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헌법재판소(헌재) 결정에 의해 해산된 통합진보당(진보당)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이재정 변호사는 “진보당 해산 청구도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다급하게 이뤄졌고, 헌재 결정도 성의 없이 이뤄졌다”며 “자료가 모두 17만여 쪽인데 지난달 25일 최종 변론이후 제대로 읽어볼 시간도 없이 해산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22일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비판 토론회 <민주화의 산물 헌법재판소, 민주주의를 삼키다>에서 헌재 결정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날 토론에서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한마디로 헌재가 헌법 제8조 제4항을 확대해석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선관위)는 헌재 결정을 다시 확대해석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중선관위는 “진보당 소속 비례의원 6명은 의원직에서 퇴진한다“고 밝혔다.

헌법 제8조 제4항(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은 1960년 개헌을 통해 헌법에 들어간 조항이다. 임 교수는 “이승만 정부가 진보당을 ‘정당등록취소’라는 행정처분을 통해 해산했기 때문에 자의적인 정당해산으로부터 정당을 보호하기 위해 들어간 정당보호조항”이라며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 헌재가 밝힌 내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헌재는 “구체적인 증거제시 없이 진보당 강령에 나온 ‘진보적 민주주의’를 ‘북한식 사회주의’와 연결했고, 이석기 전 의원의 활동을 진보당의 활동”이라고 보았다. 임 교수는 “헌재가 이 전 의원이 진보당을 장악한 주도세력이라고 했는데 ‘주도세력’이나 ‘장악’은 법률용어도 아니고 불확정개념”이라며 “이 전 의원 발언에 승인하지 않은 당 집행부 활동도 정당의 활동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헌재의 결정문 주문에는 두 가지 내용이 있다. 진보당을 해산하는 결정과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하는 결정이다. 임 교수는 “정당 해산 결정시 소속 국회의원 자격이 박탈된다는 규정은 없다”며 “사법부가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데 법 규정에 없는 부분까지 판단하는 월권행위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이재정 변호사는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 사건의 핵심인 지난해 5월 12일 모임 참석자로 결정문에 나온 인물이 실제로는 참석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진보당 강령이 “민주주의에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현실로 야기돼 구체적 위험성이 인정될 때” 해산이 가능하지만 재판관 8인의 인용의견은 ‘구체적 위험성’을 증명하지 못했다. 

이 변호사는 “독일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폭력 혁명을 계획하고 있어서 국가를 전복할 ‘숨은 의도’가 입증된 것이지만 진보당은 구체적으로 드러난 위협이 없기 때문에 헌재가 증거에 의한 결정이 아닌 ‘관심법’ 결정문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 22일, 참여연대 주최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비판 토론회 “민주화의 산물 헌법재판소, 민주주의를 삼키다”가 열리고 있다.
 

법리적 문제 뿐 아니라 정치적 문제도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해산 결정으로 정당 이념 스펙트럼을 협소하게 만들었다”며 “전향적인 사회질서 재편을 위한 이념적 좌표를 찾기 어려워져 사실상 2004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전 체제로 돌아가는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복경 현대정치연구소 전임연구원은 “헌재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도구화됐다는 비판을 받는 지금 상황은 앞으로 3년간 권력분립 체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앞으로 사법적 판단이 설사 법리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믿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중재할 기관이 없어졌다는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한국사회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김윤철 교수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해산 결정에 대한 찬성의견이 60%라고 나왔는데 이는 진보정당이 민생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해서 낮은 지지율에 머물렀고, 박근혜 정권이 헌재 결정까지 몰고갈 수 있었다”며 “진보정당이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정당 해산이 ‘유신 회귀’라는 정치적 수사가 대중에게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런 결정을 막을 대안은 한가지라고 주장했다. “헌재 결정문 7인이 현직 고위판사 중에서, 2인이 현직 검사장 중에서 임명돼 연령(50대), 성별(남성) 성향(보수적)이 비슷하다”며 “재판관 인적 구성을 획기적으로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가 밉다고 무용론을 주장해서는 안된다”며 “헌재가 없었다면 중요한 결정들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종철 교수는 “헌재가 개편될 필요는 있지만 폐지할 존재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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