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만들어 왔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의 아픈 곳을 긁어주는 게 내 소임이다. 그것 때문에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았고, MBC에 다닌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언론인으로서 존엄이 훼손되고 자긍심이 짓밟히는 현실이 계속돼선 안 된다. 언론인이 처참하게 배제되고, 본연의 기능을 못하는 사회는 참혹하고 부끄러운 사회다.” 

담담한 어조로 한학수 MBC PD는 말을 이어갔다. 9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재판정에서 MBC가 언론노조 MBC본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이 열렸다. 한학수 PD는 피고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MBC는 지난 2012년, 그해 170일 파업이 불법이라며 MBC본부를 상대로 195억원 손배소를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월 “노조 파업은 공정방송 실현하자는 구체적 조치를 협의하기 위한 요구로서 목적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MBC본부 손을 들어줬다. 이날 열린 변론기일은 MBC가 항소한 것에 따른 재판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한학수 PD는 김재철 사장 부임 이후부터 현재까지 MBC 제작 자율성이 위축되고 있다는 점, 제작진들이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비제작부서로의 좌천, 유배되고 있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1년 윤길용 당시 시사교양국장의 취재 중단 지시에 반발했다가 비제작부서 ‘경인지사’로 강제 발령을 받았다. 법원이 전보발령의 부당성을 인정했지만, 한 PD는 지금도 신사업개발센터라는 비제작부서에 소속돼 있다. MBC는 최근 그에게 상암동 신사옥 앞에 설치된 ‘스케이트장’ 관리를 맡기려 했다. ‘황우석 사태’ 진실을 파헤친 명PD에 대한 치졸한 보복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MBC는 이 계획을 철회했다.

   

▲ 한학수 MBC PD. ⓒ 이명익 시사IN 기자

 

 

한 PD는 “내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못하게 하고, (비제작부서에서) 수원 왕갈비 축제를 기획하고, MBC 아카데미에 가서 대학 초년생이 듣는 교양과목을 배워야 했다”며 “MBC에서 파업에 참여하고 공정방송을 요구했던 저널리스트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 PD는 “제대로 된 사회라면, 저널리스트가 양심에 따라 보도와 방송을 제작한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이는 근대국가와 법치주의 근간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원고대리인은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MBC 경영에 큰 차질을 빚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사 조치는 경영진의 권한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이에 대해 한 PD는 “경인지사나 신사업개발센터의 필요성을 부인하려는 게 아니”라며 “다만 PD나 기자가 사업부서로 직종이 변경될 때, 회사가 사규에 따라 구성원들을 얼마나 설득을 하고, 노력을 했는지 그것에 대한 타당성에 문제 제기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MBC 측 증인으로 출석한 노혁진 편성국장은 일부 언론을 폄훼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피고대리인 신인수 변호사가 “2012년 노조의 파업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노 국장 발언에 대해 파업 가능성을 높게 본 미디어오늘, 기자협회보 등 미디어전문지 기사로 반박하자, 노 국장이 본지에 대해 “언론노조가 발행하는” 신문이라며 ‘MBC본부와 줄곧 논조가 일치하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이다. 이에 신 변호사는 “미디어오늘은 언론노조에서 독립된 언론”이라고 반박했다.

노 국장은 “파업 이전 경쟁력 1등인 회사가 파업으로 인해 경쟁력이 하락했다”며 “타 방송사 시청률과 광고는 상승했다. MBC 시청률 등이 하락한 90% 이상의 이유는 파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음 변론기일은 오는 23일 열린다. MBC본부 측 증인으로 최일구 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MBC 측 증인으로 김현종 경인지사장이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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