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는 것은 작은 죄고,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은 큰 죄다.”

정조 이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 가운데 ‘추서춘기’(鄒書春記)에 나오는 글귀다. 지난 2014년 이 글귀에 부끄럽지 않을 기자가 있을까.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기자들은 ‘기레기’라는 참담한 평가를 받았다. 따라가기 바빴다. 받아쓰기에 매몰됐다. ‘하이에나’처럼 더 자극적 소재를 찾아 보도했다. 권력 앞에서는 무뎠다. 무엇보다 말해야 할 때 말하지 못했다.

한국 저널리즘 퇴행을 우려하는 시대 속에도 기자는 있다. 반성하는 기자가 있다.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 특별위원회는 지난해 6월 재난보도 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세월호 보도를 통해 재난보도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찾으려 했다. 이들이 낸 연구보고서 <세월호 보도…저널리즘의 침몰>(김호성, 김성한, 설치환, 심영구, 엄지인, 이중우, 전준형, 조승호 저)은 그 산물이다. 대한민국 방송저널리즘이 두 번 다시 침몰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이다.

“몇몇 취재진은 실종자 가족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촬영을 하기도 했다. 슬픈 영화를 촬영하듯이 퉁퉁 불고 파랗게 변한 시신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P.75) 

보고서에 쓰인, 당시 취재를 담당했던 영상기자의 현장 묘사 일부다. 그랬다. 영상기자는 영화 촬영자였고, 펜 기자는 소설가였다. 자기는 아니래도 한국 기자가 딛고 있는 진창의 저널리즘은 외면할 수 없다. 보고서는 이런 속보 경쟁과 자극적 보도가 양산되는 까닭을 △‘물 먹는 것’에 대한 공포 △지나치게 많은 매체로 인한 과열 경쟁 △진부한 문법처럼 돼 버린 자극적 스타일의 리포트 제작 △현장이 아닌 데스크 중심의 취재 지시 등으로 분석했다. 

   
▲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 특별위원회 著, ‘세월호 보도…저널리즘의 침몰’
 

이 보고서는 세월호 참사 보도 과정에서 잘못된 방송 뉴스를 5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사실 확인 부족·받아쓰기 보도 △비윤리적·자극적·선정적 보도 △권력 편향적 보도 △본질 희석식 보도 △누락·축소 보도 등이다.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보는 받아쓰기 관행이 부른 참사였고,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 현장을 방문했을 때 ‘가족 항의’를 편집한 KBS 보도는 권력에 순치된 결과였다. 

보고서는 외국 사례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방향을 제시한다. 미국은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NTSB(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가 재난사고 현장을 통제한다. 언론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재난사고 현장을 보존하려는 의도다. 이 통제선은 어느 언론사라도 접근할 수 없다. 제한받는 알 권리는 당국의 정기적이고 정확한 브리핑과 영상 및 사진의 제공을 통해 보충된다. 언론사 존폐를 좌우하는 ‘오보’에 대한 기자의 경각심이 만든 질서다. 

영국BBC에서 생생한 사진이나 영상을 사용하려면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인터뷰하는 행위는 지양한다. 철저한 저널리즘 원칙 엄수가 답이다. 

보고서는 기자들의 고민도 담았다. 취재 후기와 반성문을 통해 현장 기자들은 고백한다. 진솔한 고백은 진창을 딛고 있어도 눈은 하늘을 봐야 한다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이 고민이 무너지는 저널리즘을 지탱하는 주춧돌이길 바란다.

“이번 사고를 통해서 기존의 언론이 얼마나 신뢰를 잃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사고 첫날 실종자 가족들이 방송 뉴스를 보면서 분노했다. 그들은 뉴스로 위로받길 원했던 것이 아니다. 사실이 확인된 뉴스를 원했을 뿐이다.”(하륭 SBS 영상취재기자)

“희생자 가족에게 ‘기레기다’ ‘보도 똑바로 해라’ 욕을 듣고 맞고 하는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다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가 부끄럽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10kg가 넘는 무게를 어깨에 메고 견디는 이유는 우린 사실을 기록하고 전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OOO KBS 4년차 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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