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퍼스트’. 언제부턴가 이 표현이 언론계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적지 않은 언론사들이 디지털 전략을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독자’와 ‘신뢰’를 잃은 우리 언론에 ‘디지털 퍼스트’는 위기를 타개할 구원투수처럼 인식됐기 때문이다.

‘디지털퍼스트’의 진앙지는 미국이다.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은 디지털 형식에 특화한 ‘디지털스토리텔링’ 혹은 ‘인터렉티브’ 기사의 상징이 됐다. 기사의 형식 뿐 아니라 ‘큐레이터’, ‘해설자’ 등 기자 역할의 변화도 요구됐다. 버즈피드는 ‘큐레이팅’의 성공사례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미국의 언론인들이 펴낸 책이다. 저자인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도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기자의 역할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동시에 매우 중요한 사실을 짚는다. “앞으로도 살아남으려면 저널리즘은 문화와 정치, 세상의 흐름과 기술의 변화를 반영해 표현방식을 적응시켜나가야 한다. 그러나 저널리즘은 변해도 변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 책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 지음. 이재경 옮김.
 

변화해선 안 되는 것은 바로 ‘기본원칙’이다. 변화를 요구받는 디지털시대에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외려 ‘기본’이 중요하다고 밝힌다. 저자를 비롯해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언론인 위원회’는 오랜 연구와 논의 끝에 다음과 같은 10대 원칙을 발표했다. 

1. 저널리즘의 첫번째 의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다.
2.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다.
3.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다.
4. 기자들은 그들이 취재하는 대상으로부터 반드시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 
5. 기자들은 반드시 권력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자로 봉사해야 한다. 
6. 저널리즘은 반드시 공공의 비판과 타협을 위한 포럼을 제공해야 한다.
7. 저널리즘은 반드시 최선을 다해 시민들이 중요한 사안들을 흥미롭게 그들의 삶과 관련 있는 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 
8. 저널리즘은 뉴스를 포괄적이면서도, 비중에 맞게 다뤄야 한다. 
9. 기자들은 그들의 개인적 양심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10. 시민들도 뉴스에 대해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10대 원칙’ 중 ‘객관성’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책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자는 객관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객관적일 수 있다. 그러니까 열쇠는 이 직업의 규율에 있다. 목적에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100% 객관적일 수 없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책은 그렇기 때문에 객관이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고 밝힌다. 대신 기자가 취재할 때 사용하는 방법은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또 “공정성과 균형성을 포함해, 상당히 많은 생각들이 사실은 지나치게 애매해서 저널리즘이라는 전문직을 위한 근본적인 요소에 포함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다’. 책에서 밝힌 두 번째 원칙이다. 이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으로부터 외압을 받는 일이 일상이 된 우리 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번째 원칙의 중요성에 관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뉴스를 취재하는 사람들은 다른 회사의 고용자들과 다르다. 그들은 때로 자기 고용주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뛰어 넘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그리고 바로 이 의무감이 고용주가 재정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고용주의 이해관계를 뛰어 넘는 것이 언론에 ‘재정적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책은 ‘아돌프 옥스’의 사례를 언급한다. 옥스는 1896년 뉴욕타임스를 사들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옥스는 그 시기 팽배했던 ‘황색저널리즘’에 독자들이 지쳐있다고 확신했다. 옥스가 발행인으로 첫 신문을 낼때 옥스는 신문에 이렇게 썼다. 
 
“불편부당하게, 두려움도 호의도 없이 어떠한 정당이나 종파 이익도 개입시키지 않고 전달하겠다.” 실제 옥스는 이 선언을 실천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자 애독자들이 늘어났고, 뉴욕타임스의 재정문제도 해결 됐다. 오늘날 뉴욕타임스가 오늘날 세계적 신문이 될 수 있었던 원천이 옥스의 모델이라고 책은 평가한다. “옥스의 모델은 정치나 눈앞의 재정적 이익이 아니라 독자를 가장 우선시하는 생각으로 사업 하는 것이 최선의 장기 재정 전략”이라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1차적인 목적은 시민들이 자유로울 수 있고, 그들이 자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이 10대 원칙을 설명하면서 여러 차례 강조한 저널리즘의 1차적인 목적이다. 앞서 언급한 두 번째 원칙처럼 시민과 언론이 밀접한 관계임을 언급하는 표현이다.

성공적인 ‘디지털 퍼스트’는 어쩌면 화려한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참신한 시도, 새로운 역할에 대한 지나친 강박이 어쩌면 저널리즘을 기본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가능성도 있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우리 언론에게 ‘위기’일수록 ‘기본’이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그 중심에 ‘시민’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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