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님. 우리가 바라는 건 하나입니다. 비정규직인 우리도 SK의 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도록 최소한 법이라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결단을 내려주세요. -SK를 사랑하는 직원 조수연.”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조합원 800여 명이 5일 SK서린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고 최태원 SK회장의 가석방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날 노조는 최태원 회장에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연하장 800장을 작성해 우체통에 넣기도 했다. 노조는 다단계 고용금지 등 SK그룹의 약속이행을 촉구하며 76일 동안 노숙농성을 벌였으며 47일 동안 전면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는 지난해 9월 30일 SK텔레콤·SK브로드밴드가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와 간담회에서 약속한 내용을 이행하라는 입장이다. 당시 SK그룹은 △원만한 노사교섭 △부당노동행위와 도급계약 강요 중단 △다단계 고용 금지 추진 △부당노동행위시 계약 해지조항 삽입 △업체 변경 시 고용 승계 △간접고용 구조의 근본적 변화 방안 장기적 검토 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지부 조합원들이 5일 집회를 열고 최태원 SK회장의 가석방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금준경 기자.
 

앞서 노조는 지난해 3월 노조설립과 동시에 △원청 직접 고용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 △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보장 △개통기사 노동자성 인정 △노동시간 단축 △휴일 및 휴가보장 △생활임금 보장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한 바 있다.

노동자들은 원청인 SK그룹이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경재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은 “지난 9월 사측이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와 우리에게 약속한 것은 한마디로 윤리경영을 실천하겠다는 뜻”이라며 “그러나 세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하나의 문제도 해결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윤리경영을 말하는 기업의 총수가 감옥에 있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지금이라도 원청이 하청과 무관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식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지부 조합원들이 5일 하성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윤리경영위원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SK서린빌딩 앞을 찾았다. 사진=금준경 기자.
 

박진숙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여성부장은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로서 받아야할 기본적인 처우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이제 와서 회사에 돌아가는 것은 무의미하다. SK가 약속을 이행하기 전까지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하성민 SK그룹 윤리경영위원장(전 SK텔레콤 대표)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하늬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은 “하성민 윤리경영위원장은 SK텔레콤 대표 시절 을지로위원회외와 간담회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 장본인”이라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는 SK윤리경영위원장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노동자들은 하성민 윤리경영위원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했으나 사측의 거부로 전달하지 못했다. 최태원 SK회장에게 보내는 800여 장의 연하장을 우체통에 넣는 것으로 집회는 마무리됐다. 노조는 오는 7일 최태원 회장의 가석방을 추진하고 있는 새누리당 당사를 찾아가 규탄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이경재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지부장. 사진=금준경 기자.
 

아래는 이경재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지부 지부장과 일문일답.

- 씨앤앰 사태가 최근 해결됐다. 브로드밴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씨앤앰 사태가 해결되는 모습이 우리 조합원들에게 기대감을 들게 한 것은 사실이다. 씨앤앰 사태 해결은 원청업체가 협력 및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져야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큰 보탬이 된다고 하기는 힘들다."

- 최태원 회장에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최태원 회장은 SK그룹의 총수다. SK계열사들이 우리의 원청인 상황에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전결권을 갖고 있다. 그러니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취지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게 아니다. 노동자로서 기본적인 처우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 노동조건이 열악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가.
"노동시간이 비정상적으로 길다. 설치기사들이 일주일에 70~80시간 일한다. 점심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임금문제도 심각하다. 임금은 100만원 후반에서 200만원 초반이지만 돈 쓸일이 많다. 인터넷 설치에 필요한 장비를 일일이 구입해야 한다. 기름값과 식비도 부담해야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임금차감이 이뤄진다."

- 차감은 어떤식으로 이뤄지는가?
"영업실적에 따른 차감, 개통 및 장애실적에 따른 차감, 장비분실에 따른 차감 등 월급이 깎일만한 사유가 많다. 무엇보다 설치기사 방문 이후 만족도를 평가하는 해피콜은 큰 부담이다. 좋은 점수를 받지 않으면 임금이 차감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는 평가항목에 ‘매우만족’보다 점수가 높은 ‘감동’이 있었다. 보통 설치기사한테 감동받는 경우는 없지 않느냐. 점수를 잘 받게 해달라고 기사가 청탁을 했는지도 묻는다. 만약 소비자가 청탁을 받았다고 답하면 설치기사의 임금이 차감된다."

-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내부에서 극한농성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올 것 같다.
"앞으로 최태원 SK회장의 가석방과 관련해 새누리당 당사에 찾아가 항의집회를 열 계획이다. 최태원 회장이 수감된 교도소 앞에서 1인 시위는 매일 하고 있다. 이 외에 좀 더 강도 높은 다음단계의 투쟁을 고민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말하긴 힘들다. 누군가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만 주목받는 상황이 안타깝다. 미리 나서서 제도적 장치를 기업이 마련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