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서니 5년 전 용산참사 남일당 미사가 떠오른다. 이 장소는 용산참사와 밀접하게 연결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강서 신부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순화동 재개발 지역에서 열린 성탄 거리미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순화동 재개발 지역은 철거의 흔적이 남지 않았다. 높은 펜스가 성곽처럼 둘러쳐졌고 그 위로 대형크레인들이 보였다. 이 신부는 “이곳은 용산참사 바로 1년 전 재개발이 진행됐던 곳이며, 지금 폐허로 남은 용산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지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또 순화동의 철거민들이 용산에 연대의 손길을 내밀다 희생됐다”고 말했다. 순화동 재개발 지역은 용산참사 희생자인 윤용헌씨가 운영했던 ‘미락정’이라는 음식점이 있던 곳이다. 용산참사 때 다쳐 6년 동안 수술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지석준씨가 운영했던 ‘민물장어 나루’ 역시 이 곳에 있었다.

   
▲ 천주교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25일 오전 11시 중구 순화동 1-1 재개발지역에서 거리미사를 열었다. 사진=금준경 기자.
 

 

지석준씨는 “용산과 순화라는 두 단어를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다. 순화는 내 고향같은 곳이지만 잊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씨는 “이곳에 오니 2007년, 수백명의 용역깡패가 들이닥쳐 내 가게를 비롯해 상가를 강제철거하는 모습이 떠오른다”며 “주민들과 상인들 합쳐 60~70가구가 있었는데 다 쫓겨나고 지금 1세대만 남아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씨는 가게를 강제철거 당한 후 같은 처지에 처한 용산 철거민들과 ‘연대’를 하러 떠났다. 남일당 망루에 오른 그는 참사 현장에서 옥상에서 뛰어내려 다리를 크게 다쳤다. 이후 지씨는 수술을 14번했지만 아직도 완쾌되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목발에 의지해 걷는다. 지씨는 “용산에서 다친 두 발목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아물지 못한 상처처럼 진상이 규명되지 못한 용산참사 역시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용산참사 희생자 윤용헌씨의 아내 유영숙씨는 참사로 남편을 잃었다. 유씨는 “아이들과 나는 다른 곳에서 가게를 차리자고 남편에게 말했는데 남편은 용산에 투쟁하러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씨는 “겨울이 되면 참사가 떠올라 잠을 잘 못 잔다. 특히 아이들은 참사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인지 ‘추모제’에 참석하는 것조차 꺼린다”며 “용산참사 희생자 가족 모두 그런 트라우마를 겪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 순화동 싸움을 이긴 후에 지금까지 도와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를 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신부는 이날 신자들에게 약자와의 연대를 강조했다. 이 신부는 “우리의 관심이 언제나 권력과 재물, 물질에 쏠려있기 때문에 약한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상황이 이러니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주님이 우리 옆에 와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 주변에 소외된 이웃들, 약자들과 연대하는 것이 성탄의 축복”이라고 강조했다.

임용환 신부는 “간만에 길거리에서 미사를 하니 힘이 솟는 것 같다”며 “이 땅의 모든 철거민들, 집 잃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서울과 평택을 비롯해 전국에서 투쟁 중인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밝혔다.

   
▲ 용산참사 때 다리를 다친 지석준씨(왼쪽)와 용산참사 희생자인 故 윤용헌씨의 아내 유영숙씨(오른쪽). 사진=금준경 기자.
 
   
▲ 천주교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25일 오전 연 거리 미사에서 성찬식이 진행 중이다. 사진=금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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