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해킹이 발생하자 언론들이 근거도 없이 북한 해킹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이를 근거로 사이버테러 방지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해킹으로 인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고 불안을 이용해 사찰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SUNDAY 12월 28일자 <사이버 공격은 저비용 고효율…비대칭 전력 핵으로 부상>에서 지난 2007년 발생했던 유럽 에스토니아 사이버 테러 사례를 소개했다. 

   
▲ 28일자 중앙SUNDAY 기사.
 

중앙SUNDAY는 “2007년 사이버 테러를 당해 3주간 정부기관 대부분이 마비됐다”며 “보안 업계에서는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했다”고 보도했다. 중앙SUNDAY는 “2008년 조지아에서 발생한 사이버테러도 러시아 소행으로 추정됐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김영희 변호사는 “에스토니아 해킹 사건 당시 초반에 언론들이 러시아 연방보안부(FSB)를 언급했는데 실제 이 사건은 러시아계 에스토니아 대학생이 정부나 단체의 도움 없이 주도해 저지른 사건으로 드러났다”며 “중앙SUNDAY에서 러시아 정부가 배후로 의심된다는 부분까지만 보도하면서 지금 한수원 해킹에 대해서도 북한을 배후로 의심하며 연결하려고 한다”며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5일 <原電 해커, 中 선양서 200차례 접속>, TV조선은 26일 <'닮은꼴' 한수원·소니 해킹…북한 관련성 높아져>, 중앙일보는 27일 <작년 금융사 해킹한 ‘John’ 한수원 악성코드에도 등장> 등에서 한수원 해킹이 북한 소행일지 모른다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서 보도했다.

북한을 ‘사이버테러범’으로 규정한 보도는 이 뿐만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지난 24일 사설 <北-美 충돌은 사이버전쟁 대비 서두르라는 경고>에서 “북은 사이버전에선 미국과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 강국”이라며 “1990년대 초반부터 정책적으로 사이버전 인력을 6000여 명의 해커 인력으로 보유한 북한에 비해 우리의 사이버안보는 열악하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5일 <북 사이버전사 1만명…중 선양은 해외해킹 ‘전초기지’>에서 중국 내 북한 해커 근거지에 대해 사진 자료까지 첨부해 보도했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 선양 뿐 아니라 베이징, 칭다오, 광저우 등에서 5~15명 단위 소규모로 활동하고 있다.  

   
▲ 25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실린 자료.
 

매일경제도 26일 사설 <원전 해킹, 중국과 협조해 선양 뿌리 뽑아라>에서 “지난해 3월 국내방송사와 금융회사 전산망을 마비시킨 사이버 공격도 중국 IP를 이용한 북한 소행으로 지목됐지만 그때 뿌리를 뽑지 못했다”며 “한국 미국 중국이 힘을 합쳐 사이버 테러를 발본색원할 수 있도록 행동과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27일 매일경제는 <랜선 뽑는 초보적 대응 해커 조롱거리 된 한국>에서 우리 정부의 사이버 테러 방어 능력에 대해 혹평하며 “북한은 정찰총국 산하에 사이버전지도국을 중심으로 해킹과 사이버 대남 심리전을 수행 중”이라며 “최근에는 중국 현지에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등으로 위장한 해커부대도 다수 운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사이버테러가 개인의 소행일 수도 있고 실제 범인이 밝혀진 경우가 더 드물다”며 북한 소행이라고 결론을 내려 보도하는 것은 사회 전체가 통제사회로 갈 우려를 가져온다”고 비판했다. 몇몇 언론들은 해킹 사건을 ‘사이버전쟁 준비’, ‘사이버테러 방지법 제정’ 등의 논의로 연결하는 중이다. 

지난 26일 조선일보는 사설 <가스·수도·전기는 사이버 테러에 괜찮은가>에서 “이번 기회에 원전뿐만 아니라 국가 기반 시설 전반의 보안 실태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며 “국회에 계류돼 있는 사이버테러방지법을 포함해 국가적 차원의 사이버 방어망 구축 문제를 본격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서울신문도 사설 <사이버테러방지법 처리 늦출 일 아니다>에서도 “‘원전반대그룹’의 사이버 공격이 북한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며 “사이버테러방지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국가적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 26일자 서울신문 기사.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지난 28일 “사이버테러방지법으로 정부의 잘못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와 여당은 원전자료 유출사건 사태를 마치 ‘사이버테러방지법’이 없어서 생긴 일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영희 변호사도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사이버테러방지법이 사찰 강화와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은 지난해 7월 새누리당 서상기 정보위원장이 발의했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국가정보원 산하에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설치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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