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액트오브킬링>(The act of killing)은 최초로 피해자의 시선이 아닌 가해자의 시선에서 학살을 그린 새로운 관점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대량학살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시선으로 살인을 재연하는 모습을 담았다. 자신들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살인했는지 무용담처럼 얘기하는 장면들이 담겨있다. 이 영화는 새로운 관점 덕에 2014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등 70여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고, 타임지나 뉴욕타임스에서 최고 다큐멘터리 영화로 선정하는 등 수많은 영광을 휩쓸었다.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지난 2001년 북수마트라 농장 노동자들이 당시 불법이던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을 영화로 남기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갔다. 하지만 농장 회사가 ‘판차실라 청년단’이라는 무장단체를 고용해 탄압을 가하자 노동자들은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인도네시아는 1965년 군부쿠데타 이후 현재까지 그들이 장기집권하고 있다.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노동조합, 지식인 등은 공산당과 엮어 죽어나가고 있다. 살인은 대부분 준 군사단체인 판차실라 청년단에 의해 벌어졌다.  

감독은 학살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입을 닫았다. 오히려 카메라 앞에 선 것은 가해자들이었다. 감독이 만난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살인을 재연하며 영화를 찍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액트오브킬링>은 인도네시아 군부독재정권 친위 무장단체 ‘판차실라 청년단’이자 국민적 영웅인 ‘안와르콩고’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군부정권 부역자들이 영화를 찍는 모습을 옆에서 관찰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 영화 <액트오브킬링> 포스터.
 

인도네시아는 가해자들이 군부쿠데타 이후 한 번도 권력을 놓쳐본 적이 없어 처벌을 받거나 국민들에게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찍는 카메라 앞에서 ‘처음엔 공산당원들을 때려서 죽였지만 피가 많이 튀고 비린내가 나서 나중에는 전선으로 목을 졸라 죽이는 방법을 고안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안와르콩고를 비롯한 무장단체 판차실라 청년단의 간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며 여성 캐디에게 성희롱을 하거나, ‘민주주의가 과잉돼 있으면 안 된다’는 식의 발언을 카메라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했다. 정치권이 부패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장면도 나온다. 안와르의 후배인 헤르만이라는 자가 의원직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는데 유권자들은 선물(뇌물)을 요구하고 헤르만은 당선 뒤에 주겠다고 거짓말한다. 

학살 가해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 죽이는 과정을 재연하면서 피해자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 부분이 영화의 핵심이다. 안와르콩고는 자신의 목에 전선이 잠기는 고문연기를 하다가 처음 피해자의 입장에 처한다. 그때 그는 영화 촬영을 중단하며 괴로움을 느낀다. 안와르는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다시 보며 “정말 내가 죄를 지은 걸까?”라고 말한다. 인간이 상대방 입장에 처해보기 전에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안와르는 1965년에 있었던 대학살 이후 한 번도 자신의 살인 행위가 죄가 되는지 몰랐던 것이다. 처벌이 없으면 죄가 성립될 수 없다. 야생 정글과 같이 강자의 승리만이 반복된 사회에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 영화 <액트오브킬링>의 한장면. 주인공 안와르콩고(오른쪽)가 살인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안와르는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본 뒤 살인 장소였던 건물 옥상에 오른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얼마나 끔찍했던 가에 대해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괴성을 지르고 구토를 하며 괴로워하지만 안와르는 그럼에도 “공산주의자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조슈아 감독은 안와르의 분열적인 모습이 나타난 이 장면을 위해 159분이라는 러닝타임을 가해자들의 잔혹성과 당당함으로 채워넣었다. 다소 단조로운 구성이지만 가해자들의 머릿속으로 들어 가보는 경험은 이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충격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엔딩 크레딧 장면이다. 영화 제작자들의 이름이 나오다가 갑자기 ‘anonymous’(익명)가 계속 등장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참여했던 인도네시아인들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면 혹시 불이익이 될까 두려워 익명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힘없는 국민들이 숨어야 하고 학살자들이 폭력과 강간의 경험을 자랑스럽게 카메라에 담은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감독이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을 해 새로운 관점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논쟁거리는 있다. 우리가 가해자의 관점까지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가해자들이 밤마다 악몽을 꾸는 모습 등을 보여주는 장면만으로 인간적인 면을 들여다봤다고 영화의 윤리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또한 가해자들의 잔혹성만으로 학살의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질 수 있다. 실제 인도네시아 군부 뒤에는 공산세력의 확산을 막으려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동조 내지는 방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몇몇 여성들이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다시 그 장면으로 끝이 난다. 영화 내내 학살과 고문 장면이 나오지만 가해자들은 끝까지 자신의 행위를 옹호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겐 더 없이 슬픈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액트오브킬링>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 우리가 쉽게 잊을 수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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