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검찰 고소 등 국가기관의 ‘국민 입막음 소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법조계와 언론계에서 터져 나왔다. 

23일 ‘표현의자유와 언론탄압 공동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권력의 명예훼손죄 기소 남용 방지와 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에선 국가 권력 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적 발언의 대상이 된 국가기관과 공무원의 명예훼손, 모욕을 이유로 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 및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등 소송제기는 법원의 판례에 비춰 무혐의나 무죄로 판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는 국민의 공적 발언 자제나 여론 형성의 위축만을 초래할 뿐 아무런 법적 이익이 없다는 점에서 ‘국민 입막음 소송’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지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제기한 소송 30건 중 형사사건은 24건이고, 이중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된 경우는 2건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제기된 6건의 민사소송 중 국가기관이나 공무원을 비판한 시민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한 판결은 단 한 건도 없었다.

   
23일 오후 ‘표현의자유와 언론탄압 공동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가권력의 명예훼손죄 기소 남용 방지와 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강성원 기자
 

박 교수는 “정부와 고위공직자의 평판을 보호하기 위한 사이버명예훼손 전담팀이 만들어졌는데 결국은 세월호나 천안함, 국정원 대선개입 등 정부의 공식입장에 반하는 사람들이 선제 대응의 타깃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실제 사례들을 보면 당사자인 대통령의 고소 없이 제3자가 고발하고 검·경이 수사하는 패턴이 산케이신문과 박지원 의원 사례 등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진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우리나라 법체계에 대해 “대한민국이 가입한 UN시민정치적권리규약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진실과 견해 표명도 처벌, 검찰의 정권 보위적 수사, 제3자 고소·고발에 따른 수사 진행 등의 문제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의 공적 사안이나 공인에 대한 정당한 비판 활동조차도 명예훼손죄로 고소·고발해 피의자가 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며 “아울러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합리적인 공적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제약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다만 “무분별한 비방과 모욕은 개인의 비극과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고 공적인 영역에서 무책임한 주장이나 비방은 건전한 여론 형성에 오히려 방해되기도 한다”며 “개인이나 단체, 조직에 대한 명예를 실추시키는 불법적 행위는 민사소송의 비용 부담이 크고 실제적 예방 효과가 크지 않아 형법으로 처벌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웅 변호사는 “명예훼손죄의 경우 명백하게 허위인 경우와 명예훼손이 뚜렷한 경우에만 처벌해야 한다”며 “국가기관은 원래 명예가 없어 국가기관의 명예훼손 고소는 그 자체로 희극이므로 국가기관의 고소는 명문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최근 산케이신문과 세계일보 등 언론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고소·고발 대응에 대해 “고소·고발 당사자는 물론 많은 국민에게 위축효과가 확산될 수 있다”며 “건전한 여론 형성을 저해하고 국민의 정당한 권리인 정부의 감시기능을 약화할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어 “검찰이 발표한 사이버명예훼손 전담수사팀 설치에 관한 내용을 보면 SNS 감시체제를 구축해 피해자 고소·고발 없어도 처벌하겠다는 것”이라며 “언론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 국론 분열이 될 수도, 정부 불신 조장이 될 수도 있는데 이는 정부 비판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18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작성한 ‘허위사실 유포 사범 실태 및 대응 방안’을 보면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인용하며 “근거 없는 의혹과 루머로 국론 분열,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발언 유포자를 철저히 추적해 검거하겠다”고 나와 있다.

윤성한 미디어오늘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은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와 관련해 ‘조금만 확인해보면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본인은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 조금만 확인하면 알 수 있지만 언론과 국민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지위가 아니다”라며 “언론과 국민이 표현할 수 있는 선에서 국가 권력과 정책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은 형사적 책임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일보 보도 당일 청와대 비서관 등 8명의 고발 과정은 청와대의 조직적 결정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언론사를 상대로 한 청와대 소송은 보수적 언론사를 대상으로도 이어져 오고 있어, 보수언론을 상대해서라도 불편한 비판을 듣지 않겠다는 기류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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