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 정책으로 2009년 도입된 영어회화전문강사(영어전문강사)들의 신분이 흔들거리고 있다. 교원 직종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을 비롯해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임금이 동결되는 등 문제점이 지속되고 있다. 영어전문강사의 소속이 교육청에서 학교장으로 이관돼 신분은 더욱 불안해지고 근무조건도 학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학교장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영어전문강사는 기간제 교사처럼 자신의 수업시간에만 근무하지 않는다. 일반교사와 같이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한다. 이들은 담임을 맡을 수 없고 영어수업만 맡을 수 있다. 지역에 따라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인 나이스(NEIS)에 접속 여부도 차이가 나 영어전문강사마다 업무도 다르다. 영어전문강사에게 나이스에 접속하도록 해놓은 학교에서는 영어 수업과 관련없는 행정업무가 부여된다. 나이스에 접속하지 않은 학교도 문제다. 일반 교사와 근무시간은 비슷하지만 업무량이 적으니 주변 교사들의 눈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전문강사는 현재 한 학교에 4년까지 머무를 수 있는데 계약은 1년씩 4번 맺고 있다. 매년 학교장에게 재계약을 위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학교에 따라서는 함께 영어수업을 위해 평소에 의논하던 동료교사에게 재계약을 위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김 모 강사는 “나보다 연차가 어린 동료교사에게 내 자리를 위해 면접 및 수업시연을 하는 것은 인권유린”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임금은 매년 오르지 않고 있다. 2009년 영어전문강사제도 도입이후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 임금이 오른 것이 전부다. 올해 임금도 오르지 않았다. 또한 이들은 교육법상 교원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경기도에서 근무 중인 김 모 강사는 “업무는 교사인데 대우는 행정직원”이라며 “교사업무를 하지만 성과급·교재연구비·복지카드·호봉인정 등 모든 혜택에서는 제외된다”고 말했다. 

방학 중에는 무보수로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에서 근무 중인 강 모 강사는 “방학 중에 영어캠프를 진행하게 돼 있는데 여름에 2주, 겨울에 3주를 수당도 받지 못한 채 일했다”며 “오전 중에 수업이 끝나는데 일부 학교의 경우 학교장이 오후 근무까지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강 강사는 “지금 일하는 학교는 구성원들의 배려로 오전에 퇴근할 수 있지만 학교장에 따라 여름방학에 에어컨도 켜주지 않고 오후에 일하게 하는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영어전문강사제도는 도입 때부터 비판을 많이 받았던 정책이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영어전문강사를 한 학교에서 4년까지 임용할 수 있다는 정책은 비정규직 차별철폐가 아닌 비정규직 연장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이명박 정부가 싼 일자리 창출로 교육현장을 교란시킨다”며 “교육의 전문성을 위해 영어전문강사가 아닌 정규 영어교사로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드러나자 국가인원위원회는 지난 2013년 8월, 교육부에 영어전문강사의 무기계약직 전환 방안을 마련하고, 고용주체를 국가와 광역자치단체로 변경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할 것 등의 내용으로 ‘영어회화 전문강사의 고용안정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교육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교육부 교육정책실 영어교육팀 박병태 팀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2조 2항에 따르면 영어전문강사 고용주체는 학교장이며 현실적으로 지휘·감독을 할 수 있는 학교장이 고용주체가 되는 것이 맞다”며 “영어전문강사들의 고용불안 문제는 있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큰 흐름이기 때문에 학교장이라도 해고를 마음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경력인정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불합리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관련 예산이 부족해 인권위의 권고를 따르거나 임금을 올려주는 방안 등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박 팀장은 “한 학교에서 4년 근무를 마치고 다른 학교에 채용되더라도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지만 영어회화를 전문으로 준비하는 교사 임용준비생들과도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풀기 예민한 문제”라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예산 마련이 쉽지 않아 당분간 해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옆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교사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박 모 교사는 “딱딱한 분위기의 교무실에 함께 앉아있는데 일이나 책임을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면하고 있는 것도 불편하다”며 “신경써주고 싶지만 교사들도 요새 업무가 많아 그럴 여유가 없어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비정규직 동료가 생기는 것은 정규직 교사들에게 또 하나의 업무부담이다. 박 교사는 “영어 원어민 강사, 지역사회전문가 등 학교 내 비정규직들은 교사들이 따로 월급이나 문서를 관리해줘야 한다”며 “싼 비용으로 학교에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업무가 늘어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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