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조선일보‧한겨레가 민주화 이후 대통령 선거보도에서 특정 후보를 대변하는 정파적 보도 비율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전 조선일보 기자)와 안수찬 한겨레 기자, 박성호 전 MBC 기자(이하 고려대 언론학과 박사과정)는 학회지 <방송문화연구> 최근호에서 1992년 대선 이후 20년간 조선일보‧중앙일보‧ 한겨레 3개 신문의 선거보도를 분석했다. 대선보도를 통시적으로 살펴본 첫 연구결과다. 

연구팀은 대통령선거일 6주 전부터 종합면 6개 면을 중심으로 모두 1007건의 기사를 분석했다. 미국 PEJ(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가 제시한 고급기사 기준을 근거로 대선기사 품질을 구분했다. 연구팀은 “최근에 이를수록 복합적 관점의 기사가 현저히 줄고 단일 관점 기사가 급증해 신문의 정파성이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사의 공공성을 분석한 결과 대결 및 갈등을 강조하는 전략프레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밝혔다. 

<대통령 선거보도의 기사품질, 심층성, 공공성의 변화>란 제목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조선‧중앙‧한겨레 세 신문 모두 극히 적은 수의 투명취재원을 사용했다. 신문별 평균 중앙일보 2.3개, 조선일보 2.1개, 한겨레 2.0개였다. 복합적 관점의 기사비율을 보면 조선일보는 1992년 77.8%로 가장 비율이 높았으나 2012년에는 14.3%로 세 신문 중 가장 낮았다. 낙폭은 무려 63.5%였다. 한겨레는 2002년 63.2%로 제일 높았으나 2012년 27%로 하락했다. 중앙일보는 2012년 40.4%로 3사 중 제일 높았다.

   
▲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정철운 기자
 

연구팀은 투명취재원수, 이해당사자 수, 관점제시 양태를 통해 고급기사 비율의 변화를 추적했다. 투명취재원 4개 이상, 이해당사자 4개 이상, 복합적 관점 제시 등을 모두 충족하는 고급기사 비율을 계산한 결과 세 신문 모두 1992년에는 10%대였으나 2012년 대선의 경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는 고급기사가 없었으며 한겨레도 1건에 불과했다. 대신 세 신문 모두 단일 관점 기사의 증가세를 보였다. 2012년 대선의 경우 단일관점 기사는 조선일보 60.8%, 한겨레 55.8%, 중앙일보 34%였다. 1992년 대선 당시에는 조선일보가 18.5%, 중앙일보가 16.1%, 한겨레 30.8%였다. 

심층성이 높은 기획기사의 경우 중앙일보는 2007년과 2012년 다소 상승해 10%대를 유지했으나 조선일보는 2012년 2%대로 급락했으며 한겨레도 7~9% 수준이었다. 대선 기사에는 엘리트 취재원의 직접 인용구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일반시민의 직접 인용구는 거의 없었다. 엘리트 취재원의 직접인용구 중 상당수는 후보자 직접 인용구였다. 전략 프레임의 경우 중앙 74%, 조선 67.9%, 한겨레 65.8% 순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1992년부터 2012년까지 조선‧중앙‧한겨레의 대선 기사는 품질은 물론 심층성과 공공성 차원에서 상당히 미흡했다”며 “국내 주요 3개 신문은 약 2명의 투명 취재원과 3~4명의 이해당사자를 동원해 대선 기사를 작성하며, 대선 기사의 대다수는 후보자의 동정이나 유세, 상대방 공격 등 전략 프레임으로 구성된 이벤트 기사로서 엘리트 취재원의 의견이 압도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관점도 단일했다”고 평가했다. 

   
▲ 기사당 이해당사자 수. ⓒ방송문화연구
 
   
▲ 복합적 관점 기사의 비율. ⓒ방송문화연구
 
   
▲ 고급기사의 비율. ⓒ방송문화연구
 

연구팀은 “대선기사는 선거 공약이나 정책 등 이슈 프레임으로 구성하지 않고, 해설이나 기획 같은 깊이 있는 보도를 하지 않았고, 시민의 의견을 거의 인용하지 않았으며, 복합적 관점으로 보도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고 덧붙였다. 세 신문의 대선 기사에서 고급 기사의 비율은 신문별로 3~4%였는데, 이는 국내 10개 종합일간지 1면 기사의 고급기사 비율(8.1%)의 절반수준이었으며 미국 주요 16개 신문 1면의 고급기사 비율(33%)과 차이를 보였다는 게 연구팀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신문의 정파적 보도경향은 강해졌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18대 대선보도가 한창이던 2012년 11월 30일과 12월 4일자 대선 관련기사 199건을 분석한 결과 조선일보는 박근혜 후보가 34.2%의 수혜율을 기록한 반면, 한겨레는 문재인 후보가 31.6%의 수혜율을 나타냈다. 조선과 한겨레가 양쪽 진영을 대표해 보도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고려대 연구팀은 “국내 신문이 정파성을 덜어내고 높은 품질의 고급 기사를 보도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선거 판세로 보아 여야 정권 교체가 유력할수록, 여야 간 정권교체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정파적 지향이 높은 매체일수록 특정 대선 시기의 관련 기사량이 늘어났다”고 전하며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자신의 정파적 보도를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에 대해서는 “세 신문 가운데 복합적 관점 기사 비율이 가장 높고 단일 관점의 기사 비율은 가장 낮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중도 신문이라는 자칭이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 미디어오늘 2012년 12월 12일자 기사.
 

대선보도의 퇴행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연구팀은 ▶출입처 중심, 정당 및 정치인 중심의 취재보도 관행 ▶주요 신문이 시장적 판단에 따라 정치적 충성 독자에게 매달리는 전략 ▶정치인과 언론인의 동조화가 강화되어 시민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노력이 옅어진 점 ▶언론사 간 경쟁이 극심해지며 기사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투자 대신 속보 중심 단편 보도에 주력하게 된 점을 대선보도의 구조적 문제로 꼽았다.

연구팀은 “상당수의 해설기사의 경우도 한정된 취재원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작성한 기자의 주관적 서술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 뒤 “현재 선거보도는 후보자의 입만 바라보고, 그 발언을 또 다른 정치 엘리트의 관점으로 걸러내서 전달하는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이들은 “후보자나 엘리트의 발언을 시민의 관점으로 걸러내고, 시민의 의견이 기사에 더 많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며 공공저널리즘의 복원을 당부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인상적으로 알고 있던 신문사의 정파적 경향이 데이터로 나타난 것이 성과”라고 전한 뒤 “1990년대 신문사가 증면을 하고 정치기사가 늘어나면서 기사가 잘게 쪼개졌다. 신문 전체의 균형성은 과거와 비슷할지 몰라도 개별 기사에서는 야당발 기사, 여당발 기사 같은 식으로 정파성이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여당출입과 야당출입 기자들간의 협업이 부족한 점도 정파적 보도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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