제 값을 못 받는) 지금보다 더 힘들 수 있나.”

   
신대철 바른음원협동조합 이사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인터뷰 도중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상대는 약속을 잡고 싶어했다. 신대철은 “다음주 월요일까지 일정이 꽉 찼다. 그 다음에 봐야한다”고 말했다. 통화가 끝나고 그에게 물었다. 음악하면서 바음협 이사장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 바쁘지 않냐고. 신대철은 이렇게 답했다.

“일정이 잡힌 공연은 하나 뿐이다. 이상하게 요즘 시나위는 공연에 잘 안 불러주더라. 대신 특강, 세미나, 토론회 요청이 쇄도한다. 직업이 비뀐 것 같다. 어차피 칼을 뽑았기 때문에 개의치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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