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호 실종자·유가족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고장운 위원장은 아직 보도자료도 작성할 줄 모른다. 지난해 12월 1일, 오룡호가 러시아 서배링해에서 침몰한지 38일이 지났지만 아직 시민단체나 변호사들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오룡호 승선원 60명 가운데 지금까지 러시아 감독관 등 외국인 7명만 구조되고 27명이 사망했으며 26명은 실종상태다. 탑승 한국인 11명 중 시신은 6구가 발견된 채 지난해 12월 31일 러시아 정부의 해역 입어활동 금지로 수색이 중단됐다. 

고장운 위원장의 사촌 동생 마대성(57)씨는 사조산업 계약직 직원이었다. 고기를 잡으면 다른 고기와 명태를 구분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12월 1일 오후, 오룡호 선원들이 잡은 명태를 처리하던 와중에 많은 양의 바닷물이 처리실로 유입됐다. 선체가 서서히 기울며 점점 많은 바닷물이 유입됐고 갑판에 뗏목을 준비해 탈출한 러시아 감독관 1명과 필리핀 선원 3명, 인도네시아 선원 3명만 살아남았다. 마씨는 실종된 상태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에서 지난해 12월 26일 발표한 중간 조서결과에 따르면 오룡호의 침몰원인은 ‘어획물 분리실 덮개 개방’탓이다. 

   
▲ 오룡호 침몰 지점인 러시아 서베링해. (사진 = MBN 뉴스화면 갈무리)
 

사고 당일 저녁 9시경, 고 위원장은 오룡호 침몰 소식을 경찰로부터 들었다. 미혼인 마씨에게 함께 사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 위원장은 “원양어선을 타는 사람들은 외국에 오래 나가 있으니까 미혼이 많다”며 “40~50대 미혼 선원이 5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부산에 모인 오룡호 선원 가족들은 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사고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2일, 501오룡호 실종자·유가족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고장운 위원장을 추대했다. 고 위원장은 “할 사람이 없어서 맡게 됐다”며 “가족들이 평범한 소시민이고 나이든 분들도 많아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비대위에는 위원장 말고 어떠한 직책도 없다. 언론을 상대해야 할 대변인도 없이 고 위원장이 혼자 가족들의 의견을 들어 인터뷰를 하고 정부 대응을 촉구했다. 비대위는 사조산업 부산지사 건물 4층 한쪽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3층에는 사조산업 사무실이 있었고 2층에는 해경, 부산시, 외교부 등에서 온 공무원들이 머무는 연락사무소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소통이 되진 않았다. 

러시아 정부는 한국 정부에 지난해 말까지만 수색작업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고 위원장은 “러시아 입장에 대해 외교부가 나서서 수색을 더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우리가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외교부가 거부하고 있다”며 “되레 우리에게 ‘현재 구조하러간 배에 선원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 비판했다. 

   
▲ 오룡호 실종자·유가족 비상대책위원회 고장운 위원장. (사진 = 장슬기 기자)
 

우리 정부는 5000톤급 경비함인 ‘5001함 삼봉호’와 해군 P-3 해상 초계기 2대를 서베링해에 보냈다. 이에 고 위원장은 “동해바다 지키는 배를 러시아에 보내서 무슨 구조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수색을 종료하고 현재까지 발견된 한국인 시신 6구를 싣고 오는 11일 부산항에 들어오겠다는데 우리는 한국인 실종자 11명을 다 찾기 전에는 들어오지 말라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우리 입장을 널리 알리고 싶은데 유인물을 만들 줄 아는 사람도 없고 피켓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며 “11일에 시신 6구가 들어오면 그분들의 유가족들은 이미 한 달 넘은 투쟁을 끝내고 회사와 합의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유가족들도 쪼개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가족들은 해결책 없는 장기간 농성으로 아픈 사람들도 나타나며 지쳐갔다. 세월호 사건을 돕고 있다는 시민단체에도 연락을 해봤지만 업무가 바빠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고 위원장은 “사조산업이 보도자료를 통해 보상금을 3억 넘게 제시했다고 하는데 회사에서 제시하는 금액은 3000만원 남짓이고 나머지는 선원들이 개인적으로 가입했던 보험회사에서 나오는 돈”이라며 “회사에서는 유가족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려 한명씩 협상을 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정부가 수색을 중단하고 사조산업에서도 별 반응이 없어 할 수 없이 사조산업 본사가 있는 서울로 올라오기로 결심했다. 지난 5일, 오룡호 가족 30여명은 서울 사조산업 본사 3층에서 수색 재개와 보상금 협상을 요청하기 위해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고 위원장은 “어제도 가족 중 한명이 병원에 실려갔고, 한 달간 진행된 농성에 몸이 망가져 서울로 올라오지 못한 가족들도 있다”며 “일정이 없는 오늘(6일) 오후 대부분 가족들은 주변 사우나로 쉬러 갔다”고 말했다. 농성장에는 마땅히 씻을 공간조차 없었다.

   
지난해 12월 1일 러시아 베링해에서 조업 중에 침몰(60명 중 구조 7명, 사망 27명, 실종 26명)한 오룡호 사망·실종자 가족들이 5일부터 부산에서 상경해 사조산업의 수색 중단과 보상안에 항의하는 무기한 투쟁에 들어갔다. 사망·실종자 가족 비상대책위원회는 위로비로 3500만 원을 제시한 사조산업을 규탄하며 책임있는 보상안을 촉구했으며, 기약 없이 중단된 수색작업을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6일 오전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가족들이 외교통상부 고위관계자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고위원장은 앞으로 국회의원, 시민단체와 접촉할 계획이다. 고 위원장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림위) 국회의원실에 도움을 요청하는 문서를 팩스로 넣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연락을 할 계획이다. 고 위원장은 “국회의원들은 지난달에도 예산안 처리 때문에 바쁘다고 하고 지금도 계속 며칠만 기다리자고 한다”며 “그동안 기자들도 전화와서 필요한 발언만 몇 개 받아가거나 시신 발견되면 몇 구인지 물어보기만 했다”며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실망감도 드러냈다.   

비대위 가족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시신 6구가 부산 감축항에 들어오기로 한 11일에도 서울에 있을 계획이다. 고 위원장은 “부산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해 서울로 왔기 때문에 부산에 갈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세월호 사건은 특별법을 촉구하자는 국민들의 지지도 많고 언론에서도 많이 이슈가 됐는데 오룡호는 국민들이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오룡호 사건도 세월호 사건 못지않게 대형 참사라는 것을 정부와 국민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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