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1991년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7.27~2007.3.6)는 걸프전을 위성 중계하는 CNN을 두고 이와 같이 말했다. 보드리야르는 시청자가 전쟁 실체를 본 게 아니라 방송이 만든 이미지만 소비한 것이라고 고발했다.

그의 말처럼 전 세계 시청자들은 뉴스를 통해 미국을 ‘캡틴 아메리카’로 인지했다. 이라크 국민을 살상한 초강국의 폭력성은 도외시한 채. ‘거악’ 후세인 타도라는 미국의 선명한 시나리오는 TV앞에 앉은 이들에게 자연스레 각인됐다.

다소 비약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인용하면, 4월16일 세월호는 침몰하지 않았다. 사고 당일 언론이 쏟아낸 ‘세월호 전원구조’는 실재와 거리가 멀었다. MBC를 비롯한 방송사들은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쏟아냈고, 정부의 사상 최대 구조작전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본질을 망각한 언론은 사건의 진상규명 대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만 쫓았다. 언론이 ‘헛발질’을 하고 있는 사이 세월호 ‘골든타임’은 유유히 흘러만 갔다. 

   
▲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민낯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실종자 9명은 현재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진도 팽목항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모두가 함께 한 ‘죽음의 상품화’

“기자들이 지망생 시절에 갈고 닦았던 글쓰기 실력을 이제 와 뽐내는 것 같다. 마치 ‘세월호 백일장’이라도 하려는 것 같다. 마치 누가 더 많이 독자를 울릴 수 있느냐를 경쟁하듯이.”

세월호 사건을 취재해왔던 한 일간지 기자가 던진 말이었다. 세월호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보다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을 찾고, 선정적 소재에 초점을 맞춰 극적 요소를 가미했던 언론 행태를 꼬집는 얘기였다. “한국 언론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하지만, 이런 보도는 예전부터 계속돼 왔다.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서 우리나라 방송뉴스는 피해자 가족들이 관계 당국에 분통을 터뜨리거나 시신 앞에 처절하게 절규하는 장면들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50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된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보도 역시 피해자 중심이 아닌 시청자 중심 보도였고, 피해자 가족들은 생환자 중심 보도의 그늘에 가렸다. 사건 초기에는 삼풍백화점 사주나 경영진에 대한 도덕성 비판 보도, 여론 재판 등등에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는 한풀이식 보도가 이루어졌다.”(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문화과학> 2014년 가을호, ‘방송사의 세월호 참사 보도’)

이런 현상을 ‘재난의 상품화’라 규정하며 윤 교수는 “(당시 보도들이) 재난보도의 기본 원칙과는 거리가 있는 선정적 주변 이야기에 집중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만 쏠린 비난과 이후 유병언 수색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지난 보도들도 이러한 연장선에 있었던 것이다. 

2014년 세월호 보도가 과거와 다른 점도 있지 않을까.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세월호는 해경과 해수부는 물론, 재난 컨트롤타워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안”이라며 “그동안 재난 보도에서 드러난 상업성의 문제뿐 아니라 언론이 특정 정파의 유불리를 먼저 셈하는 모습을 드러냈던 게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라고 했다. 

   
▲ 보수언론은 단식 농성을 하던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사생활을 들추는 ‘흠집내기’ 보도를 쏟아냈다. TV조선과 조선일보는 김씨의 사소한 말과 행동까지 문제 삼으며 ‘순수하지 않은 반동분자’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지난 8월 단식 농성을 하는 김영오씨 모습. (사진 = 김도연 기자)
 

‘정파 상업주의’ 종편, 분열의 왕

세월호는 사실상 종편이 처음으로 마주한 재난이었다. 손석희 앵커가 이끈 JTBC 특별취재팀은 세월호 심층 보도를 통해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등 각종 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TV조선과 채널A는 무차별적으로 유병언 단독 보도를 남발했다. 

‘유대균은 치킨 마니아’, ‘유대균과 박수경 스캔들’ 등은 본질에서 한참 멀어진 뉴스들이다. 이들 방송은 사고 이후 시간이 흐르자 ‘세월호 피로감’을 운운하며 유가족을 폄훼하는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단식 농성을 하던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씨의 사생활을 들추는 ‘흠집내기’ 보도도 쏟아졌다. TV조선과 조선일보는 김씨의 사소한 말과 행동까지 문제 삼으며 ‘순수하지 않은 반동분자’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뉴욕대 사회학 교수 로드니 벤슨(Rodney Benson)이 미국 폭스TV를 평했던 말을 빌리면, 이 전투적 미디어들은 “온건주의자를 극단주의자로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극단주의자들의 믿음이 타당하다고 설득하면서 극단주의자들을 ‘더욱 심한 극단주의자’로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로 사회가 분열되는 양상을 보인 데는 이들 미디어가 한몫했다.

김 교수는 “종편은 미국의 폭스TV의 성공 전략과 유사한 방식으로 뉴스를 생산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2014년은 정파 상업주의로 무장한 종편의 활극을 통해 언론이 죽음을 비롯한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있다는 걸 과시한 한 해였다. 사회가 어찌되든 말이다. 

해수부 이주영이 아닌 KBS 길환영 ‘아웃’

세월호 국면에서 또 특기할 만한 것은 기존 방송사의 편향성이었다. 임연희(충남대대학원 언론정보학과 박사과정수료)씨의 논문 ‘세월호 참사에 대한 텔레비전 뉴스의 보도행태’에 따르면, 방송 3사가 4월16일부터 20일까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활용한 취재원은 모두 805명이었다.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179명, 22.2%)과 해군·해경, 중앙정부와 수사본부·학교(193명, 23.9%) 취재원이 가장 많았다.

임씨는 이에 대해 “방송사들이 정부 유관기관 취재원과 자료에 의존한 보도를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방송사가 재난상황에서 중앙정부와 사고대책본부 등의 발표에만 의존하면 재난에 대한 심층 분석보다 정부 입장을 그대로 받아쓰거나 대변할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사가 정부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데 주력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무차별적 오보가 쏟아진 배경이었다. 

   
▲ 길환영 KBS 사장이 지난 5월9일 오후 유가족들이 모여 있는 서울 청운동주민센터를 방문해 김시곤 KBS 보도국장 발언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김 국장의 사임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사진=강성원 기자)
 

편향 보도는 유가족의 분노로 이어졌다.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세월호 사고 폄하 발언에 분노한 유가족 100여 명은 지난 5월 KBS를 항의 방문했다. 유가족들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자 길환영 사장은 그제야 ‘사죄’했다. 사고 책임자인 이주영 해수부 장관은 그대로인데, 공영방송 사장이 해임됐다는 사실은 언론의 위상과 정권과의 관계를 일깨워준다.

MBC도 고위 간부가 유가족을 폄훼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었고, 뉴스데스크 리포트를 통해 유가족 조급증이 잠수사의 죽음을 이끌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해 사회적 논란을 낳은 바 있다. 방송이 정권에 순치되면 공공성 포기는 물론이거니와 사고 피해자와도 얼마든 직접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1년이었다.

공정언론 종말의 시대

세월호 이후에 지상파 방송사가 달라졌을까. “우리는 현장에 있었지만 현장을 취재하지 않았다”는 기자들의 반성문 이후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사고 이후에도 위기의식을 못 느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MBC 한 기자는 “그동안 (MBC에서) 세월호 관련 소식은 불방되는 게 일상”며 “아래에서 바뀌려 해도 윗선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치열하게 싸운 이들은 좌천되는 게 현실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KBS에서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길 예정인 심인보 기자도 “외면적으로 사장만 바뀌었을 뿐 모든 기자가 요구했던 편집국장 직선제나 보도위원회 강화 등을 통한 편집권 강화안은 관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위로부터 자정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내부의 공통 반응이었다.  

   
▲ ‘비선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뒤 지난 11일 청사를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방송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6곳 메인뉴스를 분석했다. 최 의원은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 보도와 관련해 종편이 지상파보다 보도량으로 3배, 시간상으로 4배 더 할애했다고 밝혔다.

“지상파의 의제 설정 기능은 완전히 실종됐다. 지상파가 더 이상 우리 사회 공론장 형성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고, 그 영향력 또한 급격히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최 의원의 주장은 방송의 추락한 위상이 2015년에도 계속될 것임을 전망케 한다. 

조은상 하위문화평론가는 “근대국가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신문과 인쇄의 역할이 컸던 까닭은 타자에 대한 연대와 공감을 가능하도록 공간과 시간을 좁혀주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라며 “지금과 같이 주류 언론이 사안의 본질을 피해가는 프레임만 반복할 경우 실재와 괴리된 언론이 그 자체로 힘을 잃게 되는 현상이 공고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4년은 종편은 물론, 공영방송도 죽음의 상품화의 주범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8개월이 지난 지금, 세월호 침몰사고는 한국 언론에 다시 묻는다. 과연 우리에게 세월호는 진정 침몰한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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